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들과 아이들의 세대차 어떻게 넘을까
다른 세대들이 한 집에서 생활하는 가정처럼 학교도 여러 세대로 구성되어 있다. 10대의 아이들과 20대부터 60대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대의 교사들이 마구 섞여 있는 데가 학교인 까닭이다. 그러니 거기엔 흔히들 ‘세대차’라고 하는 격차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기 마련이다.
각 세대가 다른 세대와 구별되는 행동양식, 정서, 가치관, 신념, 이데올로기 등을 갖는 것은 나이와 사회구조적 조건과 역사적 경험의 특수성으로 말미암는다. 한국전쟁을 겪은 60대와 광주항쟁마저 아련한 역사로 인식하는 1993년생(고1) 사이에 세대차가 존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교재로 공부하는 교사와 학생이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방식이 다른 것은 적어도 우리 사회에선 크게 문제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교사는 자신의 가치관을 투영한 교과서를 아이들에게 가르치기 때문이다. 개중에 적극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학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현실적으로 세대차는 행동양식이나 가치관보다 현재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감각이나 형식에서 더 첨예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 아이들이 열광하는 문화의 내용에 대해 교사들은 어둡기 짝이 없다. 20대의 젊은 교사들이야 아이들과 나이 차가 크지 않고 관심과 선호도 비슷할 수 있으니 전혀 문제가 아니다. 같은 이유로 30대도 그런 부분에선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라 하겠다.
문제는 40대 이후부터다.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몸의 문제로 그것은 다가온다. 아이들이 즐기고 열광하는 문화에 대해서 마음이 아니라 몸이 쉬 받아들이지 않는 상황이 되면 이는 개인적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어느 선배 교사의 이야기다. 그는 40대 후반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노래 한 곡을 배우기 위해 한 달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다 되는데 가사가 들어오는 데 꼭 한 달이 걸렸어. 그게 그의 솔직한 고백이었다.
아이들과 맞추어 호흡하기 위해서 아이들의 관심사를 찾고 그들이 열광해 마지않는 배우나 가수 등에 대한 정보도 어지간한 건 아는 게 필요하다면 필요한 일이다. 그게 어쩌면 아이들을 취향이나 기호를 이해하는 첫걸음일 수 있으니까.
아이들은 제가 좋아하는 스타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거기에 무슨 현실적인 고려 따위는 필요 없다. 마음에 드는 연예인은 모두 ‘내 꺼’고 그의 이름은 자신의 이름과 같이 사용된다. 사물함의 전면, 휴대전화 초기화면, 수첩 표지 등은 물론, 반 티셔츠의 등에도 그 이름은 스스럼없이 새겨진다.
머리가 좀 어지럽기는 하지만 괜찮다. 예전에는 교사들이 그런 데 어두운 것은 저희에 대한 관심이 없어서라고 여기기도 했지만 요즘, 아이들은 교사들의 무관심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 아이들은 예전과 달리 교사들에게 관심을 별로 두지 않는다. 그들은 교사들과 자신의 ‘관계나 그 한계’에 대해서 매우 ‘쿨’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내 체육대회를 전후하여 아이들은 반별로 맞추어 입은 티셔츠를 즐겨 입는다. 우리 반 아이들이 입은 옷은 빨간색이다. 등에는 저마다 좋아하는 문구를 새겼는데 한 아이의 등에는 ‘2PM’이라 적혀 있었다. 정말, 무심코 물었다. “이피엠은 뭔데?” 순간 아이들 속에서 폭소가 터졌다. “투피엠이에요!”
그제야 나는 내가 꼼짝없는 곰팡내 나는 ‘노틀’이 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달았다. 적어도 인기 절정의 연예인들이라면 다른 건 몰라도 이름만은 대충 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의 유행 시계는 나보다 훨씬 빠른 것이다.
“가순가?”
“네, 그룹이에요.”
“PM이라면 오후 아냐?”
“그런 뜻이에요. 2AM도 있어요.”
확인해 보니 2PM은 JYP엔터테인먼트 소속의 그룹인데 구성원은 재범, 준수, 우영, 닉쿤, 택연, 찬성, 준호 등 7명이다. 요즘 연예인들은 구차하게 성을 붙이지 않는 추센 듯하다. 부른 노래 중에 ‘10점 만점에 10점’이란 노래가 있다. 아, 저건 귀에 익었다. 그게 이들의 노래였구나.
나는 이들의 노래를 한번 들어보기로 했다. 이들은 ‘온리 유’라는 노래도 불렀다. 잠깐 인터넷으로 들어보았는데 쉽게 귀에 들어오지는 않는다. 아이들과 얘기해 보니 저희 가운데 팬이 많단다. 이웃 반 아이 하나는 5장의 앨범을 사고 인근 대도시에 가서 이들의 서명을 받았다고 한다. 이 잘생긴 청년들은 바야흐로 여고생들에게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것 같다.
교사의 관심이나 노력이 스타들의 인기주기를 제대로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나는 노래나 이들의 얼굴은 잘 모르지만, 가끔 신문에서 이들 ‘연예가 소식’을 읽고 있어서 이들의 동정은 얼추 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제대로 무식이 들통난 것이다.
6, 7년 전 얘기다. 이웃 학교에서 일본어를 가르치는 친구 하나가 심각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혹시 젝스키스라고 알아요?”
“알지.(물론 나는 이름만 안다.)”
“뭐지요?”
“가수잖아. 그룹 아닌가? 왜 그래요?”
“아, 나 참, 쪽팔려서…….”
얘긴즉슨 이렇다. 아이들이 “젝스키스가 은퇴를 선언하자 흥분한 팬들이 매니저의 그랜저 승용차를 부수는 소동을 벌였다”라는 얘기를 하자 이 친구, 꼼짝없이 헷갈린 거다. 그는 젝스키스라는 이름만으로 이들이 외국 가수일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의아해서 아이들에게 되물었다.
“야, 걔들 매니저가 언제 한국에 왔는데 그랜저 승용차를 다 샀냐?”
더 볼 것 없는 일이다. 아이들은 뒤집어졌고 그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역시 이 친구 이야기다. 2003년인가, 자매결연하고 있는 일교조의 간부들이 학교를 방문했다. 학생들에게 잠깐 인사를 하고 친구의 통역 아래 질의·답변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한 아이가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가수 ‘보아’를 아느냐고 물었다. 순간 통역은 잠깐 헷갈렸다.
“보아? 무슨……, 뭘 보아?”
역시 아이들은 뒤집어졌다. 일본에서 잘 나가고 있다던 보아는 일교조의 간부들도 모르고 있었다. 그들 역시 40대 후반의 노틀이었던 것이다.
아이들과 교사들의 세대차는 당연한 일이지, 그게 무슨 문제가 될 일은 없다. 대중문화를 바라보는 두 시각의 격차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우려할 일도 아니다. 아이들에게 그들 대중 스타는 자기 정체성의 일부가 되지만, 교사에게 그것은 청소년들의 일반적인 문화현상의 하나로만 이해되는 것이다.
교사가 아이들의 대중문화에 대한 기호나 취향에 신경을 곤두세울 일은 물론 없다. 그러나 때로 그들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으로 아이들의 열광을 이해해 볼 필요는 있겠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을 매료시키는 문화에 대한 소박한 이해만으로 아이들의 세계 일부를 엿볼 수 있을지 모르니까 말이다.
2009. 6. 17.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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