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끼를 다 보여준 아이들의 축제
오뉴월 염천에 학생 축제라면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 일이긴 하다. 그러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난 16일, 축제는 치러졌다. 지난해 얘기했던 것처럼 ‘이 무한 입시경쟁 시대에 인문계 고등학교가 선택한 ’비켜 가기‘ 축제(축제를 치렀다는 생색은 내면서 시간과 영향은 줄이겠다는)였던 게다.
이웃한 남학교의 축제는 10월에 치러진다. 대신 단지 사흘의 준비 기간밖에 없는데 비기면 거의 열흘에 가까운 준비 기간을 갖는다는 점에서 훨씬 내실 있다는 주장이 전혀 터무니없어 보이지는 않는다. 7월 초순 기말시험을 끝내고부터 아이들은 축제 준비로 골몰해 온 것이다.
축제의 패턴은 예년과 다르지 않다. 합창제와 예술제, 동아리별로 각 교실에서 치러진 이벤트 등은 비슷했으나 시절 탓인가, 아이들의 에너지와 ‘끼’는 역동적이었다. 아이들이 ‘가능성이고 희망’이라는 사실은 여전히 감동적이다. 그것은 이 입시경쟁 시대에서 교육이 잃지 않고 있는 마지막 덕목인지도 모른다.
한 해 동안의 학생활동을 집약하는 형태가 아니라 다분히 목적 의식적으로 준비한 축제라는 점이 다소 아쉽기는 하다. 그러나 자기표현에 몰두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그들의 문화에 대해,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그들의 에너지에 대해 경의를 표했다.
날씨가 한 부조를 해 줬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 날씨는 아이들 편이 아니었다. 냉방 시설이 전무한 강당에 밴 끔찍한 더위는 만 10시간 동안 아이들의 함성과 드높은 비명이 압도해 버렸다. 그것은 마치 자신들을 옥죄는 존재 조건에 대한 아이들의 유쾌한 저항처럼 보였다.
일회성 행사로 끝나는 강당 안의 행사보다 자투리 시간으로 꾸려 온 동아리 활동에 나는 높은 점수를 주었다. 대부분 동아리는 형식적으로 지도교사를 두곤 있지만, 기실 모든 활동을 기획하고 집행해 나가는 것은 아이들이다. 정확히 말해 아이들에게 동아리란 “3학년 ‘맏언니’들의 감독 아래 2학년 ‘언니’들이 지도하고 1학년 새내기 ‘아우’들이 꾸며가는 사랑과 배움의 공동체”인 것이다.
어두운 강당, 교실마다 진을 친 동아리 방을 돌면서 찍은 사진 몇 장으로 아이들의 열기와 함성을 보여줄 수는 없을 터이다. 그러나 그것들을 이 ‘미친 교육’의 시대를 향해 던지는 아이들의 이유 있는 저항의 몸짓이라고 보아주셨으면 좋겠다.
2008. 7. 23. 낮달
'이 풍진 세상에 > 교단(1984~2016)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승진, 전교조, 현실 (0) | 2021.07.26 |
---|---|
학교가 졸고 있다! (0) | 2021.07.24 |
교사들, ‘풍등’에 마음을 담아 날리다 (0) | 2021.07.21 |
무제 - 축제 전야 (0) | 2021.07.17 |
김상봉 교수의 “청소년·학생들을 위한 조언” (0) | 2021.07.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