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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교단(1984~2016)에서

‘9시 등교제’ 생각

by 낮달2018 2021.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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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교육청의 ‘9시 등교제’

▲ 틈만 나면 책상 위에 엎어지는 아이들 . 무한반복 학습 노동에 아이들은 지쳐가고 있다 .

지난 14일 방학 중 마지막 보충 시간이었다. 방학 시작하면서 며칠 쉰 게 고작이고, 사흘 후면 개학이다. 지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아이들이 안돼 보여서 한마디 했다. 고생했는데……, 며칠 쉬지도 못하고 금방 개학이네. 얘들아, 경기도 학생들은 2학기부터 9시에 등교하게 된다지?

억눌린 듯한 탄성과 한숨이 잠깐 교차했지만, 아이들은 이내 심드렁해진다. 그게 자신들과 무관한 일이기 때문이다. 방학 중이어서 9시 등교의 호사를 누렸지만, 개학하면 다시 8시 이전에 등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기고사 등 시험을 치르는 날이 아닌 한 정확히 8시 20분부터 이른바 ‘0교시’가 진행되는 것이다.

‘9시 등교제’와 ‘생체리듬’

나는 잠깐 그날 뉴스에 올랐던 이재정 경기 교육감과 학부모와의 대화에 오간 학부모의 반대 의견을 전해주었다. 맞벌이 부부는 어쩔 것이냐, 학교장 재량에 맡기면 안 되냐, 농촌지역 대중교통 사정을 고려해야 하는 것 아니냐, 아이들 성적이 떨어지면 어떻게 하느냐 등등, 학부모들의 반대 의견이 적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아침마다 전쟁 치르듯 아이를 깨워야 하는 학부모라면 응당 이 조치를 환영해야 마땅할 듯하다. 아침밥도 거른 채 등굣길에 나서는 자녀들의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말이다. 그러나 학부모들은 자녀들의 건강보다 자녀들의 공부가 부실해져 진학에 지장이 있을까(그리하여 출발부터 ‘루저’가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더 두려워하는 것이다.

학부모들의 반대 논리 가운데 “수능시험이 8시 40분에 시작된다. 여기에 생체리듬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은 압권이다. 수능시험일 하루에 최대한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서(그래서 더 높은 점수를 올리기 위해서!) 3년 내내 아이의 생체리듬을 거기에 맞추어야 한다는 그 ‘원모심려(遠謀深慮)’ 앞에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반대 의견이 만만치 않은데도 이재정 교육감은 “학생들에게 잠잘 시간을 좀 더 주고 가족들과 아침밥을 먹을 수 있게 등교 시간을 늦추겠다.”라는 제도의 취지를 거듭 상기시켰다. 그는 “학생들이 100% 이구동성으로 요구하는 것이 9시 등교”라며 “전면 시행해 보고 나쁘면 그때 가서 점검하겠다.”라고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지역이 달라서 제도 시행과 무관한 처지지만 이 교육감의 ‘선 시행, 후 점검’ 형식은 옳아 보인다. ‘학교장 재량에 맡기자’라는 등 이런저런 문제를 다 고려하다간 제도 시행도 전에 본래의 취지를 말아먹기 쉽기 때문이다. 괜찮은 각종 제도와 정책들이 학교에 맡겨졌다가 ‘중동무이’가 되어 버린 사례가 한두 가지인가 말이다.

애당초 ‘학교장 재량’이라는 건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는다. 학교장 재량이란 정작 행사되어야 하는 ‘교육적 조치’에는 약에 쓰려고 해도 없는, ‘높으신 어른’의 ‘전가의 보도’일 뿐이다. 그러면서도 보수적 여론에 영합하며 적당한 꼼수로 타협해 원안과는 무관한 잡종을 만드는 데는 솜씨를 보여주는 게 예의 ‘재량’이 아닌가 말이다.

고등학교를 기준으로 보면 이 ‘9시 등교’의 핵심은 ‘0교시’ 폐지다. 잠이 부족해 눈도 떨어지지 않는 아이들을 조기 등교 시켜놓고 비몽사몽 하는 아이들에게 생짜로 교과 지식을 욱여넣고 있는 게 ‘0교시’다. 그걸 없앤다고 나온 묘수는 얼마나 많았는가.

2000년대 초반에 한 공중파 방송이 방영한 오락프로그램의 한 꼭지였던 ‘얘들아! 아침밥 먹자!’는 0교시 폐지를 위해 꽤 애를 썼다. 방송의 영향력 덕분에 일부 학교에서 0교시가 폐지되기도 했지만, 후에 프로그램의 포맷이 바뀌자 0교시는 멀쩡하게 다시 살아났다. 수능 성적이 일생을 좌우할 만큼의 위력을 가진 입시경쟁 교육에서 ‘성적’은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지선 지고한 가치였기 때문이다.

‘9시 등교’의 핵심은 ‘0교시’ 폐지

정도의 차이일 뿐, 0교시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천하’가 아는 일이다. 교사도 알고 교장도 안다. 단지 그걸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거나 모른 척할 뿐이다. 학부모도 아는 사람은 안다. 그러나 학부모들도 침묵한다. 왜냐고? 이 황당하기 짝이 없는, 그러나 그 시스템에 따라 자식의 미래가 결정된다는 걸 ‘부정’하지 못하는 학부모는 언제나 ‘을(乙)’일 뿐이니까.

전임 학교장 때 우리 학교는 ‘365일 불이 꺼지지 않는 학교’였다. 그게 그의 방침이었다. “멈추기라도 하면 엄청난 비용이 나는 제조업체야? 왜 학교가 365일 불이 켜져 있어야 하는데?” 교사들은 이를 앓았지만, 교장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3학년들은 365일 학교에 등교해야 했다. 휴무일인 토요일은 말할 것도 없고 일요일까지.

그는 월요일 0교시까지도 보충수업을 돌렸다. “아이들이 한 주일을 시작하는 날부터 멍청하게 자리에 앉아서 졸게 할 수는 없다.”라는 게 그의 비장한 방침이었다. 한 학기 만에 그도 꼼짝없이 손을 들고 말았다. 그건 한 주일을 시작하면서부터 아이들은 물론 교사들조차 반쯤 죽이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아이들을 불러내고 보충수업이든 자습이든 아이들의 머릿속에다 교과 지식들을 가능한 한 많이 욱여넣어야 한다. ‘서울대학교에 얼마나 많이 진학시키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명문교’들은 그걸로 무한경쟁을 계속하고 있다.

말끝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고 강변하지만, 기실 이런 무한경쟁의 시스템에서 유일하게 빠져 있는 것은 아이들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다. 날마다 끊임없이 강제되는 이 반복 학습 시간이 얼마나 비효율적이며 그게 아이들의 영혼과 육신을 얼마나 해치고 있는가 하는 고려 따위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이 꺼지지 않는 학교’란 외부에 대고 내로라하는 관리자의 면책성 홍보 수단에 불과할 뿐이다.

정신을 차리고 수업에 집중하든 비몽사몽간에 한 시간을 보내든 아이들은 하루를 시작하는 첫 교시부터 진을 뺄 수밖에 없다. 50분의 수업이 끝나면 정규수업 7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이 0교시의 후유증은 정규수업에까지 결정적인 악영향을 끼친다. 첫 시간부터 골골대던 아이들이 그나마 정신을 차리는 것은 3교시나 4교시쯤 되어야 한다. 보충수업이 정규수업을 잡아먹는 격이 되는 것이다.

▲ '9시 등교제'는 학생에게 잠잘 시간을 더 주고 가족들과 아침밥을 먹을 수 있게 하는 것.

그렇다. “‘9시 등교 논쟁’ 쟁점은 등교 아닌 학습 시간”[<미디어 오늘> 기사]이다. 권재원은 이재정 교육감이 ‘9시 등교’에 대한 학부모들의 반대 의견에 대해 ‘도서관 등을 활용한 아침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다고 한 점을 우려한다. “그렇게 되면 9시 등교제는 하나마나가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했지 않는가. 아침 프로그램이 마치 모든 문제를 해결한 유일한 방책인 것처럼 논의되는 순간 ‘9시 등교’제는 애먼 길로 갈 가능성이 크다. 그런 상황에서 학교는 온갖 꼼수로 아이들을 새로운 학습 프로그램 따위로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 터이기 때문이다.

단지 1, 20분의 자투리 시간이라도 아이들이 편하게 쉬는 걸 학교 관리자들은 보지 못한다. 정규수업 시간 전에 온갖 이름의 프로그램이 넘치는 것은 그래서다. ‘명상의 시간’쯤은 아이들 말로 ‘할배’다. 학교는 ‘영어 듣기’나 ‘10분 독서’, ‘고사성어’ 익힘 시간 따위의 명목으로 아이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자기 시간’을 주라

“중요한 것은 1교시 시작 전에 추가적인 학습 노동을 부과하지 않는 것, 정규수업 시간만으로도 힘든 아이들에게 의미 없는 학습 시간을 추가로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위 기사) 부득이하게 조기 등교를 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이 있을 수 있다. 어른들은 조기 등교한 아이들이 제멋대로 시간을 죽이는 걸 보아 넘기지 못한다. 그 아이들은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이 나오는 이유다.

답은 매우 간단하다. 일찍 오면 오는 대로, 아이들에게 자기 시간을 주면 된다. 잠이 부족한 아이들은 적은 시간이라도 쪽잠을 자게 하고, 숙제를 못 한 아이에게는 숙제할 시간을, 예습이나 복습이 필요한 아이들에겐 그런 짬을 주면 된다. 힘이 넘치는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축구를 할 수도 있을 게고, 수다가 필요한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그들만의 이야기에 빠지면 된다.

그래서 무슨 문제가 생기는가. 어른들에겐 아이들이 아침마다 연출하는 무질서가 맘에 차지 않으리라. 그러나 그 ‘무질서’가 날마다 공부에 지쳐 생기 잃은 아이들에게 잠시라도 쉬게 하고 생기를 불어넣는 일이라면 아까울 게 무엇인가. 그거야말로 정규수업 시간에 늘어지지 않게 집중할 수 있는, 재충전을 위한 ‘생산적 소비’가 아닌가!

학부모들은 조기 등교한 아이들의 ‘방치’를 우려하지만 그건 기우에 그칠 것이다. 왜냐하면 일찍 온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함께 교실을 지킬 것이고, 9시 등교제가 정착되더라도 교사들은 여전히 8시 30분 이전에 학교에 출근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고등학교의 경우 0교시부터 야간 자율학습을 거쳐 자정 너머까지 이어지는 학원 수업 등으로 인해 받는 아이들의 스트레스는 이미 위험 수위를 넘었다. 아마도 ‘9시 등교제’는 학교에서 학원으로 독서실로 이어지는 이 끔찍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는 첫걸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다시 ‘0교시가 있는 일상’으로

앞서 말했듯 내일은 개학이다. 월요일이라 다행히 0교시는 없다. 그러나 아마 8교시 보충은 어김없이 시행될 게고 아이들은 개학 첫날부터 야간자습에 ‘돌입’해야 할 것이다. 아이들에겐 그런 일상을 거부할 자유도 없을뿐더러 그래야 한다는 생각도 쉽게 하기 어렵다. 좋은 점수를 따기 위한 이 끔찍한 경쟁은 아이들에게 자유로운 생각마저도 앗아 버린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개학을 준비하면서 내게도 지레 진이 빠지는 느낌이 있다. 수업 시간마다 비실대며 책상 위에 엎어지는 아이들을 달래가면서 가르쳐야 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노동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이 불합리한 시스템의 한 축을 맡고 있지만 정작 그것을 바꿀 권한이 전혀 없는 무력한 자신을 새삼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2014. 8. 17.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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