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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여행, 그 떠남과 이름의 기록

문학기행 - 춘천 김유정 문학촌

by 낮달2018 2021.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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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시 신동면 김유정 문학촌을 찾아서

▲ 김유정역. 2004년에 ‘신남역’에서 이 이름으로 바뀌었다.

춘천시 신동면에 있는 경춘선 신남역이 ‘김유정역’으로 바뀐 것은 2004년 12월이다. 길에다 역사적 인물의 이름을 붙이는 것은 꽤 오래된 일이지만, 역에다 작가의 이름이 붙은 것은 처음이다. 25일, 이 간이역을 찾았을 때 청기와를 얹은 전형적 형태의 이 조그만 역사는 흰색과 보라색으로 단장하고 얌전하게 서 있었다.

▲ 김유정(1908-1937)  초상

역이 있는 신동면 중리는 작가 김유정(1908~1937)의 고향, ‘실레마을’이다. 그가 태어나 자랐고, 20여 년간의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돌아와 마지막 삶을 꾸린 곳이다. 그는 이 고향마을에서 실제로 목격한 일을 소설의 소재로 활용했고 작품 속 등장인물도 이곳에 실존했던 인물들이 많았다. 작가가 스스로 소개한 고향 마을의 모습은 이렇다.

 

“강원도 산골, 춘천읍에서 한 이십 리가량 산을 끼고 꼬불꼬불 돌아 들어가면 내닫는 조그마한 마을 앞뒤 좌우 굵직굵직한 산들이 빽 둘러섰고 그 속에 묻힌 아늑한 마을이다. 그 산에 묻힌 모양이 마치 옴팍한 떡시루 같다 하여 동명을 실레라 부른다.”

  - <김유정 전집(1987)>

 

지방자치제 시행 이후에 지자체별로 경쟁하듯 시작된 게 지역 출신의 저명한 인물을 기리는 생가 복원이나 그의 이름을 딴 문화제·축제의 홍수다. 그러다 보니 예전 같으면 찬밥 대접이 고작이었을 시인이나 작가 등이 ‘기림’의 주역으로 등장하는 예도 흔해졌다. 그러나 기림의 대상이 된 문인의 문학에 대한 이해나 평가보다는 그와 그 흔적들을 상품화함으로써 관광 수입을 올리려는 지자체의 이해가 더 커 보이는 것도 부인할 수 없을 듯하다.

▲ 김유정 문학촌
▲ 청소년 문학축제 ‘봄봄’ 관련 현수막이 곳곳에 붙어 있다.

김유정은 물론 기림을 받을 자격이 충분한 작가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그를 ‘봄봄’과 ‘동백꽃’의 지은이로, 즉 향토색 짙은 농촌소설을 쓴 전원소설가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의 소설적 관심사가 농민들의 체험을 포함해서 일제 강점기의 궁핍상 전반을 아우르고 있다.”(백지연)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의 단편 ‘봄봄’과 ‘동백꽃’에 도저히 드러난 해학과는 무관하게 그는 투병의 고통 속에서 빈곤과 처절하게 싸워야 했던 불우한 작가였다. 그의 고통스러운 현실 체험은 작품 속에 그대로 투영되었다. 일견 어리석고 순진해 보이지만 그의 인물들은 나름대로 현실을 잘 파악하고 있는 야무지고 의뭉스러운 이들인데 이들이야말로 작가가 표현하고자 했던 당대의 기층 민중이었다.

 

김유정은 작품을 통해 식민지 시대 조국의 궁핍상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당대 현실에 대한 일정한 비판 의식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러한 비판 의식은 그의 민중 의식과 민중에 대한 애정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민중과 현실에 대한 김유정의 인식은 반어적 표현, 빈농의 생활언어를 사실적으로 살리는 등 민중 언어의 구사와 같은 해학적 문체와도 일체를 이루고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그의 소설은 채만식의 소설처럼 ‘공격적 풍자’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 까닭을 백지연은 간접적 제시의 방식으로 ‘등장인물들이 겪는 비참하고 곤궁한 상황을 담담하게 제시함으로써 오히려 그 이면의 비극성을 대조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라고 진단한다. 채만식이 부정적 현실을 신랄하게 풍자한 반면, 김유정은 ‘약자의 입장을 정적인 해학’으로 풀고 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 문학촌 안 기념전시관.
▲ 복원된 김유정 생가. 규모가 상당하다.
▲ 전시관 안 김유정의 문학을 설명하고 있는 전시물 .

김유정역에서 금병산 쪽으로 들어가면 나지막한 들녘 왼편에 소설가 전상국이 촌장으로 있는 김유정 문학촌이 있다. ‘문학촌은 또 뭔가’고 생각했더니 정작 작가의 유품이 한 점도 없어 ‘문학관’이 되지 못하고 ‘문학촌’이 되었다 한다. 유품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은 김유정이 투병 끝에 숨을 거둔 후, 오랜 친구인 안회남이 유고·편지·일기·사진 등의 유품을 보관하다가 6·25 때 모두 가지고 월북한 탓이라 한다.

 

문학촌은 기념전시관과 김유정 동상, 복원된 생가, 정자와 연못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념전시관은 그의 유품 하나 전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한계를 넘지 못하고 있다. 김유정의 일대기를 설명하는 비디오가 마련되어 있고, 김유정이 태어난 해부터 사망할 때까지의 한국 문학사 연표와 30년대의 문예지와 동인지, 지금까지 간행된 김유정의 작품집 등이 벽면을 채우고 있을 뿐, 그의 체취가 담긴 직접 자료는 없다. 닥종이 인형으로 꾸며 놓은 작가의 ‘소설 주인공’들이 그나마 눈길을 끈다.

▲ 김유정 소설의 주인공으로 꾸민 닥종이 인형들.

기념관 왼편에 지붕 높이로 두루마기 차림에 책을 펼쳐 든 작가의 동상이 서 있다. 김유정역으로 이전해 갈 예정이라지만, 그 만만찮은 규모가 어쩐지 불편하고 부담스럽다. 그가 펴든 책은, 1931년 실레마을에 야학당을 열었고, 이듬해 이를 금병의숙으로 넓히고 간이학교로 인가받았다는 전력의 표현인 듯한데, 그래도 그가 선 자리는 너무 높아 보인다.

▲ 김유정 동상

조카와 금병의숙 제자들의 고증으로 복원된 생가는 인방·대청 마루·사랑방·봉당·부엌·곳간으로 이루어진 전형적 미음(ㅁ) 자 형태의 초가다.

 

천석지기로 서울에도 백여 칸의 집을 지닐 만큼 부유했던 집안답게 그 규모가 만만찮다. 그 왼편은 외양간이고 그 뒤에 디딜방아와 장독대가 있다. 생가 주변은 주말(26일)에 베풀어질 청소년 문학제 준비를 하는 사람들로 부산했다.

 

청소년 문학축제 ‘봄·봄’은 중고생을 대상으로 ‘김유정에게, 소설 속 인물들에게 편지 쓰기’, ‘소설 ‘봄봄’과 ‘동백꽃’의 ‘나’에게 이름을 붙여준다면?’, ‘김유정 소설 속편 쓰기’ 등의 행사를 벌인다고 한다.

 

중고교 교과서에서 친숙하게 만나는 작가와 작품에 그런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듯하다. 그보다도 나는 4월에 베풀어진 김유정 문학제의 <봄봄, 동백꽃의 점순이 찾기>에 뽑힌 처녀가 몹시 궁금했다.

 

주차장 쪽으로 난 옆문 어귀에 생강나무(동백나무) 고목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칠칠찮은 우리의 주인공이 영악한 여주인공 점순이의 계획에 말렸다가 꼼짝없이 투항하는 순간, 예의 노란 꽃그늘을 드리운 나무다.

 

값비싼 동백기름 대신 생강나무 열매로 짠 기름을 쓴 중북부 사람들이 생강나무를 가리켜 ‘개동백’, ‘산동백’이라 불렀고, 강원도에서는 아예 ‘동백나무’라고도 불렀다. 멀쩡한 생강나무가 동백나무로 불리는 까닭이다. [관련 글 : 산수유와 생강나무]

 

……그리고 뭣에 떠다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

- 소설 ‘동백꽃’ 중에서

▲ 생강나무. 강원도에선 동백이라 불린다.

작품 속의 주인공과 달리 그는 어떤 여인의 사랑도 얻지 못했다. 어려서 어머니를 잃은 까닭에 그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남달랐다 한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숙명적 우울 속에서 김유정은 두 여인, 명창이자 기생이었던 박녹주와 시인 박용철의 누이 박봉자를 향해 일방적으로 사랑을 갈구했지만, 그 사랑은 어떤 보상도 받지 못했다.

 

고향에 머물며 야학 활동을 하다 1933년 상경한 김유정은 폐결핵을 앓는다. 그는 다만 살기 위해서, 약값을 벌기 위해 주야로 원고를 쓰면서 병마와 싸웠다. 그러나 1937년 그는 삼십여 편의 작품을 남겨 놓은 채 경기도 광주의 누님 집에서 쓸쓸하게 임종을 맞았다. 향년 29세. 유언대로 그는 화장되었고, 유골은 한강에 뿌려졌다.

 

작가는 가고 없지만, 그가 나고 자란 마을에는 그의 흔적을 찾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 마을에 그의 생가를 복원하고 문학촌을 지어낸 고향 사람들과 여길 찾는 관광객들은 정작 작가와 작품을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 기념관이나 문학촌을 지어 두고 관광객을 부르는 한갓진 ‘기림’보다 자기 문화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게 더욱 소중한 게 아닐지 모르겠다.

 

‘봄봄’이라는 이름의 낡고 비좁은 장터국수 집에서 우리는 막국수 한 그릇을 달게 비우고 김유정의 고향, 실레마을과 간이역을 떠났다.

 

 

2007. 5. 26.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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