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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교단(1984~2016)에서

승진, 전교조, 현실

by 낮달2018 2021. 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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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진과 현실, 전교조 교사의 선택

얼마 전 <오마이뉴스>에서 현직교사가 쓴 서평 한 편을 읽었다. 책은 전교조 해직 교사 출신 1호 교장 한상준이 쓴 <다시, 학교를 디자인하다>. 그런데 기사의 제목은 “전교조 교사는 승진에 눈길 주면 안 되나”다. 기사 제목이야 편집부에서 붙인 것이겠지만 필자는 서평에 자신의 이야기를 녹여내고 있다.

 

교육 전문직 시험 전형에 지원했다가 1차 서류심사조차 통과하지 못했다는 필자는 자신의 전직(교원에서 장학사나 연구사 같은 교육 전문직으로 옮겨가는 것은 엄격히 말해 전직이다. 그러나 곧 교감, 교장이 되어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게 관례가 되어 있으니 ‘승진’이라 말해도 무방하겠다)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에 대한 부담을 고백한다.

 

몇몇 동료 교사의 보이지 않는, ‘삐딱한’ 눈길로 비유된 주변의 반응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그들은 학생과의 소통을 위해 애써 온 자신의 노력조차 온당하게 바라봐 주지 않는다. 자신의 노력을 교육청에 가기 위한 ‘스펙’ 준비 정도로 폄훼(?)하는 그 시선이 억울하다고 이야기하면서 필자는 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에서 엮은 <교장제도 혁명>에서 자신의 갈등을 풀 실마리를 얻는다.

 

“많은 진보적인 교사들이 교장이 되는 데 관심이 없었던 것에는 적어도 두 가지 이유가 있지 않을까? 첫째는 교장이 될 수 있는 사람(예를 들어, 승진 점수 관리 교사)은 정해져 있다고 기정사실화 했기 때문이다. 많은 교사가 그 승진 트랙에 들어가기보다는 차라리 아이들에게 더욱 충실한 교육자이길 원해 왔기 때문이다.”

- <교장제도 혁명>(2013, 살림터) 15쪽(위 기사에서 재인용)

 

일단 이 책은 진보적 교사들이 승진에 관심이 없는 가장 큰 이유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승진 점수를 관리하는 일은 진보적 교사들이 아니라도 승진에 관심이 없거나 그것을 포기한 교사들에게도 만만찮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사들은 ‘차라리 아이들에게 좋은 교사’로 남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물론 이 ‘좋은 교사’로 남는 일은 오히려 더 어려운 일일 수도 있고 또 ‘나쁘지 않은 교사’가 되기도 그리 쉽지 않다.)

 

전교조 교사도 승진할 수 ‘있다’

 

해직 교사 출신 교장이 경험을 통해 얻은 ‘가능성과 한계’를 짚어보면서 필자는 내년에도 교육 전문직 시험에 도전하겠다고 밝힌다. 그리고 ‘운이 좋아 전문직이 된다면, 학교에 있을 때 아이들을 위했던 마음 그대로 진정성을 갖고 근무할 것’이라고 다짐한다. 필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서평을 마무리하고 있다.

 

더불어 바라건대, 나는 좀 더 많은 전교조 소속 교사들이 이런 생각이나 태도를 가져봤으면 좋겠다. 일정 기간(교직 경력이 적어도 15년 이상이 되어야 교육 전문직에 응시할 수 있다) 학교에서 최선을 다해 아이들과 지내다가, 승진을 위해 나름대로 점수 관리도 하고 부지런히 연구 활동 등의 공부도 좀 해서 교육 전문직이나 교장, 교감이 되는 전교조 소속 교사가 더 많이 나오면 안 되나. 그리하여 그들이 교육청을 바꾸고 교장제도를 바꾸는 데 귀한 마중물이 된다면, 대한민국 교육이 조금은 바뀌게 되지 않을까.

      - ‘기사’ 중에서

 

빙빙 돌지 말고 할 말을 서두르자. 나는 충정으로 보이는 그의 의견에 백 번 동의한다. ‘차라리’론에 기대면서 현장에 남겠다는 전교조의 진보적 교사들의 발목을 잡는 것은 어쩌면 ‘자신감의 결여’나 ‘두려움’일지 모른다. 그들에게는 과감히 자신의 울타리를 넘어 새로운 신천지(!)를 향해 나아갈 용기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나는 한상준이 어떤 경로로 교장이 되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더러 교감을 거치지 않고 초빙 교장을 지낸 이가 전교조 안에는 드물지 않은데 이들은 전교조의 활동가로서 교장이라는 관리자가 되었던 이들이다. 그러나 한상준은 교육위원을 거친 뒤, 교육연구사, 교감, 교장을 거쳤다니 아마 우리 교육계의 일반적 승진 코스를 그대로 밟은 이 같다.

 

드물지만 주변에도 그런 이들이 더러 있다. 올 3월 정기 인사에서는 전임교에서 같이 근무했던 조합원 후배 교사가 연구사 발령을 받았다. 한때 시군 단위 지회장을 맡았던 오래된 활동가를 비롯하여 몇 명이 지난해 후반기와 올 상반기에 각각 교감 승진 발령을 받았다. 상황이 좀 다르긴 하지만 사립학교에서도 두 명의 전교조 활동가가 교감으로 승진했다.

 

물론 교장도 있다. 자기 고향에서 전교조 초창기부터 교육운동에 헌신해 왔던 선배 초등교사는 몇 해 전에 교장이 되었다. 또 인근 중학교에는 1989년 해직 동기가 교육연구사, 교감을 거쳐 현재 교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해직 동기 가운데는 현재 연구사로 근무하는 후배도 있다. 이들은 어쨌든 전교조 활동에 참여했지만, 승진이라는 관문을 무사히 넘은 이들이다.

▲ 이 명패에는 그가 승진하기 위하여 달려온 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승진하거나, ‘인간적 평판’을 잃거나…

 

이들에 대한 부정적 시선은 자칫하면 질시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일찌감치 승진 코스를 따라 달렸던 이들 가운데 승진을 전후하여 지금껏 자신이 쌓았던 인간적 평판을 고스란히 잃은 이들이 적지 않다. 그게 승진 과정에서 평정권자인 교장의 눈에 들기 위해서 한 부득이한 일이었든, ‘권력’을 가진 자로서의 요즘 유행하는 ‘갑질’이었든 그 평가는 온전히 그의 것일 수밖에 없다.

 

나는 기본적으로 서평 작성자의 의견을 존중하고 그의 주장을 경청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원론적인 견해에서다. 바람직한 학교 공동체를 위해서는 교감, 교장과 같은 학교 관리자로 진출하는 일은 필수적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런 개혁적 진보적 마인드를 가진 이들이 더 많이 학교 관리자로 나아가는 일이 학교 개혁과 교육 개혁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우리가 지금 발을 디디고 있는 곳은 여전히 20세기적 사고와 교육관이 온존해 있는 현실이다. 그리고 이 ‘현실’이란 온갖 지고 지선한 교육적 이상과 전망을 순식간에 무력화할 수 있는 상수(常數)다. 수십 년 동안 모순적 관행으로 온존해 온 이 교육계의 시스템을 기억해 보라.

 

단지 그 길이 쉽지 않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그 길로 들어서는 것이 변화의 출발점이라고 믿고 싶겠지만 기실 그것은 기존의 시스템에 포섭되는 첫걸음이기도 하다는 얘기다. 앞서 말한 바 있는 승진자들이 보여 준 변화는 결국 이러한 현실의 증거일 뿐이다.

 

‘승진을 위한 점수 관리’나 ‘부지런한 연구 활동’도 마찬가지다. 예의 ‘점수 관리’가 평정권자인 관리자들의 눈 밖에 나지 않는 일이고, 그의 부당한 지시를 따르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라는 건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불편한 진실이라는 얘기다.

 

괜찮은 성품의 동료라는 평판을 받고 있었던 승진 후보들이 결정적으로 자신의 평판을 잃고 ‘사람 변했다’는 평가를 받게 되는 때가 근무평정에서 이른바 ‘1등 수(秀)’를 받기 위한 과정이 아닌가. 승진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점수를 얻기 위해 ‘눈 한 번 질끈 감은’ 결과는 수십 년의 교직 생활에서 스스로 쌓은 평판을 단박에 잃어버리곤 하는 것이다.

 

교단에서의 ‘연구 활동’이 단지 점수를 따기 위한 과정일 뿐, 그 결과가 다른 동료나 교수 학습활동을 위한 유용한 자료가 되는 일이 전혀 없는 게 이 나라 교단의 현실이다. 기실 승진을 위해 달리는 숱한 교사들은 끊임없이 연구 활동에 ‘매진’하지만 그게 자신의 점수에만 유용할 뿐, 다른 어떤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정작 승진과 무관하게 전교조 산하의 교과 모임에서 이루어지는 연구과 실천 사례들이 동료 교사들에게 유용한 실천 방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은, 그래서 역설적이다. 지금도 자신조차 이해시킬 수 없는 연구를 위해 온갖 잡다한 사례들을 짜깁기하고 있는 교사들이 적지 않다는 것은 일종의 코미디고 비극이다.

 

“운이 좋아 전문직이 된다면, 학교에 있을 때 아이들을 위했던 마음 그대로 진정성을 갖고 근무할 것이다. 불합리한 교육 정책이나 프로그램에도 비판을 해야 하거나 딴지를 걸어야 할 때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하겠다. 요컨대 ‘전문직’으로서 위상에 걸맞게 할 말, 할 일은 하겠다는 것이다.”

    -  기사’ 중에서

 

거듭 말하거니와 나는 필자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전문직이 되더라도 진정성을 잃지 않고 비판할 때는 비판하고 전문직의 위상에 걸맞은 활동을 할 것이라는 다짐에 담긴 그의 순수성을, 그의 소박한 정의감을 믿는다.

 

그러나 역시 현실은 만만치 않다. 앞서 든 전교조 해직 교사 출신으로 전문직에 진출해 교감, 교장이 된 이들에게도 자기 나름의 신념과 계획이 있었을 것이다. 승진하자마자 그들만의 세계와 논리에 투항하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계에 형성된 관행과 기득권의 성채는 완강하다. 적어도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는 데는 군대에 못지않은 동네가 교육계니까.

전교조 해직 교사 내지는 활동가의 정체성을 가진 채 교장으로 초빙되어 단기간 교장으로 학교를 운영했던 사람들과 승진의 과정을 거쳐 온 이들이 명백히 갈리는 지점이 여기다. 교육계에서 볼 때 초빙 교장들은 단기간 스쳐 가는 이들에 불과하다. 그러나 공인된 코스를 거쳐서 관리자로 편입된 사람들에게 기득권은 종래의 질서와 위계를 따를 것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나름의 선의와 가치관을 지키고자 하는 승진자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현실은 매정하다. 변화를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당위와 냉정한 현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 보면 어느새 그 기득권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런 상황에서 이들의 진정성이나 초심을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일일 뿐이다. 평교사에서 관리자가 되는 것은 단순한 지위의 변화가 아니라 ‘계급’이 바뀌는 것이다. 그것은 기존의 사고와 인식, 가치와 판단을 넘어서 새로운 자리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는 뜻이다. 더 이상 그는 교사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너무 비관적인가. 나도 낙관적인 이유를 찾기보다 비관적인 이유를 더 쉽게 찾을 수 있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긴다. 나도 가끔은 교감을 부러워한다. 때로 무거워지는 수업의 부담 앞에 잠깐, 그의 자리에 자신을 한 번씩 올려보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교사들은 무력한 평교사로서 넘을 수 없는 벽과 한계 앞에서 관리자가 되어서 그 현실을 타개하는 ‘금단’의 꿈을 꾸어보기도 한다.

 

승진을 ‘영혼’과 바꿀 수 있는가

 

그 꿈이 ‘금단’인 이유는 설명한 바와 같다. 무엇보다도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른바 ‘영혼 없는 교사’가 되기를 꺼리지 않아야 하는 현실 앞에서 나는 그래도 그 길을 가라고 말할 자신은 없다.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관은 물론이거니와 때론 일상적 인간관계마저 잃으면서 얻을 수 있는 승진과 영혼을 바꾸라고 권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다.

 

어쩌다 보니 나는 최악의 상황만을 이야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안다. 승진하는 이들이 모두 내가 가리킨 경로를 거치지는 않을 것이다. 자기 생각과 삶의 방식을 온전히 지키면서 승진의 벽을 넘은 이들도 물론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일반적 상황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해직 동기 가운데 지금 승진의 외길을 질주하고 있는 후배가 있다. 그는 한때 열혈 활동가였지만 어느 날부터 승진을 자신의 진로로 선택했다. 같이 근무하는 게 아니어서 내밀한 속내는 알 수 없지만, 승진에 도움이 되는 일에는 청탁을 불구하고 이름을 걸치는 걸 보면서 내가 고까워한다는 걸 그는 알았다.

 

“이러는 걸 선배는 아주 부정적으로 보시지요?”

“응. 그러나 이왕 마음먹은 거 나는 자네가 승진했으면 좋겠어. 그러나 그런 모습들이 그리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거든…….”

 

아름답지는 않더라도 그렇게 해서 그가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면, 그리고 해직 무렵의 초심을 자신의 자리에서 얼마간이라도 녹여낼 수 있다면, 하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면 그 과정에서 빚어진 사소함은 용서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지난해 하반기와 올 상반기에 각각 승진해 초임 교감 발령을 받은 후배 교사들에 관한 소식은 아직은 조용하다. 승진 무렵에 얼마간 무리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그게 평판을 모두 잃을 만한 상황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가능하면 이들이 자신의 평판을 잃지 않은 채 합리적인 관리자로 안착할 수 있기를 바란다.

 

승진을 목표로 길을 떠나려는 후배 교사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 그러나 하나둘 승진하는 후배들이 늘어나면 그 완고한 기득권, 관행적 모순의 성채에도 균열이 가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없지 않아 있다.

 

거듭 말하거니와 교육 전문직을 꿈꾸고 다시 공개적으로 거기 도전하겠다고 밝힌 꿋꿋한 후배 교사에게 그 길을 가라고 기꺼이 격려하지는 못하겠다. 그러나 그의 결심이 그처럼 단호하다면, 실패에 연연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의 길을 응원하고 싶다. 그리고 그가 어렵사리 목표에 이르게 되고, 그 완고한 시스템에 한 줄기 신선한 변화를 만들어 나갈 수만 있다면 더는 바랄 게 없겠다.

 

 

2013. 7. 26.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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