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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교단(1984~2016)에서

교사들, ‘풍등’에 마음을 담아 날리다

by 낮달2018 2021.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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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전교조 탄압중단과 참교육 지키기 경북 교사 문화제’ 풍경

▲ 밤이 깊어질 때까지 교사문화제는 이어졌다.

오랜만에 집회가 열렸다. 대부분의 초중고는 방학에 들어갔고 휴가를 즐기다 달려온 수백의 교사들은 맞춤한 저녁 7시에 경상북도 교육청 앞마당에 모였다. 분지 특유의 습한 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까짓것, 오랜만에 동지들을 만나는데 그쯤이야 참을 만하다.

 

전교조 경북지부가 ‘교사 대량징계 방침’에 저항하며 도 교육청 현관 앞에서 농성에 들어간 지 42일째다. 농성 8일째 잠깐 들렀으니 그새 한 달이 훌쩍 지나갔다. 내게야 ‘훌쩍’ 흐르고 만 시간이었지만 더위와 싸우면서 ‘성을 지켜’[농성(籠城)] 온 지부장과 농성 교사들에게 그 한 달은 끔찍하였다는 것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전교조 탄압중단과 참교육 지키기 경북 교사 문화제’다. 연일 30도를 상회하는 끔찍한 더위가 이어지는데 얼마나 모일까, 굳이 근심하지 않아도 되었다. 늘 그랬듯, 단지 몇 시간의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울진에서, 봉화와 청송에서 영덕과 포항에서 교사들은 기꺼이 달려와 주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과 전공노, 파업 중인 구미 KEC노동조합에서, 농민회와 민주노동당, 장애인학부모회, 전교조 대구지부에서 달려온 동지들의 숫자도 만만찮다. 어려울 때일수록 연대의 힘은 소중하고 세다. 그게 비록 ‘우리만의 잔치’에 그친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문화제이니만큼 집회는 교사들이 준비한 각종 공연 위주로 진행되었다. 교사들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고 영상을 보여주었다. 시를 낭송하고 판소리를 연창하고 지회별 공연이 이어졌다. 말 그대로 ‘투쟁에 대한 결의가 있는 문화제’의 형식이었다.

 

징계 의결이 요구된 김호일 사무처장은 담담하게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었다. 단지 좋은 교사이고 싶었다. 그래서 전교조를 선택했다. 그동안 가장 아쉬웠던 것은 여전히 제대로 된 교사로 서지 못했다는 점이다. 징계 의결이 요구된 전국의 교사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얘기다…….

 

그게 어찌 그의 맘에 그치랴. 그것은 집회에 참석한 모든 교사의 아픔이고, 소망이었을 터이다. 교사들이 전교조와 ‘참교육’을 선택하게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교사로서의 고민’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자신의 지위와 그 한계에 대해 고민하고 교단에 산재한 모순과 비교육적 관행 앞에서 고민한 이들, 그들이 바로 전교조 교사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사에 나선 김임곤 지부장은 책에서 읽은 ‘의사론’을 펴면서 조합원들의 역할을 주문했다.

 

“질병을 돌보되 사람을 돌보지 못하는 의사는 작은 의사이며

사람을 돌보되 사회를 돌보지 못하는 의사는 보통 의사이고

질병과 사람과 사회를 통일적으로 돌보는 의사는 큰 의사라고 합니다.

우리는 작은 교사보다 큰 교사가 되어야겠습니다.”

 

지역 노래패 ‘소리타래’의 공연이 끝나면서 자연스레 대동놀이가 이어졌다. 교사들은 앞 사람의 어깨를 짚어 긴 꼬리를 단 기차를 만들었고 기차는 행사장을 이리저리 헤집고 다녔다. 적지 않은 나이의 남녀 교사들이 어린애처럼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아주 오랜만이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젊디젊었던 후배 교사들이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들이 줄곧 싸워온 시간을 잠깐 생각했다. 30대 중후반의 팔팔했던 젊음을 중후한 장년으로 변화시킨 그 세월은 단순한 물리적 시간의 집적이 아니다. 그것은 번민과 좌절, 희망과 용기가 교차한 쉽지 않은 시간의 연속이었으리라.

 

행사의 마지막은 풍등(風燈) 날리기였다. 말로만 듣던 풍등이었다. 하얗고 빨간 등 안에 불을 붙여 띄우면 등은 두둥실 하늘로 떠올랐다. 밤 10시가 겨운 교육청 앞마당에서 떠오른 풍등은 이내 교육청 청사 위로 치솟았다.

 

하얗게 빛나는 교육청 로고와 간판 네온 위를 지나 마치 풍등은 무슨 예언이나 메시지처럼 국기 게양대 위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이내 그것은 빨갛게 명멸하면서 하늘 저편으로 사라졌다. 빨간 마지막 빛을 남긴 채 사라지는 풍등을 바라보면서 교사들은 무엇을 소망했을까.

 

42일 차 농성 보고에서 김임곤 지부장은 2010년 7월 20일 밤의 ‘전교조 탄압중단과 참교육 지키기 경북 교사 문화제’를 그렇게 정리해 주었다.

 

“오늘 꽤 넓은 마당을 메워주신 동지들 모두 스스로 선택한 길에서 늘 신념으로 살아오신 삶임을 압니다. 다소 어렵고 힘들 때 우리가 가야 할 거친 벌판을 외로움보다는 동지들의 따스한 가슴으로 함께 건너고 싶습니다.”

▲ 하늘로 날아오른 풍등에 실린 교사의 마음은 어떻게 사람들에게 다가갈까.

 

 

2010. 7. 21.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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