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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여행, 그 떠남과 이름의 기록

태릉? ‘선수촌’이나 ‘육사’ 말고 조선왕릉, 그리고 숲길

by 낮달2018 2021.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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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왕후 잠든 조선왕릉 태릉(泰陵)의 신록 구경

▲ 태릉은 조선 11대 중종의 세 번째 왕비 문정왕후 윤씨의 단릉이다. 홍살문 넘어 보이는 게 정자각, 능침은 그 너머 산등성이에 있다.

태릉(泰陵)을 다녀왔다. 무식하게도 ‘선수촌’과 ‘육군사관학교’ 따위가 있는 동네라고만 알았던 태릉이 조선의 능침(陵寢)이었다니…, 왕릉이라곤 경주의 오릉(五陵) 같은 거대한 봉분만 떠올리는 경상도 사람에게 조선왕릉은 그렇게 먼 곳이었다.

조선왕릉 누리집(royaltombs.cha.go.kr)에 들어가 보고서야 서울 주변에 왕릉이 태조의 건원릉(健元陵)부터 순종의 유릉(裕陵)까지 무려 42군데(연산군묘·광해군묘, 추존 왕릉 포함)나 있다는 걸 알았다. 하긴 서라벌이 신라 천년의 수도였던 것처럼 한양(漢陽)은 오백 년 조선왕조의 도성이었으니 더 이를 게 없다.

16일부터 조선왕릉 숲길 11곳을 개방한다는 신문 기사를 읽고 나는 가족의 서울행 일정에 겸사겸사 이 숲길 나들이를 끼워 넣었다. 경관을 보존하려 특별히 가꾸어 온 왕릉의 숲길은 일 년에 딱 두 차례만 열리는데 지금이 그때라니 선택의 여지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21일에 서울에 와 하루를 묵고 다음 날 오전 10시께 승용차로 출발하면서 나는 밀리면 어쩌나, 하고 불안해 했는데, 예감은 적중했다. 교통상황과 연동해 길을 안내하는 내비게이션을 따라가는데도 두 시간 넘게 정체에 시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낯선 길, 잠깐 방심한 사이에 안내를 놓치면서 뺑뺑이를 여러 차례 돌다 보니, 태릉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는 정오를 한참 지나 있었다.

전날 오후에 서울로 오면서도 6시간 넘게 정체에 시달렸던 우리는 목적지에 닿기도 전에 진이 빠진 듯했다. 정체라고 해봤자 10분 이내에 그치는 지방에서 온 시골 사람들로선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딸애는 이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이게 서울의 진짜 모습인가 봐. 기차 타고 와서 지하철로 볼일을 보러 다니면 더할 나위 없이 편리한 도시가 서울이었는데, 알고 보니 이런 끔찍한 속내를 감추고 있었네….”

▲ 태릉으로 드는 숲길. 숲은 노송과 참나뭇과의 활엽수로 울창했다 .

소문이 나서 숲이 사람들로 붐빌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뜻밖에 태릉은 한적해 정문 앞 조그만 주차장에 차를 댈 수 있었다. 가끔 눈에 띄는 관람객들은 대부분 어린이를 데리고 온 가족이었다. 우리는 그늘 짙은 싱그러운 신록의 숲속을 걸으며 마치 우리가 숲을 독점한 듯해서 ‘좋다’를 연발했다.

“아마, 서울 사람들은 더 좋은 데로 갔나 보네. 그 덕분에 우리가 넓은 숲속에서 호젓하게 쉬다 갈 수 있겠네.”

조선왕조의 임금과 비가 잠들어 있는 조선왕릉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2009년 6월이었다. 태릉은 조선 11대 중종의 세 번째 왕비 문정왕후(文定王后) 윤씨(1501~1565)의 능이다. 왕비 한 사람만 모신 단릉(單陵)인데도 규모가 웅장했다.

▲ 홍살문에서 정자각으로 가는 길. 왼쪽 높은 길이 향(香)과 축문을 모시고 가는 향로(香路), 오른쪽이 임금이 걷는 어로(御路)다.
▲ 능 앞의 제사 건물 정자각. 한국전쟁 때 소실된 것을 1994년에 복원하였다. 지붕에 나란한 것은 손오공, 삼장법사 등의 잡상이다.
▲ 촬영 허가를 받지 못해 먼빛으로 바라본 태릉. 봉분 앞에 장명등과 문무인석 등이 보인다.

중종(1488~1544)의 정비는 단경왕후 신씨, 반정(反正)으로 중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왕비가 되었으나, 아비가 쫓겨난 임금 연산군의 처남인데다가 반정에 참여하지 않아 반정 세력에 의해 7일 만에 폐위되었다. 첫 계비(繼妃) 장경왕후 윤씨가 인종을 낳고 엿새 만에 산후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 두 번째 계비가 된 이가 문정왕후다.

중종에 이어 인종(1515~1545)이 즉위했으나 재위 9달 만에 승하하면서 문정왕후가 낳은 경원대군이 12살의 나이에 왕위에 오르니 그가 명종(1534~1567)이다. 문정왕후가 수렴청정하면서 소윤(小尹)이 정권을 잡았고, 을사사화를 일으켜 정적 대윤(大尹)을 제거했다. 윤씨의 수렴청정 시기엔 정국이 불안정해 매관매직이 잦았고, 임꺽정의 난이 일어나기도 했다.

1553년 8년의 수렴청정이 끝나고 명종이 친정(親政)을 시작하였으나, 실질적인 권세는 왕후에게 있었다. 그는 집권 초기 형제들인 윤원형 등과 함께 반대파를 대대적으로 숙청하여 민심을 잃었다. 남명 조식(曺植)은 자신에게 내린 벼슬을 사양하면서 올린 상소에서 그를 일러 “생각이 깊으시지만 깊숙한 궁중의 한 과부에 지나지 않”다며 “천백 가지의 재앙과 억만 갈래의 인심을 무엇으로 감당해내며 무엇으로 수습하”겠느냐고 직소하여 파란을 일으켰다.

윤씨는 1565년(명종 20)에 65세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의 능은 중종의 정릉(靖陵) 부근으로 하였다가 명종의 반대로 현재의 자리로 결정하였다. 명종은 2년 뒤 승하하여 태릉과 이웃한 강릉(康陵)에 묻혔다. 강릉은 명종과 비 인순왕후가 나란히 묻힌 쌍릉인데, 이번에 개방한 노송 숲길(1.8km)로 태릉과 이어진다.

능을 완성하는 데에는 걸리는 시간은 약 5개월, 능역(陵役)에 동원되는 인원은 6천에서 많게는 1만5천 명에 이른다. 왕릉은 왕실과 국가의 번영을 위해 자연 지형을 고려하여 터를 선정하되 크기나 구성이 자연 친화적이며 주변 경관과 잘 어우러져야 했다. 또 후대 왕들이 자주 선왕의 능을 참배하고자 도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곳이 왕릉의 최적지였다.

우리는 홍살문을 지나 능 앞에 지어진 ‘丁(정)’자형의 제사 건물 정자각, 능지기의 공간인 수복방(守僕房), 문정왕후 표석을 보관한 비각 등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능침은 접근을 허락하지 않아 먼빛으로 바라보는 데에 그쳤다.(능침 촬영은 조선왕릉 누리집에서 신청하여 궁능유적본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번에 한시적으로 개방한, 태릉에서 강릉으로 이어지는 ‘노송 숲길’ 입구에서 우리는 발길을 돌렸다. 혼자라면 당연히 끝까지 갔겠지만, 가족들은 점심때가 겨웠으니 신규 개방하는 숲길을 돌아보는 거로 대신하자는 거였다. 우겨서 될 일이 아니라서 아쉽지만, 식구들의 뜻을 따랐다.

▲ 새로 개방한 400m 숲길. 모래 깐 흙길과 말뚝에 밧줄을 둘러놓은 숲과 길의 경계도 간결하여 좋았다. 이 길은 앞으로 상시 개방한다.

새로 개방하는 숲길은 태릉의 능침 옆으로 조성한 약 500여m의 소나무 숲길이었다. 산책하기 좋은 길은 능침 왼쪽의 쉼터인 듯한 숲으로 이어졌다. 고운 모래를 얹은 듯한 흙길도, 말뚝에 밧줄을 둘러놓은 숲과 길의 경계도 야단스럽지 않아 좋았다.

길 끝에 소나무와 참나뭇과의 활엽수 그늘이 두꺼운 숲이 있어 우리는 거기 의자에 앉아서 쉬었다. 능침 쪽으로는 소나무가 반대쪽으로는 활엽수가 빽빽했다. 어린이를 데리고 온 가족, 노부부,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부부들,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나는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그들이 보여준 ‘단란’은 청정한 풍경의 일부인 듯 신록의 숲에 살갑게 녹아 있었다.

▲ 할머니와 손자가 함께하는 신록의 숲. 이런 단란한 풍경이 정말 좋았다.
▲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아이. 삼대가 즐기는 신록의 풍경도 좋았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숲에서도 마스크를 썼다.

담장 너머는 꼬리를 무는 차의 행렬로 도로가 몸살을 앓고 있는데 숲속의 고요와 호젓한 분위기가 믿어지지 않았다. 마치 세속에서 벗어난 어떤 별세계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기온도 쾌적했고, 나무 그늘에 불어오는 소슬한 바람은 땀이 날 겨를조차 주지 않았다.

서울 태릉과 강릉 ’노송‘ 숲길은 오는 10월~11월에도 한 차례 더 개방한다. 미뤄둔 곳을 다시 찾는 것은 엔간히 마음먹지 않는 이상 어렵다. 태릉을 떠나면서 아마도 다시 찾을 수 없으리라는 걸 나는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굳이, 어느 가을이든 이곳을 다시 찾겠다는 생각을 되뇐 것은 그렇게라도 이 숲을 마음에 담아두고 싶어서였다.

2021. 5. 25. 낮달


덧붙이는 글 |

이번에 개방하는 조선왕릉 숲길은 ▲ 서울 태릉과 강릉 ’노송‘ 숲길 외에도 ▲ 파주 삼릉 ‘작은 연못’ 숲길 ▲남양주 광릉 ‘복자기나무’ 숲길로 총 3개소다. 이 가운데 ‘복자기나무’ 숲길은 정비 기간 연장 때문에 내달 1일 개방 예정이다.

또 조선왕릉 숲길 내에 조성을 마친 ▲서울 태릉과 강릉 ‘어린이 마당’ ▲서울 헌릉과 인릉 ‘오리나무 숲길과 쉼터’ ▲화성 융릉과 건릉 ‘들꽃 마당’ ▲남양주 사릉 ‘초화원 쉼터’ ▲여주 영릉과 영릉 ‘두름길 쉼터’ 등 다양한 휴게공간도 개방한다.

한편 서오릉 능침도 5월 26일 10시~11시, 14시~15시까지 등 두 차례 특별 개방한다. 조선왕릉 누리집에서 사전 예약으로 진행한다.

 

'선수촌'으로만 생각했던 태릉에 이런 곳이 있었네

문정왕후 잠든 조선왕릉 태릉(泰陵)에 가다

www.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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