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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랭이, 그 꽃과 갓

by 낮달2018 2021.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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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내가 좋아한 그 꽃 ,패랭이

▲ 패랭이꽃. 흔히 ‘Chinese pink’라 하듯 분홍 꽃이 많으나 개량종이 여러 종류다. ⓒ 국립수목원
▲ 패랭이꽃. ⓒ 국립수목원

교정에 패랭이꽃이 핀 지 한참 되었다. 요즘 꽃은 시기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피긴 하지만, 이는 바지런한 동료 교사가 온 교정을 꽃밭으로 만들어 놓은 결과다. 가파른 오르막인 학교 진입로로 오르면 만나는 언덕 비탈에 오종종하게 패랭이꽃이 피었다. 보통 ‘오종종하다’라고 하면 좀 답답한 느낌이 있는데 패랭이꽃 무더기는 그렇지 않다.

 

꽃잎도 작은데다 키도 한 30cm 정도에 지나지 않은데도 패랭이꽃이 오종종한 느낌을 주지 않는 것은 마치 대나무처럼 마디가 달린 가지 덕분인 듯하다. 잎은 마주 달리는데 대나무 잎과 비슷하다. 달리 ‘석죽(石竹)’이라고 불리는 까닭이다. 패랭이꽃은 우리나라와 중국에 분포하며 낮은 지대의 건조한 곳이나 냇가 모래땅에서 자란다.

 

청소년기의 한때, 패랭이꽃은 ‘좋아하는 꽃’이었다. 또래들이 모여 이야기하다 보면 꼭 ‘감명 깊게 읽은 책’이나 영화, ‘좋아하는 배우’ 따위와 마찬가지로 ‘좋아하는 꽃’도 필요하기 마련이었다. 시골에서 자랐으니 도시 사람처럼 꽃을 화병에 담아서 감상하는 법 따위도 잘 몰랐고 무엇보다 ‘꽃구경’을 정말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었다.

 

장미나 백합 따위의 꽃도 교과서에서나 만났을 뿐이다. 꽃이라면 개나리나 ‘참꽃’이라 부르던 진달래, 여름에서 가을까지 동네에 지천으로 피어 있던 접시꽃이나 분꽃, 가을이면 길을 따라 줄지어 피는 코스모스 정도를 떠올리는 게 고작이었다. 나라와 국민은 가난했고 꽃을 완상(玩賞)하는 일은 사치 쪽에 더 가까웠던 시절이었다.

 

그나마 패랭이꽃을 기억하고 그 야생화를 ‘좋아하는 꽃’으로 매긴 건 지금 생각해도 가상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 내게는 ‘좋아하는 꽃’이 따로 없다. 비닐하우스에서 재배된 꽃이 철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시절이건만 여전히 꽃을 즐기는 것과는 무관하게 살아온 까닭이다.

 

어저께, 꽃을 기르는 동료 여교사가 ‘제일 좋아하는 꽃은 아라비안 재스민이고, 두 번째로 좋아하는 꽃도 무슨 재스민이고…….’ 하고 말하는 걸 들으며 나는 자신이 참 ‘가난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런데 나는 무슨 꽃을 좋아하나? 하고 자신에게 물어본다. 별 감흥 없이 몇 가지 꽃 이름이 떠오르긴 하지만 거기서 마땅한 답을 찾기는 어렵다.

▲ 차례대로 학교 교정에 핀 패랭이꽃

패랭이꽃은 내 어릴 적의 앞산과 뒷산, 그 비탈마다 지천으로 피던 꽃이었다. 요즘에야,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에 카네이션 특수가 이루어질 만큼 흔한 꽃이지만, 적어도 내 고교 시절까지만 해도 그건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는 꽃은 아니었다. 그게 카네이션과 닮았다는 걸 깨달은 것은 스무 살이 넘어서였다. 카네이션도 패랭이꽃과 같은 석죽과의 여러해살이풀이었다.

 

패랭이꽃의 꽃말은 ‘순결한 사랑, 영원한 사랑, 부인의 사랑, 여성미’라고 한다. 그 꽃말은 10대를 감동케 하기엔 과부족이 없다. 패랭이꽃에 담긴 아픈 전설도 눈물겹다. 그러나 나는 패랭이꽃과 연관해 늘 ‘패랭이’를 떠올린다.

 

패랭이라면 조선시대에 역졸, 보부상이 머리에 쓰던 모잔데, 그것을 뒤집은 모습이 이 꽃의 꽃받침통과 꽃잎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같은 이름이 붙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패랭이’를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패랭이

「명사」

「1」 『식물』=패랭이꽃「1」.

「2」 댓개비로 엮어 만든 갓. 조선 시대에는 역졸, 보부상 같은 신분이 낮은 사람이나 상제(喪制)가 썼다. ≒평량갓ㆍ평량립(平涼笠)ㆍ평량자(平涼子)ㆍ평립(平笠)ㆍ폐양자(蔽陽子).

【<펴랑이<동의>】

▲ 패랭이. 평량갓, 평립 등으로 불렀다.  ⓒ  엔싸이버백과

‘댓개비’는 ‘대를 쪼개 가늘게 깎은 오리’고 ‘오리’는 ‘실, 나무, 대 따위의 가늘고 긴 조각’이니 패랭이는 줄이면 ‘대나무로 만든 갓’이다. 패랭이는 조선조 입제(笠制)에서 초립(草笠)·흑립(黑笠)·백립(白笠)·전립(戰笠) 등의 기원으로 보면 될 듯하다.

 

패랭이는 원래 방립(方笠:삿갓)과 마찬가지로 일반이 두루 쓰는 것이었다. 그러나 고급 관모가 나타나자 용도가 점점 국한되어 뒤에는 선비가 상제(喪制)일 때 썼다. 보통 패랭이는 원래 색 그대로 썼으나 역졸은 검은 칠을 해 썼고, 부보상은 갓끈을 꾀어 단 꼭대기에 목화송이를 다는 것이 통례였다. 천민은 패랭이를 쓰되, 양반을 만나면 패랭이를 벗고 길옆에 엎드려야 했다.

 

패랭이가 발전하여 관례를 끝낸 소년이 흑립[갓]을 쓰기 전까지 착용하는 초립이 되었고 마침내 후세에 ‘갓’ 또는 ‘입자(笠子)’라고 부른 흑립으로 정립되었다. 가는 대오리나 누런 빛의 가는 풀로 결어 만드는데, 재료에 따라 죽사립(竹絲笠)·모립(毛笠)·죽립(竹笠)이라고도 불렀다. 흔히 ‘초립동’이라고 하면 관례를 치른 후 혼례 전까지 이 초립을 쓰던 소년을 이른다.

 

백립(白笠)은 삼베로 만든 상용(喪用)의 흰 갓이다. 가늘게 쪼갠 대나무로 흑립과 같은 모양으로 만들고, 다시 그 위에 베를 입혔다. 백포립(白布笠)이라고도 한다. 국상(國喪)이나 부모상 때 썼다. 삼베나 대나무를 깎아 다듬어 만들며, 모양은 갓과 같다. 왕이나 왕비가 죽으면 백성들은 소복을 하고 백립을 썼다고 한다.

 

전립(戰笠)은 조선시대 융복(戎服, 군복) 또는 구군복(具軍服)에 쓰는 갓이다. 전립(氈笠)·모립(毛笠)이라고도 한다. 사극에 무반들이나 포도대장이 착용하던 것이다. 흔히 ‘벙거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요즘도 굿을 벌일 때, 무당이 신의 위엄을 보이기 위해 이 전립을 쓴다.

 

패랭이는 이미 지나간 시대의 유물이지만 보부상이 목화송이를 달고 쓰는 게 제격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나마 보부상들이 쓴 패랭이를 떠올릴 수 있는 건 김주영의 대하 장편소설 <객주(客主)>와 그걸 만화로 그린 만화가 이두호 덕분이다.

 

소설은 20년도 전에 읽었고 만화는 두어 권쯤 읽은 듯한데, 지금은 기억도 아련하다. 주 무대였던 진보는 작가의 고향인데, 청송군에서는 거기에 2012년까지 ‘객주 테마 문학촌’을 건설한다고 한다. 그의 문학은 지방자치 시대를 맞으면서 ‘객주 테마 타운’으로 기려지게 된 셈이다.

 

테마 타운엔 ‘객주 문학관’과 주막을 중심으로 한 ‘객주 테마 장터’ 따위가 들어서리라는데, 이 21세기의 시장친화적 문학촌에서 천봉삼과 그 동무들이 펼쳐 보이는 ‘등짐과 봇짐장수’들의 삶을 얼마나 재현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교정에 핀 패랭이꽃을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다 빠진 한갓진 생각에서 깨어나니 장맛비가 요란하다. 곳곳에 물난리라는데 그나마 수해와는 무관한 안전지대에 사는 걸 운 좋다고 기꺼워할 수도 없고, 집을 잃고 길거리로 나앉은 이들을 생각하면 민망하기 그지없다.

 

 

2009. 7. 19.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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