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교단(1984~2016)에서

학교가 졸고 있다!

by 낮달2018 2021. 7. 24.
728x90

수업 시간에 자는 아이들이 너무 많다!

▲ 시험공부에 열중하고 있는 아이들. 그러나 아이들은 시간이 갈수록 지쳐가고 있다.

정규수업 17시간, ‘보충수업’ 8시간. 매주 내가 아이들과 씨름해야 하는 수업 시수다. 언제부턴가 거기 ‘방과 후 학습’이란 그럴 듯한 이름을 붙여 놓았지만 ‘엎치나 메치나’ 그건 ‘보충수업’일 뿐이다. 정규수업이 끝난 7, 8교시에 이루어지는 수업은 ‘방과 후 학습’이라 할 수 있겠지만, 정규수업 1교시가 시작되기 전에 이루어지는 이른바 ‘0교시’는 ‘일과 전 수업’이니 말이다.

 

방학이 돼도 이 보충수업 전선에는 이상이 없다. 금요일 방학식을 했지만, 고작 주말을 쉬고 난 월요일부터 시작된 보충수업은 개학을 꼭 5일 앞두고 끝난다. 결국 아이들은 물론이거니와 울며 겨자 먹기로 보충수업을 맡아야 하는 교사들에게도 ‘방학’은 ‘꽝’인 것이다.

 

일반계 고등학교에는 여름방학이 없는 셈이다. 상대적으로 기간이 긴 겨울방학에는 종업식이 끝나는 2월에 두어 주쯤의 말미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기간이 한 달 남짓인 여름방학은 8월 중순 이후에 겨우 며칠의 여유가 주어지고 이내 개학이기 때문이다. 올해로 나는 6년째 방학 없는 여름을 맞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는 이른바 일반계(‘인문계’를 이렇게 부른다.) 고등학교라면 모두 비슷한 형편이라고 보면 된다. 하긴 이 나라에서 인문계 고교가 대학을 상정하지 않고 독자적 중등교육의 과정으로 존재한 적이 있기나 했을까.

 

학교가 졸고 있다

 

아무도 이러한 현실에 ‘토’를 달지 않는다. 이십 년도 전, 비슷한 살인적인 입시경쟁 교육에 반기를 들고 나선 교육운동의 태동기보다 상황은 더 나빠진 게 아닌가 싶다. 그 시절에는 그걸 문제로 여기고 고민하는 교사들이 꽤 많았다. 그러나 지금, 교사들은 압도적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있는 듯한 형국이다.

 

상황은 이미 손쓸 시기를 놓친 듯하다. 학교는 마치 잘 짜인 시스템의 톱니바퀴 같다. 0교시 보충수업으로 시작해 야간 자율학습 후 밤 11시에 끝나는 아이들의 하루에 교사들의 그게 그림자처럼 겹친다. 아이들은 자정 무렵에 귀가해 정리하고 새벽 한두 시쯤에야 자리에 든다. 그리고 다음 날 7시쯤이면 어김없이 집을 나서야 한다.

 

한때 ‘0교시 폐지론’이 힘을 얻기도 했지만 지금, 대부분의 고등학교에서 그것은 변형된 형태로 살아 있다. 8시 10분에 시작해 9시에 마치는 이 악명 높은 ‘0교시’는 정규수업이 시작하기도 전에 아이들의 진을 빼놓는다. 일과 시작 전의 이 0교시 덕분에 유탄을 맞는 것은 정규수업이다. 0교시에 진을 뺀 아이들은 1교시에 늘어져 버리는 일이 다반사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50분짜리 수업을 하루 아홉 시간씩 받는다. 매 교시 후 쉬는 시간은 10분, 점심시간은 한 시간, 수업을 모두 마치면 6시 10분이다. 학교 급식으로 저녁을 먹고 7시부터 야간자습이 시작된다. 그나마 9시부터 시작되는 야자 2교시를 선택할 수 있는 게 유일한 숨구멍이다.

 

올해부터 주 5일제 수업이 전면 실시되었지만, 미안하지만 그건 남의 학교 이야기다. 물론 토요일에 수업은 없다. 대신 전교생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9시까지 등교하여 오전 자습에 참여해야 한다. 그게 이른바 ‘명문고’라는 우리 아이들에게 주어진 족쇄다.

 

거기다 수험생인 3학년들은 일요일에도 등교한다. 학년 초에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지금 일요일 등교 성적은 시원찮은 듯하다. 억지로 학교에 나와야 하는 아이들도 괴롭지만, 나오지 않는 아이들을 나무라면서 그걸 강제해야 하는 교사들도 곤혹스럽기로는 마찬가지다.

 

“결국 담임과 아이들 사이에 감정의 골만 깊어지지요…….”

 

아이들은 불만스러우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그 관행을 따를 수밖에 없다. 그래야만 경쟁에서 이기거나 최소한 낙오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아이들은 한 주일 동안 쉬는 시간 없이 공부에 내몰리는 형국이다. 뭐랄까, ‘피로의 일상화’라 할 만한 현상이 날이 갈수록 더해간다.

 

3월에 수업하면서 몇몇이 조는 것을 나는 으레 그러려니, 아이들이 지쳐서 그러는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4월, 5월, 6월……, 날이 갈수록 그런 아이들이 늘어났다. 이를테면 지난주의 피로를 풀지 못하고 다시 시작되는 월요일 1, 2교시에 교실은 거의 묘지 같다. 특히 주말도 쉬지 못하는 3학년들 가운데 한 시간 내내 깨어 있는 아이들은 불과 대여섯에 지나지 않는다.

 

책에 코를 박고 있는 것같이 보이지만, 기실 아이들은 자고 있다. 아예 책상 위에 엎어져 자지 않을 뿐이지, 아이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누적된 피로에 온전히 몸을 내맡기고 있다.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안쓰럽고 한편으론 걱정스러워 갖가지 방식으로 아이들을 깨워보지만, 약발은 불과 몇 분을 가지 않는다.

 

자는 녀석들 깨워가면서 운영해야 하는 수업의 부담은 더 크다.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주는 여학생들과는 감히 비길 수 없다. 타협책은 어르고 달래며 수업을 하고 말미의 5, 6분을 쉬게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책상 위에 엎어져 버린다.

 

“죽어라 시키면 퍼지는 놈도 있겠지만…”

 

이런 상황은 내 수업에만 국한된 것은 물론 아니다. 수업을 마치고 이웃 교실을 살펴보면 사정은 대동소이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은 더 나쁜 쪽으로 벌어지는 것 같다. 그나마 수업을 따라오던 아이들이 6월 들면서 자기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잠과 싸우면서 아이들이 선호하는 것은 ‘인터넷 강의’다.

 

“인강은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속도로, 원하는 과목과 진도로 공부할 수 있는, 한마디로 ‘맞춤한’ 공부 방식이지요…….”

▲ 책상 위의 낙서도 슬프다.

한 교사의 진단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은 수업을 제쳐놓고 자기 시간표로 공부를 시작한다. 수업은 어쩌다 필요한 부분만 집중해 듣고 나머지는 제가 선택한 교재를 가지고 ‘자기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결국 교사의 강의는 소수의 학생만이 들을 뿐 공중에 떠 버리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정규수업에 여전히 교과서 진도를 나가는 상황이니 2학년 수업은 그나마 낫다. 그러나 여기서도 수마는 온 교실을 배회한다. 수업이 진행되면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던 아이들은 내버려 두면 이내 고개를 꺾어버리기 일쑤다. 조는 아이들이 소수면 깨워가면서 하겠는데 일정 비율 이상을 넘어 버리면 ‘불감당’의 상황이 되는 것이다. 0교시나 7, 8교시 보충수업 시간의 풍경이다.

 

이런 상황을 문제로 의식하는 동료들은 얼마나 될까. 주변 교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문제로 여기긴 한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워낙 그런 상황에 익숙해져서인지 어쩔 수 없는 과정이라고 여기고 있는 듯싶기도 하다.

 

나는 농조로 그렇게 말하기도 한다. 학교에는 3가지 방침이 있다. 첫째 아이들을 죽어라 공부시킨다. 둘째 그러다 보면 퍼지는 녀석도 있을 수밖에 없다. 셋째, 그래도 그걸 견뎌내는 아이들이 좋은 학교에 간다…….

 

‘불이 꺼지지 않는 학교’를 통해 더 많은 학생을 아무개 대학에 보내고 싶고 그래서 ‘공부 선수’를 길러내 ‘명문고’의 입지를 공고히 하고 싶어 하는 학교장의 방침이 만들어낸 학교의 일상이다. 기본적으로 어떤 형식으로든 상황 개선이 필요하다는 교사들의 의견이 존재하고 이와 관련된 논의도 있긴 하다.

 

그러나 논의는 늘 쳇바퀴를 돌고 있다. 어차피 검증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학교를 연중무휴로 돌려서 절대 학습량을 늘리는 것이 나은지, 학생들의 학습 선택권을 존중하여 휴일 등교를 개선, 또는 폐지하는 게 나은지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이다. 현실의 문제를 인정하는 학교들이 제도 개선을 망설이는 이유다.

 

학습 시간은 세계 최장이지만…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을 자랑하면서도 한편으론 그에 걸맞지 않은 낮은 생산성이 경제 대국을 지향하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세계 최장이라면 아이들 공부 시간도 빠질 수 없다. 모르긴 몰라도 이 나라의 학습 효율도 그 낮은 생산성에 견줄 만하지 않을까.

 

이리 하나 저리 하나 미덥지 않다면 지역사회나 학부모를 안심시키기 위해서라도 학교를 ‘빵빵하게’ 돌리는 게 훨씬 ‘안전’한 선택일지 모른다. 교사들 사이에서도 적지 않은 이견이 존재하는 것도 걸림돌이다. 설마 싶지만, 교사들 가운데서도 ‘절대 학습량’을 늘리는 이 고전적 방식을 따르고 미는 이들이 있는 것이다.

 

2학기에 일부 교육과정이 바뀌면서 3학년 수업 지원 대신 2학년 한문 수업을 맡게 되었다. 마지막 수업을 하는데 웬걸, 깨어 있는 아이들이 많았다. 수고했다고, 온갖 욕을 먹으면서 수업 따라오느라 애먹었다고 치하하면서 ‘행복하게도 이 수업이 마지막’이라고 하고 아이들과 함께 웃었다. 남은 시간, 열심히 공부해 시험 잘 치르고 원하는 대학에 갔으면 좋겠다고 덕담을 했다.

 

어제부터 20일간의 여름방학 보충수업이 시작되었다. 첫날, 첫 시간부터 조는 아이들이 여러 눈에 띄었다. 달래고 꾸짖고 하면서 수업을 마쳤다.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바로 책상 위에 얼굴을 묻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이 ‘졸고 있는 학교’를 어찌할 것인가, 나는 자문하듯 중얼거릴 수밖에 없다.

 

 

2012. 7. 24. 낮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