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교단(1984~2016)에서

김상봉 교수의 “청소년·학생들을 위한 조언”

by 낮달2018 2021. 7. 16.
728x90

중견 철학자 김상봉 교수  ‘교육’ 강연회

▲ 김상봉(1960~ ) 교수

조합에서 김상봉 교수를 모셔와 강연회를 연 것은 지난 10일이다. 워낙 오랜만의 강연이어서 주제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거기 나갔다. 김상봉 교수는 전남대 철학과에서 독일 관념론(칸트철학)을 가르치고 있는 중견 철학자다. 그는 전남대 철학과에 정원 외 특채로 임용될 만큼 실력을 인정받은 이다.

 

그는 90년대의 끝에 그리스도신학대에서 재임용 탈락한 후, ‘거리의 철학자’로 불리며 민예총의 문예아카데미 교장을 지냈다. 정작 나는 전남대 교수로서가 아니라, ‘학벌 없는 사회’ 정책위원장으로 그를 기억하고 있다. 그가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했는지도 잘 모른다.

 

오히려 나는 지난 5월 노무현의 죽음에 바친 아름다운 칼럼의 지은이로 그를 기억하고 있다. 지난 5월 24일, <한겨레>에 실린 그의 글은 “한 시대의 종말을 애도함”이다. 그의 말대로 그것은 다소 감상적 정서로 접근한 노무현에 대한 별사(別辭)였다. 어쨌든 나는 그 글의 울림이 좋았다.

 

“(……) 1979년 부마항쟁으로 장전되고, 80년 광주항쟁을 통해 발사된 시대, 모든 불의한 것들에 대한 광기 어린 분노가 총알처럼 아스팔트 위를 질주하던 시대가 불러낸 사나이가 바로 노무현이었다.

 

(……) 그 뒤 그는 역사의 부름에 언제나 자기의 전 존재를 걸고 치열하게 응답했던 소수의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 치열함이 우리를 감동시켰고, 그 감동이 그를 끝내 이 나라의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까지 밀어 올렸다. 그것은 그의 명예이기 이전에 한 시대가 보여줄 수 있는 치솟은 숭고였으니, 그는 우리의 자랑이었다.

 

(……) 우리 시대가 오월 광주의 죽음에서 시작되었듯이, 모든 새로운 시대는 죽음 위에서 잉태된다.

 

(……) 뜨겁게 사랑했으므로 내가 미워했던 마음의 벗이여, 잘 가오. 그대 영전에 오래 참았던 울음 우노니, 그대 나 대신 죽어, 내 마음에 영원히 살아 있으리.”

 

기사 보기

 

김 교수는 자그마한 키에 곱상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노타이의 시원한 남방 차림으로 그는 약 두 시간 동안,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그러면서도 매우 확신에 찬 어조로 강의했다. 그는 우리에게 무언가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그는 뭐랄까, 자신의 실천을 통해서 정리하고 요약한 삶과 지향을 펼쳐 보여준 듯하다.

 

그의 강의 주제는 “내부로의 망명, 또는 낙오자 되기”였다. 망명은 뭐고, 낙오자는 무언가. 그는 우리 사회가 학벌을 기초로 한 차별이 일상화된 ‘병든 사회’라고 전제한다. 계급적 부를 바탕으로 소수가 최종 승자가 되면 중상위층 이하 80%는 구조적으로 낙오될 수밖에 없다. 이들의 각성이 학벌 사회를 해체하는 원천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이 학벌 체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는 ‘내부로의 망명’, 즉 ‘낙오자 되기’를 제시한다. ‘내부로의 망명’이란 식민지 시대 ‘창씨개명’과 일본말 강요를 거부했던 우리 선조들의 선택이다. 그들은 ‘국경을 넘는 망명’이 아니라 체제 내에서 체제의 요구를 거부하는 방식의 망명, 즉 내부로의 망명을 택했다.

 

김 교수는 가장 확실한 망명은 낙오자가 되는 것이고 말한다. 낙오는 ‘무능력의 표현’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선택’이다. 그는 교사는 확실한 낙오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학벌 체제로 온존시키는 기제로서의 입시교육을 거부하고 스스로 낙오자의 편에서 내일의 선구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청중들은 때로 탄성으로 때론 한숨과 폭소로 연사에게 화답했다. 우리는 잠깐 우리 삶과 직업의 실존적 고민에 빠져들기도 했던 것 같다. 그가 전개한 주제의 함의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마다 각각 다를 것이었다. 그러나 적어도 그게 현재의 우리 사회에 대한 냉철한 이해라는 사실은 다르지 않았을 거였다.

▲ 오늘 축제 중에 들른 어떤 동아리방에서. 어쨌든 아이들은 행복해 보인다.

나중에 나는 제목만 죽 정리해 놓은 강의 자료를 다시 읽어보았고, 잠깐 아이들에게 그중 일부를 읽어주기도 했다. 다음은 강의 자료에 실린 ‘청소년 학생들을 위한 조언’이다.

 

· 낙오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

· SKY 대학 못 갈까 봐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

·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 하지만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

· 하기 싫은 시험공부는 이제 집어치우고, 진짜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

· 이를테면 영어 문제집을 풀지 말고 영어로 된 책을 읽으라는 것

· 청소년 시기에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사람을 사랑하는 법이라는 것

· 할 수 있다면 너무 늦기 전에 하나의 악기를 배우는 것이 좋다는 것

· 쓸데없이 머리를 쓰는 것보다 몸을 쓰는 것이 자기를 위해서나 남을 위해서 훨씬 좋다는 것

· 사회활동을 하라는 것, 특히 약자를 위한 지원 활동을 하라는 것

 

낙오자가 뭘 뜻하는지 알겠지? 아이들은 겸연쩍어하며 낮게 소리 내어 웃었다.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다. ‘SKY 대학……’ 하는 부분에서 아이들은 더 크게 웃었다. 아이들은 모처럼 자신들의 고민 앞에서 얼굴을 가리지 않고 서 있는 기분일지 모른다.

 

모두가 좋은 대학을 가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게 현실이고, 그 현실을 아이들은 슬기롭게 받아들인다. 지금은 여전히 꿈을 버리지 않고 있지만, 아이들은 시간이 갈수록 여물어지고 단단해지는 것이다. 나는 물론이거니와 아이들 역시 그걸 알고 있다.

 

‘정작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야 한다’는 대목에서 아이들은 잠깐 심각해졌다. 정작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는 아이들이 많다. 왜냐면 보충수업과 야자를 하느라고 아무것도 해 보지 못했으니까. 아이들은 좀 쓸쓸하게 웃었다. 나는 내 아이들조차 그랬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우리 시대의 아이들은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조차 잘 모르고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다.

 

진짜로 ‘책을 읽어야 한다’든가, ‘악기 배우기’ 대목에서 아이들은 전폭적인 동의를 표시했다. 외국의 제대로 된 방과 후 활동을 이야기해 주니 아이들은 한편으로 부럽고 한편으론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랑하는 법은 누구나 아는 것 같지만 정작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고, 사랑은 결코 일방적 감정의 쏠림이 아니라 나눔이고, 배려이며 희생이라는 걸 나는 이야기했다. 아이들은 알 듯 말 듯 한 표정이었다.

 

‘남을 위한 활동’, ‘약자 지원 활동’ 부분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 이야기를 잠깐 했다. 나는 아이들이 뒤에 성인이 되어서도 사회적 약자를 따뜻하게 바라볼 줄 알고, 그들을 위해 낮은 데로 임할 줄 아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내일은 방학, 오늘은 삼복더위에 펼치는 축제로 학교가 떠들썩하다. 이틀을 쉬면 다음 주 월요일부터 아이들은 다시 보충수업을 받으러 학교에 나와야 한다. 꼬박 20일 동안. 그러니 제대로 쉴 수 있는 시간은 일요일과 마지막 주의 2, 3일에 불과하다. 하긴 그건 교사들도 마찬가지다. 김상봉 교수는 내부적 망명을 이야기했지만, 인문계 고등학교의 현실은 정말 녹록지 않은 것이다.

 

 

2009. 7. 16. 낮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