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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 돈가스’ 하나로 고향 사람들을 홀린 두 청년

by 낮달2018 2021.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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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의성 청년 창업 이야기 ⑤] 안계면 경양식집 ‘달빛레스토랑’ 사장 소준호·김동찬씨

▲ 의성군 안계면의 유일한 경양식집 ‘달빛레스토랑’. 안계 출신으로 도회에 살던 두 청년이 귀향해 창업했다. 

안계의 ‘달빛레스토랑’ 소식을 들었을 때, 내가 상상한 것은 1980년대 초임 시절의 소읍에 있었던 경양식집이었다. 도시 못잖은 실내장식에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던, 다소 어두운 조명의 그 레스토랑은 젊은이들로 붐볐다. 나도 몇 차례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돈가스를 사 먹이곤 했었다.

돌아온 청년들, 고향에 레스토랑을 열다

지난해 8월 문을 연 달빛레스토랑은 수제 맥주 공방 호피 홀리데이로 들어가는 골목 입구에 있었다. 출입문 옆에 ‘의성형 도시 청년 시골 파견제 1호점’이라는 명패가 붙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한눈에 실내가 고스란히 들어왔다.

맞은편은 주방이었고, 두 줄로 놓은 테이블은 모두 다섯 개에 불과했다. 천장에서 늘어뜨린, 갓을 씌운 조명과 벽에 붙은 그림 액자, 커다란 관엽 식물 화분 따위가 레스토랑이라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을 뿐, 생각보다 너무 작았다. 나는 다른 공간이 있나 싶어 주방 뒤편을 기웃거려야 했다.

내 현실 감각은 자리에 앉으면서 회복됐다. 내 기억 속의 레스토랑이 있었던 지역은 읍(邑)이었고, 의성 서부 지역의 중심이라고 해도 안계는 인구 5000명의 면(面)이었다. 나는 실내 규모를 아쉬워했지만, 이 가게도 두 창업자가 몇 개월이나 기다린 끝에 간신히 빌린 집이었다. 그러니까 달빛레스토랑은 건물이나 공간도 제대로 없는 시골에 문을 연 것이다.

달빛레스토랑을 연 소준호, 김동찬 씨는 의성에서 창업한 청년들 가운데 유일한 토박이다. 마찬가지로 청년 창업자인 오늘손만두의 김진우씨는 안계가 부친의 고향이지만, 두 사람은 안계면 출신의 초·중학교 동창인 31살 동갑내기다. 학교는 다르지만, 호텔외식조리과를 나온 두 사람은 10년 동안 객지 밥을 먹고 있었다.

요리를 공부한 두 사람은 진로를 고민하다가 도시 청년 시골 파견제를 통해 전격 귀촌, 이 가게를 열었다. 창업 10개월, 그러나 가게는 호피 홀리데이 못지않게 자리를 잡았다. 내가 동행한 친구와 함께 식사하는 동안 나머지 탁자는 모두 차 있었다.

▲ 테이블 5개가 놓인 조그만 레스토랑은 그러나, 지역민들과 고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소준호 씨는 군대에서 취사병으로 한식을 배웠고, 제대 후 호텔외식조리과를 거쳐 학교 추천으로 영국 웨스트민스터 킹스웨이 컬리지(Westminster Kingsway College)에서 공부했다. 이들이 도시 청년 시골 파견제의 혜택을 입은 것은 전적으로 고향을 떠나 외지에 적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막상 파견제의 지원을 받게 되었으나, 마땅한 가게 자리를 얻는 데 몇 달이 지나갔다. 손수 내부 장식을 하고 연 가게가 경양식 레스토랑이 된 것은, ‘음식은 지역의 정서와 형편에 맞추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마늘을 이용한 돈가스와 가성비 좋은 파스타

준호씨는 레스토랑을 열기 전인 2020년 6월, 의성군 ‘먹거리 메뉴 경진대회’에서 ‘와인 소스를 곁들인 갈릭 포크 커틀렛’로 최우수상을 받았다. 의성군 특산품인 마늘과 와인을 졸여 만든 소스로 만든 돈가스다. 향과 맛이 강한 의성 특산품인 한지(寒地) 마늘을 이용한 것이다.

“양식이라고는 하지만 시골에 처음 생기는 레스토랑에 스테이크를 내놓을 수는 없는 일이지요. 우리는 지역 정서에 맞추어 메뉴를 구성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친숙한 돈가스와 파스타 정도를 가성비 좋게 선보이려고 했지요. ”

달빛레스토랑의 돈가스는 도축한 지 일주일이 안 된 고기로 만든다. 고기의 비린내는 마늘로 잡는데, 상당한 풍미와 식감을 느낄 수 있다고. 질기고 퍽퍽하지 않은 고기로 만든 1만 원짜리 돈가스는 손님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양도 풍부한 데다가 곁들이는 익힌 채소와 샐러드 등 사이드 메뉴도 좋다는 입소문이 난 것이다.

다양한 요리를 고객들에게 선보이기 위해 매일 ‘오늘의 메뉴’를 내는데 첫 방문 때 나와 동행한 친구가 주문한 것은 새우와 바질을 이용한 오일 파스타 ‘쉬림프 바질 파스타’였다. 파스타와 그리 친하지 못한 나는 돈가스를 먹었는데, 정말 겉은 바싹바싹하고 속은 촉촉한 고기의 풍미가 좋았다.

▲ 달빛은 다양한 요리를 고객들에게 선보이기 위해 매일 ‘오늘의 메뉴’를 낸다. 
▲ 내가 주문한 돈가스와 동행한 친구가 시킨 오늘의 메뉴 ‘쉬림프(새우) 바질 파스타’ 

대표 메뉴로 수제 피자를 꼽는데, 달빛의 피자는 일반 도우를 쓰지 않고 페스츄리 도우를 쓴단다. 보통 피자를 먹으면 빵 부분을 남기는 사람들이 많아서, 이 빵 부분을 더 맛있게 먹는 방법을 고민한 끝에 개발한 메뉴다. 달빛 피자는 크루아상과 비슷한 식감을 낸다고.

“달빛이 생겨서 다행이래요”

준호씨는 또 의성 마늘의 향을 입힌 수제 ‘갈릭(마늘) 돈가스’를 대표 메뉴로 소개했다. 마늘 돈가스는 옛날 과자 ‘누네띠네’와 같은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어쨌든 매일 오전 11시 30분에 열고 오후 8시에 닫는 달빛레스토랑은 매일 50~100여 명이 꾸준히 찾아주면서 입소문이 적잖이 났다. 평일에 현지 손님이, 주말에는 외지 손님이 많은 것은 그래서다.

“우리 가게가 안계의 유일한 경양식집인데요. 사실, 안계에는 젊은이들도 마땅히 고깃집 말고는 갈 만한 식당이 없었지요. 어린 자녀를 둔 젊은 부부들도 고기 굽는 식당 외는 선택지가 없었는데, 우리 가게가 맞춤한 공간이 된 거지요. 그런 말씀을 많이 하셔요. 달빛이 생겨서 다행이라고…”

창업 10개월 차, 지금 목표의 어디쯤 온 거냐고 묻자, 굳이 그렇게 따지기보다는 자신들이 의성군과 같이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시작할 때의 마음가짐으로 달빛을 지켜가겠다고 했다. 창업할 무렵과 지난해 말, 그리고 올해 초 코로나19로 집합 제한과 영업시간 제한이 시행될 때, 다들 어려운 시기에도 자신들을 할 일을 꾸준히 해 왔다면서.

고향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각자 본가에서 지낸다. 외지에서 십 년 넘게 살다가 어느 날, 고향에 돌아와 창업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는 곤혹스러워하면서 적지 않게 걱정을 했다. 이런 시골에 레스토랑이 가당키나 하냐는 반대 의견에 두 사람은 오히려 시골이 ‘블루오션’이 될 수 있다고 맞섰다.

결론적으로 두 사람은 자신들의 판단이 옳았다고 여기는 듯했다. 가게를 운영하면서 막막해지는 때는 없었냐고 물으니, “바쁘게 지내다 보니 그럴 겨를이 없었다”고 했다. 그렇다. 확정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일이 없어 한가해지는 시간에 똬리를 트는 게 회의 아니던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면 회의 따위가 새어들 틈도 없는 것이다.

▲ 달빛레스토랑을 연 소준호(오른쪽), 김동찬 씨는 안계면 출신의 초 · 중학교 동창인 31살 동갑내기 친구다. 

사랑과 성원을 지역에 돌려주다

내 질문의 끝은 늘 ‘자기실현’이다. 사람은 자기가 싫어하는 일을 하면서도 고수익을 올릴 수도 있지만, 반대로 많이 벌지는 못하지만 자기 일을 사랑하며 살아갈 수도 있다. 요컨대 나는 수입과 무관하게 자기 일을 즐거이 하면서 살고 있느냐고 묻는 것이다.

“저는 제가 선택한 삶에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제가 하는 일에 보람을 가지고 있으며, 한자리에 머물지 않고 발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작은 시작에 불과하지만,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안사우정국에 갔을 때, 나는 단풍이 좋은 가을 무렵에 다시 들르겠다고 약속했다. 막 첫걸음을 뗀 젊은이들의 앞날이 궁금해서였고, 몇 달 뒤에도 여전히 씩씩하게 살아가는 그들을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그들의 용기와 도전이 대견하지만, 행여 이 시도가 좌절하게 된다면 그 책임이 우리 세대에 있는 듯해서였다.

그러나 오늘손만두나 호피 홀리데이와 마찬가지로 달빛레스토랑은 먼곳에서 스쳐 지나가도 충분할 듯했다. 이제 막 ‘지역에 뿌리내리기’라는 첫 관문을 지났지만, 이 도전에는 개인의 응원보다 지역민들의 성원과 사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이 사랑을 지역에 되갚는 일 또한, 이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2021. 6. 25. 낮달

'마늘 돈가스' 하나로 고향 사람들을 홀린 두 청년

[경북 의성 청년 창업 이야기 ⑤] 안계면 경양식집 '달빛레스토랑' 사장 소준호·김동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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