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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교단(1984~2016)에서

8월 염천 소풍, 만학의 의지도 뜨겁다!

by 낮달2018 2021.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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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염천에 떠난 방송고 체험학습

▲ 체험학습 장소는 비봉산 형제봉 자락의 한 계곡이었다. 계곡 옆 빈터에 학생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지난 일요일 체험학습을 다녀왔다. 8월 염천에 웬 소풍? 방송고 얘기다. 8월 19일 수업으로 1학기가 끝나고 9월부터는 2학기다. 연간 출석일이 25일밖에 안 되어도 교육과정상으론 있을 건 다 있고, 또 마땅히 있어야 한다.

 

8월 염천에 웬 소풍?

 

2학년은 수학여행이, 3학년은 졸업여행이 남아 있다. ‘여행’이라니까 몇 박 며칠 짜리 여행을 상상하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허용된 시간은 일요일 하루다. 수학여행이든 졸업여행이든 아침에 출발하면 저녁에 돌아와야 하는 당일치기 여행이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번 소풍은 학년별로 진행되었다. 우리 3학년은 선산읍 외곽의 뒷골이라는 계곡을 소풍지로 정한 모양이다. 아침 9시께 학교에 나와서 일 때문에 참석하지 못하는 학생들의 출석을 확인해 주었다. 멀리는 청주와 대구 등지에서 달려온 학생들은 갖가지 사유로 조퇴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간 결석일이 꽤 되는 젊은 친구 하나가 교무실로 올라왔다. 조퇴를 하려나 싶었는데 참석하겠단다. 왜 이렇게 일찍 왔느냐고 물으니 열여섯 시간 동안 일하고 방금 퇴근하는 길이라 한다. 열여섯 시간? 정말이지 좀 뜻밖이었다. 젊은 친구들 중에는 빈둥거리며 노는 애들이 더 많은데…….

 

출발 시간까지는 한 시간 반이 남았다. 나는 그를 교사 휴게실로 데리고 갔다. 인스턴트커피 한 잔을 타서 얼음까지 띄워서 주고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라고 했다. 여러 번 사양하는 걸 시간 되면 깨워 줄 테니까 잠시라도 쉬라고 했다.

 

조퇴하는 이유는 젊은 친구들은 대개 사적 약속 때문이고, 나머지는 일 때문이다. 등교일마다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출석하는 이들은 대부분 따로 일을 갖지 않은 주부들이나 자영업자다. 주부 가운데에도 일을 가진 이들은 결석하거나 학교에 나와 두어 시간 수업을 듣고 서둘러 하교하는 게 상례다.

 

남학생도 마찬가지다. 주 5일 근무가 직장생활의 일반적 형태 같아 보이지만, 세상에는 일요일에 일하는 회사가 적지 않다. 달리 말하면 일요일에 쉬지 못하는 사원도 많다는 얘기다. 그래도 악착같이 학적을 유지하는 이들의 의지는 놀랍다.

 

지난 6월 말일부로 우리 반에서도 젊은 친구 하나가 출석 미달로 제적되었다. 올들어 하루도 학교에 나오지 않아서 얼굴도 모르는 친구다. 출석일(25일)의 1/3은 9일이니 결석한 날짜가 9일이 넘었다는 뜻이다. 이 친구의 제적 사실을 알려주자, 반에는 아연 긴장이 감돌았다.

 

결석한 날짜가 7일 근처인 친구들도 여럿이다. 이들에게는 냉정하게 경고해 주었다. 이틀만 더 빠지면 제적이야. 알지? 하면 이 친구들은 좀 긴장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젊은 친구들은 믿을 수 없다. 이들에게는 학교보다도 또래와 어울리는 유흥이 더 강력한 유인 동기이기 때문이다.

 

학업에 대한 ‘목마름’과 ‘절실함’이 힘!

 

불혹을 넘긴 이들은 염려할 게 없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성실할뿐더러 스스로 자신을 잘 관리하기 때문이다. 20대 젊은 친구들에게는 없는 ‘학업에 대한 목마름’과 같은 ‘절실함’이 이들을 움직이는 힘이다. 정규과정을 거친 사람들은 이들의 이런 심리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한 달에 두 번 학교에 나오고, 수업을 한다고는 하지만, 기실 변죽만 울리다 마는 공부, 시험이라고 치지만 교재의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일 뿐이다. 정규과정의 지긋지긋한 공부에 비기면 설렁설렁, 얼렁뚱땅 해치우다 보면 1년 과정이 끝나는 체제다. 주변에는 ‘그렇게 해서 얻는 졸업장이 이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고 머리를 갸웃하는 이들이 많다. 나도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이들 40대 이상의 시니어들이 지닌 학업에 대한 열망은 쉽게 설명할 수 없다. 가난해서든, 공부에 뜻이 없어서든 정규과정을 건너뛴 이들이 지닌 회한의 정서는 뜻밖에 매우 크고 깊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무엇이 아닌 ‘학교 교육’을 통해서만이 해소될 수 있는 것이다.

 

그게 예순을 넘기고도 입학하여 기꺼이 학교생활을 즐기고, 외계어와 다름이 없는 미적분과 영어 회화를 꿋꿋하게 견뎌내게 하는 힘이다. 자신이 젊고 기회가 여전히 많다고 믿기 때문에 학교에 애착이 없는 젊은 애들과는 달리 이들은 더 이상 젊지 않은 데다가 기회가 별로 없다는 것을 충분히 아는 것이다.

 

대구에서 다니는, 중소기업을 경영하고 있는 이 회장과 함께 교사 현관 앞 계단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나가는 말로 진학 의향을 물었는데 그는 꽤 고민을 많이 하는 것 같았다. 시작한 공부는 어떤 형식으로든 매듭을 짓고 싶다. 그러나 스무 살 어린 친구들과 함께 가야 하는 대학 생활이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나이 많다고 특권을 요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의 고민은 실질적이다. 과정만 이수하면 졸업하는 고등학교가 아니다. 요즘 빡빡한 대학 생활은 젊은 친구들에게도 만만치 않다고 하니 방송고 다닐 때처럼 설렁설렁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차차 고민해 보기로 하고 얘기를 끝냈다.

 

우리 반 시니어 여학생의 차에 편승해서 체험학습 장소로 이동했다. 쉰을 갓 넘은 이 이도 진학을 염두에 두고 있는 모양이었다. 일주일에 하루만 등교해 수업을 받으면 되는 대학이 있다고 해, 그런 학교도 있는가 하고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이내 나는 그걸 잊어버렸다.

▲ 고기를 굽는 데 장소가 무슨 상관인가 . 여학생들이 음식을 장만하고 있다.
▲ 여학생들이 부쳐낸 고추전
▲ 바베큐 화덕에서 돼지고기를 구워내는 것은 남학생의 몫이다 . 이 학생 덕분에 우리는 호강을 할 수 있었다.

선산 뒷골은 비봉산 형제봉(531m) 자락이다. 새벽에 인근에 소를 기르며 사는 우리 반 여학생이 선점해 둔 시냇가에 자리를 잡았다. 물이 마르지 않은 계곡 쪽에서 바람이 이는가 싶더니 이내 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돗자리에 앉자마자 바로 바지런한 아주머니 아저씨 학생들은 음식 장만에 들어갔다.

 

한편에선 여학생들이 둘러앉아 전을 부치고, 또 한편에선 남학생들이 숯불에 돼지고기를 구웠다. 행사를 할 때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이런 행사에 교사들은 입을 댈 일이 없다. 그냥 ‘국으로’ 구경이나 하고 있으면 판은 절로 돌아간다. 4·50대 중심의 이 역전의 용사들은 힘들이지 않고도 일을 쉽게 쳐내는 재주가 남다른 것이다.

 

올 졸업생 몇이 찾아왔다. 나는 초면이라 인사를 나누었다. 처음엔 선배들이 후배들 행사를 격려해 주러 들렀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선후배들이 주고받는 대화가 예사롭지 않았다. 대화를 동냥해 들어보니 이들은 대구 인근 도시의 한 2년제 대학에 다니는 이들이었다. 후배들을 찾는 김에 학교 홍보와 진학 상담도 곁들인 방문이었다.

 

이들이 주고받는 대화는 생각보다 훨씬 진지하고 열띤 것이었다. 예의 대학의 한 복지 관련학과는 주 1회 토요일 8시간의 수업으로 이들 시니어 학생들을 유치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제야 나는 그 학교가 동행한 여학생이 말한 학교라는 걸 알았다.

▲ 후배들을 격려할 겸 학교 홍보도 할 겸 찾아온 선배들과 학생들의 대화가 무르익고 있다. 사진은 개인정보 관계로 흐리게 처리함.

스쿨버스를 이용할 수 있고 주당 하루 수업으로 과정을 이수할 수 있다는 것은 이들 50대 만학도들에게 상당한 강점이 될 성싶었다. 학과 선택과 관련한 꽤 전문적인 대화가 오가는 걸 들으면서 나는 내가 이들의 진학에 지나치게 무심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까짓 대학, 나도 한번 가 봐?”

 

교사들은 정규 고교과정을 거친 자신들이 공부하고, 본교의 학생들이 진학하는 4년제 대학을 중심으로 사고한다. 따라서 쉰이 넘은 늦깎이 학생들의 만학 의지를 일종의 여기(餘技)로 바라보려는 경향이 있다. 가정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안정기에 든 이들 만학도의 대학 공부는 현실적 필요와는 다소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 진학에 대한 이들의 생각이 결국은 일종의 ‘성취욕’과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뒤늦은 고등학교 공부는 힘겹게 마쳤다. 옛날처럼 본고사를 치러야 하는 것도 아니고, 수시전형 등 진학을 위한 방법은 손쉽다. 경제적으로도 그리 어렵지 않다. 자녀나 배우자의 진심 어린 응원도 있다.

 

“그까짓 대학, 나도 한번 가 봐?”

 

한때 내 삶과 무관한 너무 멀고 높은 데 있었던 대학이 내가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로 다가온 것이다. 굳이 용기를 낼 일도 없다. 그러니 누구나 한 번쯤 진학을 고민할 만하지 않은가. 그리고 그 같은 소박한 욕망을 나무랄 일도 없지 않은가. 오늘날 대학은 ‘개나 소나’ 다 가는 데가 아닌가 말이다.

 

같은 업계의 이익단체장을 맡으려 해도 ‘그놈의 학벌’이 걸렸다는 이 회장 같은 이들에게 진학은 훨씬 더 현실적인 필요일 수 있다. 이른바 ‘이름’이 행세하는 세상이니 ‘학벌’ 외엔 꿀릴 게 없는 이들에게 ‘대학’이라는 이름은 얼마나 요긴한 것이겠는가 말이다.

 

우리 반의 40대 남학생은 ‘진학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지만 혹시 아이들에게 부모의 가방끈 짧은 게 걸릴 까 봐 진학을 생각 중이라고 했다. ‘학벌’이 행세하는 세상은 ‘간판’을 위해 불필요한 지출도 불사하게 만드는 것이다.

 

남자들이 이처럼 ‘간판’에 대한 필요로 대학을 겨냥하는 반면에 여자들은 배우자에 비해 기우는 학력을 보완한다는 뜻도 있는 모양이다. 물론 그 같은 경우엔 일정한 경제적 능력을 전제로 하지만. 자녀들 대학 공부를 시키기 바쁜 40대 후반의 여학생들은 아이들 공부 때문에 자신의 진학을 포기하기도 한다. 또 벌여놓은 일 때문에 시간을 내지 못해 진학을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사회복지’를 공부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 ○옥 씨는 매우 실용적 목적이 있었다. 뒷날 사회복지 시설을 운영하겠다는 꿈을 가진 간호사 맏이를 둔 그이는 사회복지사 자격으로 딸과 서로 도울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이런 실질적인 목표를 가진 그이는 당당하고 행복해 보였다.

 

된장국을 곁들인 점심을 먹고 나서 일단 자리를 파하기로 했다. 자리를 걷는 일도 아주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학생들은 서로 도와 쓰레기를 치우고 장비를 철수하여 순식간에 자리를 훤하게 만들었다. 이럴 때, 교사들은 시시콜콜 지시하는 대신 일손만 일부 거들면 된다. 다 ‘나이 많은 제자’를 둔 덕분이다.

 

내려오는 길에 선산이 고향인 남편을 둔 한 여학생이 남편의 뜻이라며 어탕국수를 대접하겠다고 했다. 식사한 지 얼마 되지 않지만, 별미로 먹자며 모두 산 아래 식당으로 내려갔다. 어탕국수는 담백한 맛이 괜찮았다. 늦은 공부를 하는 아내의 벗들과 선생을 위하여 내민 그 남편의 정성이 바로 그러하리라.

 

그렇게 남편과 아내는 각각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뒤늦은 공부를 하고 있다. 그 공부를 하느라고 8월 염천에 소풍을 온 우리 방송고 ‘나이 많은 제자’들에게 복 있을진저. 우리는 돌아오는 길의 전통찻집에서 차를 한 잔씩 하고 나서 비로소 8월 염천의 소풍을 파할 수 있었다.

 

간판이든, 실질적 목표이든, 진학이든 아니든 이들의 선택에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얼마나 있을까. 2학기부터는 슬슬 그걸 고민해 보아야겠다.

 

 

2012. 8. 8.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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