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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교단(1984~2016)에서

학교는 지금 공사 중!

by 낮달2018 2021.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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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 중 학교는 공사 중이다

▲ 도색공사가 진행 중인 교사. 비계와 가림막이 건물 외곽을 둘러싸고 있다.

정부의 지시에 따라 ‘경제 활성화’와 ‘새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며 지자체가 공사 발주를 서두르는 등 예산의 조기 집행에 나서면서 곳곳이 공사 중이다. 이 이른바 ‘예산의 상반기 조기 집행’은 가히 시대의 트렌드(?) 같아 보인다. 언론은 상반기 조기 집행 실적이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는 지방자치단체가 여럿이라고 전하고 있다.

 

이러한 성급하고 경쟁적인 예산 조기 집행은 필요한 공사와 부실시공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멀쩡한 보도블록을 교체하면서 주민들의 원성을 사는 것이 그 좋은 예다. 그뿐인가, 일부 지자체에서는 예산의 조기 집행으로 재원이 고갈되고 지방세 징수액마저 크게 줄자, 자금 조달에 비상이 걸렸다는 소식이다.

 

졸지에 앞당겨진 공사로 학교는 5월을 빼앗겼다

 

지자체의 예산 조기 집행은 학교에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4월부터 ‘맞춤형 복지비용’을 조기 청구해 달라는 행정실의 요청이 거듭되더니 지난 5월께 남은 복지비가 개인별 계좌에 입금되었다. 하반기에는 가게마다 손가락만 빨고 있어도 되는 모양이지. 하고 투덜대면서도 동료들은 잠자코 요청을 따랐다. 하반기에 받을 돈을 조금 일찍 받는 것이니 그게 뭐 손해 볼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5월, 교사(校舍) 도색공사가 조기 발주되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애당초 공사가 시작되었을 때 교사들 모두가 머리를 갸우뚱했다. 마땅히 방학 때에나 시행되어야 할 공사인데 좀 뜬금없는 때에 공사가 개시된 것이다. 전체 건물을 비계로 에워싸고, 교내 분위기가 좀 어수선해지자, 누구랄 것 없이 불만이 터져 나왔다.

 

도대체 한창 아이들 공부가 바쁜 학기 중에 공사를 시작한 이유가 뭐야? 이건 아이들에게 5월을 몽땅 빼앗는 셈 아냐? 소음도 소음이지만, 이 좋은 계절에 신선한 바깥 풍경을 아예 차단해 버렸으니……. 그러잖아도 답답한 실내 공기가 비계에다 쳐 놓은 가림막에 막혀 버렸잖아?

 

알아보니 답은 간단했다. 학교에서도 여름방학 때 공사를 시행할 것을 원했으나, 예산의 상반기 조기 집행 때문에 공사가 앞당겨진 것이라 했다. 불평하던 교사들은 입맛을 다시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 경제는 살려야지, 아이들 공부에 지장이 있고, 공기가 좀 좋지 않더라도……, 안 그래?

▲ 일부 도색이 이루어진 교사 뒤편. 창문이 봉해져 있다.  다른 학교의 비슷한 공사 사진 .

하기야 올해 도서 구입 예산을 상반기에 다 쓰라고 해 한꺼번에 구매한 책을 정리할 엄두도 못 내는 공공도서관도 있다니 말은 다 했다. 예산 조기 집행에 바빴던 담당자는 ‘책은 1년의 농산물’이라는 사실을 깜빡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이 실수의 결과는 만만치 않을 듯하다. 상당수의 공공도서관은 예산이 없어서 하반기에 나온 책을 구매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게 된 것이다. [<프레시안> 기사 (6.11.)]

 

지은 지 대략 30년이 가까워지는 건물이라 교사는 많이 낡았다. 그나마 바닥을 새로 깔고 창은 이중창으로, 출입문 따위도 모두 교체하여서 실내 환경은 그리 나쁘지 않다. 그러나 건물의 외형은 곳곳에 도색이 벗겨지고, 녹물이 흘러내려 손님 보이기 민망할 만큼 흉하다.

 

학교는 정치·경제의 종속 변수인가

 

당연히 도색공사는 모두가 원하던 일이었다. 적기에 시행되었다면 기쁘게 완공을 기다려야 하는 공산데, 타이밍을 제대로 못 맞추는 바람에 온갖 원성을 듣게 된 것이다. 외부 환경에 무딘 나 같은 사람이라면 그게 그리 불편하지 않을 수도 있다. 광우병 토론에 나와서 ‘우린 어지간하면 죽은 고기만 아니면 먹는다’라고 말해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사람의 정서로 치면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조심해 시공한다 해도 공사는 공사다. 기존의 도색을 몽땅 벗겨내고, 거기 다시 시멘트를 바른 다음에 도색을 여러 차례 하는 순서라는데, 두 달의 공기는 너무 길다. 학교 주변이 공사 자재 등으로 어수선한 건 둘째고, 수시로 들려오는 소음도 그렇고, 뒤편 창문을 아예 열 수 없는 상황도 쉽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잘 참아내는 사람들인가. 아이들도 교사들도 으레 그러려니 하면서 웬만한 소음이나 불편을 잘 참아주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페인트칠이 시작된 며칠 전부터는 이게 장난이 아니었다. 페인트에서 풍기는 역한 냄새는 밀폐된 복도에 오래 가시지 않는다. 토요일과 일요일에 집중적으로 도색하기로 했지만, 여전히 공기는 보름 이상이 남았다.

 

한 보름 후에 한결 깨끗해진 교사를 보면 그간의 불만 따위는 가실 수 있으리라. 그러나 학교와 교육에 관련된 사업이 어떤 교육적 고려도 없이 오직 경제 논리에 따라 시행되는 구조는 현재 우리 교육의 위상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교육은 여전히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만 인식되는, 정치나 경제의 종속변수라는 것 말이다.

 

 

2009. 6. 14.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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