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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과 밤’이 다른 수제 맥주 공방, 술만 만들지 않아요

by 낮달2018 2021.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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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의성 청년 창업 이야기 ④] 가치와 경험을 나누고픈  ‘호피 홀리데이’ 대표 김예지 씨

▲ 김예지 씨의 수제 맥주 공방은 한길에서 10m쯤 떨어진 골목 안에 있다. 마주 보이는 담에는 홉(hpo)이 키보다 더 높이 자라고 있다.
▲ 맥주의 원료인 홉 (hop).  다년생 풀인 홉은 의성군 단북면의 홉이든에서 재배한다.

경북 의성군 안계면 소보안계로에 있는 조그만 수제 맥주 공방 ‘호피 홀리데이(Hoppy Holiday)’는 의성 청년 창업의 맏이 격이 되는 가게다. 가게 명판에는 청년 점포 4호점이라 되어 있지만, 이는 등록된 순서일 뿐, 안계에 들어선 가게 가운데선 맨 먼저 문을 연 곳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에 문을 연 이 가게는 도로변에서 10m쯤 들어간 골목에 오른쪽으로 돌아앉아 있다. 하얀 페인트칠을 한 단층 슬래브집은 현관문 양쪽에 붙인 명판과 마당에 높이 매달아 놓은 전등들만 아니면 여염집처럼 보인다.

 

호피 홀리데이(아래 ‘호피’)는 “홈브루잉(homebrewing 가정 양조)을 즐겨하는 양조인들과 취미로써 맥주 양조를 경험하고 배우고 싶은 일반인들을 위해 장소와 커리큘럼을 제공”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김예지(30) 대표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브루어(brewer) 및 청년, 지역민의 커뮤니티 지원을 통해 수제 맥주를 만드는 것을 넘어 가치와 경험을 나누는 곳”(누리집)으로 만들어 가고 싶어 한다.

 

그는 ‘잘 만들어진 훌륭한 맥주 한 잔’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 일’을 실현해 주는 ‘훌륭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대기업 직원으로 안정된 삶을 버리고 소멸 위기의 시골 의성에 들어와 호피를 연 것은 그가 자기 삶을 실현하는 과정이다.

 

▲경북과 의성군의 ‘청년 시범마을 일자리사업’ 지원 명판과 경북투어마스터 명판.
▲ 호피 홀리데이의 공방. 벽과 바닥에 수제 맥주를 만드는 도구들이 걸리거나 놓여져 있다. 공방은 밤에는 펍으로 바뀐다.

전국에서 모이는 사람들, 공방은 ‘전국구’다

 

경력 5년의 브루어(양조사)로 가정 양조를 대중화하고 싶었던 예지 씨는 애초엔 서울과 부산의 중간쯤인 대구에 공방을 차려 활동의 교두보를 꾸릴 심산이었다. 그러나 농수산식품유통공사 양재AT센터에서 국내 최대의 홉 생산 농가인 의성군 단북면의 홉이든(hopeden) 대표를 만나면서 그는 새로운 일터가 깃들일 곳을 의성으로 바꾸었다.

 

이미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대도시보다 신선한 홉 생산지가 지척인데다가 지역사회와 상생할 수 있는 시골 의성에 마음이 기울어졌다. 다양한 국산 재료와 자신만의 비법으로 ‘의성 맥주’를 만들어보고 싶었고, 무엇보다도 경상북도와 의성군의 ‘청년 시범 마을 일자리 사업’에 선정되면 적지 않은 창업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1년, 그는 인구 5천의 시골에서 수제 맥주 공방을 꾸려 나가는 게 가당키나 하냐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간단히 뒤집어 놓았다. 그의 공방에는 가정 양조를 경험하고 싶은 이들이 끊이지 않고 찾아온다. 강원도 평창과 전남 목포에서, 제주도에서도 호피를 찾아오니 어느새 그의 조그만 공방은 ‘전국구’가 되었다.

 

그는 초·중·고급반에다 전문가 과정까지 개설해 놓았지만 정작 교육을 원하는 이는 동호인보다는 관심 있는 일반인들이 주류다. 보통 낮에는 원데이 클래스(하루 몇 시간 동안 일회성으로 이뤄지는 수업)를 운영하는데 수업은 1인부터 25명의 단체수업까지 다양한 형태로 진행된다. 단체수업이나 단체행사일 땐 출장도 나간다.

 

“한 달에 수업이 없는 날이 거의 없을 정도로 전국에서 꾸준히 찾아오셔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인지라 당황스러우면서도 너무 감사하지요. 공방은 저녁 6시 이후에는 펍으로 운영해요. 펍은 지역민들의 쉼과 놀이문화의 역할을 담당하지요. 시골이니 도시처럼 심야까지 붐비지는 않지만, 손님들이 꾸준히 찾아주시네요.”

 

코로나 상황이라, 수입은 기업에 있을 때보단 못하지만, 생활하는 데 지장 없을 만큼은 된다고 했다. “그래도 너무 행복하다”라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엔 활력이 넘치고, 자기 삶에 대한 강한 긍정이 묻어났다. 이쯤 되면 그의 창업은 ‘성공’이다. 그러나 현재 목표의 몇 %에 이르렀냐는 질문에 그는 30%라고 했다. 우리는 단순 셈법으로 ‘수지’를 따졌지만, 그는 꽤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동안 상업 맥주 양조, 원데이 클래스, 생홉 양조 프로그램, 마켓 행사 참여 등을 진행하였으니, 계획한 것들은 모두 마칠 수 있었어요. 2년 차에는 초급·중급·전문가 교육과정을 추진하고, 홉 축제, 맥주 축제 등을 구체화하려고 합니다. 코로나가 안정되면 순차적으로 진행할 거예요. 장기적으로는 양조장을 계획하고 있고요. 쉽진 않겠지만,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 호피 홀리데이에서 교육생들이 만든 수제 맥주. 자신이 만든 맥주는 집에 가져갈 수 있지만, 팔지는 못한다.
▲ 호피의 발효실. 발효는 계절에 따라 다르지만 1~2주일이 걸린다. 
▲ 수강생들이 직접 만든 맥주를 병입하여 호피를 떠나면서 찍은 기념사진.

수제(手製) 맥주 또는 크래프트 맥주(craft beer)는 “대기업이 아닌 개인이나 소규모 양조장이 자체 개발한 제조법에 따라 만든 맥주”(위키백과)다. 과일 향이 나고 홉의 쓴맛이 짙게 배어 나오는 등 저마다 풍미를 지닌 수제 맥주는 맥주 제조자의 개성만큼이나 다양한 맛이 특징이다.

 

수제 맥주 시장은 초기, 성장 잠재력 크다

 

요즘 규제가 풀리면서 편의점에서도 수제 맥주를 살 수 있지만, 시장은 전체 맥주 시장의 1%에 못 미친다. 의성에까지 호피를 찾는 발길이 이어지는 이유가 거기 있었던 셈이다. 시장이든, 업계든 수제 맥주에 매료된 이들을 품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를 김 대표는 역으로 수제 맥주의 ‘지속가능성’으로 읽고 있었다.

 

“맥주의 주 소비층 20~40대의 소비패턴은 다양한 맥주를 맛보고자 하지요. 또, 단순히 술만 마시는 게 아니라 음악, 예술, 마라톤 등 다양한 문화와 결합한 형태로 소비가 이루어지고요. 이런 소비 행태에 민감하게 응답할 수 있는 데가 수제 맥주 양조장이지요. 홈브루잉 또한 증가추세에 있으며 수제 맥주 공방도 다양한 형태로 생겨나고 있습니다. 아직 초기시장이지만, 장기적으로 발전 가능성은 충분하고요.”

 

나는 두 차례 들렀지만, 두 번 다 호피는 예정에 없던 휴업 중이었다. 그의 양조 수업을 지켜볼 수도, 그가 빚은 맥주를 구경할 수도 없었다. 공방에서 양조 체험을 한 이들은 자기가 빚은 맥주를 가져갈 수는 있지만, 그 맥주를 판매할 수는 없다. 호피는 판매 허가를 낼 수 없는 ‘소규모 양조 시설’이기 때문이다.

 

호피가 “공방을 통해 개발된 레시피를 통해 우리와 색깔이 맞는 수제 맥주를 양조할 수 있는 상업 양조장과 연계하여 주문자 생산 방식(OEM)으로 제품을 개발 판매”하겠다고 밝히는 이유다. 또 그가 장기 계획으로 ‘양조장’(brewery)을 세우려는 이유도 같다.

 

▲ 김예지 대표가 탭에서 맥주를 따르고 있다. 탭 위쪽에는 다양한 형태의 핸들이 달려 있다. 탭을 감고 있는 것은 마른 홉이다. ⓒ 김예지 제공

그는 호피를 단순한 펍에 그치지 않고 “청년, 지역민의 커뮤니티 지원”으로 “가치와 경험을 나누”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누리집에 제시된 ‘호피 홀리데이의 핵심 가치’ 가운데 “세대 간의 디딤돌 역할”을 해내고 “지역사회의 발전과 문화교류”에 힘쓰겠다는 대목이 입바른 소리로 들리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주변 청년 창업자들과 ‘위로와 힘’을 나눈다

 

호피 홀리데이의 옆 담에는 홉이 풍성하게 자라고 있다. 맥주의 맛과 향을 내주는 홉은 맥주 원료의 하나로 여러해살이 넝쿨식물이다. 호피는 홉 생산 농가인 의성군 단북면의 홉이든과 함께하면서 감히 ‘맥주 도시 의성’을 상상하고 있다.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창대”할지 모르는.

 

‘긍정적인 성향’이 강한 데다가 ‘도파민이 넘치는 창업 초기’라 그는 아직 한 번도 회의 따위에 빠지지 않았다고 했다. 자신의 선택을 지지하고 성원하는 부모님이 든든한 배경이고, 주변의 청년 창업자들과 친해져 서로가 ‘위로와 힘’이 되어주며 지치지 않도록 이끌어주고 있다고 했다.

 

그는 안계면 청년 주거단지에 입주해 산다. 저녁에 친구들과 바베큐파티를 하거나 가까운 위천(渭川) 잔디밭에 누워 별을 보는 등의 여가활동을 할 수 있는, 억지로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지 않아도 되는 시골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

 

“내가 행복해야 남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호피를 시작하면서 사랑하는 일을 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한 삶, 더욱 온전히 자신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죠. 만족하는 삶에서 얻는 에너지는 오롯이 맥주 양조나 양조 수업에 쏟고요.”

 

공방 이름 ‘호피(hoppy)’는 ‘홉의 향이 느껴진다’라는 뜻으로 쓰는 표현이다. 호피가 궁금하거든 “누구나 쉽고 재밌게 나만의 맥주를 만드는 경험 서비스”를 제공하는 호피 홀리데이로 가시라. 그리고 직접 빚은 맥주에서 그 향을 느껴보시라.

 

 

2021. 6. 18.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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