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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교단(1984~2016)에서

‘교실 밖’의 교사, ‘교실 안’의 교사

by 낮달2018 2021.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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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임된 교사와 징계 의결이 요구된 교사

▲ 경상북도 교육청 . 오른편 끝부분에 농성 천막이 보인다 .
▲ 경북도교육청 현관에 세워 놓은 농성 8 일째 표지.
▲ 청사 현관 앞에 마련된 농성장에 각종 피켓이 세워져 있다.

민주노동당을 후원한 전교조 교사들을 파면·해임하라는 교과부의 지침에 따라 이들 교사를 대상으로 한 각 시도 교육감의 징계 의결 요구가 잇따르고 있다. 지방선거에서 진보 후보가 교육감으로 당선된 지역은 다소 사정이 나아 보이긴 해도 전체적으로 징계 국면이 시작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옥죄어 오는 탄압에 맞서는 단식, 농성…

 

전교조를 겨냥한 이 같은 방침에 대해 정작 당사자인 전교조가 할 수 있는 대응은 마땅치 않다. 정진후 위원장이 단식으로 저항하다 18일 만에 병원에 실려 가고 각 시도별로 도 교육청 농성에 들어간 게 현재 전교조가 할 수 있는 저항의 최대치. 칼자루를 쥔 강자 앞에서 약자의 저항은 단식이나 농성 등 제 살 갉아먹는 극한적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 어제 < 한겨레 > 에 실린 지회 광고

위원장의 단식과 함께 단위 학교별로 동조 ‘점심 단식’도 계속되고 있지만, 까짓것 그걸로 감자 한 알이라도 적시겠는가. <한겨레> 생활광고란에 분회별 광고를 내고, 일인시위를 조직하고 지회별로 돌아가면서 도 교육청 농성장에 다녀오는 것밖에는 마땅히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이다.

 

어제 분회에서 광고 투쟁을 알리고 광고료를 모으더니 오늘 아침 <한겨레>에 여러 학교 분회 명의의 광고가 실렸다. ‘경북 교육청, 전국에서 제일 먼저 징계 의결 요구, 이것이 명품 교육인가?’ 현 교육감이 내세운 ‘명품교육’을 비꼬는 문구다.

 

경북지부에는 해당 교사가 지부장과 지부 사무처장 둘이다. 그러나 지부장은 이미 지난해에 시국선언으로 해임된 상태여서 당장 징계 의결이 요구된 이는 사무처장 혼자다. 스물몇 명이 징계에 넘겨진 인근 대구에 비기면 한 명만 대상이 된 걸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가.

▲ 지난해 11월 해임된 김임곤 전교조 경북지부장

오늘은 우리 지회가 농성에 참여하는 날이다. 다른 학교의 동료들은 두 시간 전쯤에 출발했지만, 일과를 마치고 분회장과 함께 내가 대구로 향한 것은 다섯 시가 훨씬 넘어서였다. 휴게소에서 가볍게 식사하고 도교육청 농성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시간은 7시를 넘기고 있었다.

 

동료들의 농성장은 경상북도 교육청 오른편 공터에 친 천막이었다. 무덥기로 소문난 대구 날씨를 피해 교사들은 천막을 비워두고 교육청 현관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농성 8일째’. 현관 유리문 앞에는 구호가 적힌 여러 개의 피켓을 세워두었고, 기둥 벽면에도 구호가 몇 장 붙어 있었다.

 

‘교실 밖의 교사’, 김임곤

 

교육청 회의실에선 김임곤 지부장이 주재하는 집행위원회가 열리고 있었다. 정회하고 저녁을 먹고 들어오는 그와 악수했다. 그는 꽉 찬 마흔아홉의 수학 교사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의 두 아들은 초등과 유치원생이었다.

 

부산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이 다정다감한 수학 교사와 나는 십여 년 전 예천지회에서 함께 일했다. 내가 예천을 떠나자 그가 지회를 맡아 성실하게 활동하며 원칙을 지키는 사업 기풍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8년, 그는 가장 어려운 시기에 지부장을 맡았다. 아는 사람은 안다. 그게 영광이 아니라 고난의 자리라는 걸.

 

그는 지난해 11월 26일 시국선언 건으로 해임되었다. 처음 만났을 때 유치원에 다니던 막내는 올해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다. 아이들은 어떠냐는 질문에 그는 글쎄, 아이들은 그리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지는 않다고, 마치 남의 얘기하듯 했다. 그는 말하자면 지금 ‘교실 밖의 교사’다. 20년 전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전교조에서 ‘해직’의 역사는 창연(?)하다. 우리는 그걸 마치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처럼 바라보는 경향이 있는지 모른다. 해직에 관한 한 전교조에는 숱한 선배들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마치 안부를 묻는 것처럼 해직 인사를 나누고 평상심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것이다…….

 

한편 활동가들은 해고자 앞에서 자신이 ‘살아남은 자’에 포함된다는 사실을 자책하는 경향이 있다. 그의 해고가 마치 자신의 탓인 양, 자신들이 제대로 싸우지 못한 탓인 것처럼 ‘지못미’를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적어도 가시 면류관일 수밖에 없는 지부장의 자리에 그를 서게 한 것만으로도 우리는 모두 가해자라는 생각에서 쉽게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교실 안의 교사’, 김호일

▲ 징계 의결 요구된 경북지부 김호일 사무처장

회의가 속개되자 우리는 현관 앞에 둘러앉아 징계 의결이 요구된 김호일 사무처장과 함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호일은 초등교사다. 그는 김천시 감문면 위량초등학교에서 음악과 체육 전담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지난해 시국선언으로 기소되면서 전임자 자격을 잃고 학교로 복귀했다.

 

5월 말께 정부에서 민주노동당 후원 교사들을 6월 1일 자로 직위 해제할 것이라고 발표했을 때, 그는 교사로서의 자기 목숨이 닷새밖에 남지 않았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마지막 남은 닷새 동안의 시간을 금쪽처럼 써야지. 아이들에게 정말 잘해야지. 그는 자신에게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러나 6월 17일 현재, 그는 아직도 위량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아침을 원래 먹지 않고 점심은 단식한다. 쉰 명이 채 안 되는 미니 시골 초등학교에서 그의 교사 생명이 경각에 달렸다는 사실을 아이들은 모른다. 학부모도 물론 모른다.

 

아는 건 동료들이고 날마다 고봉으로 점심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다 눈물짓는다는 조리사 아주머니다. 어쨌든 그는 아직 ‘교실 안의 교사’다.

 

공무원의 정당 가입이 불법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당원 가입’과 ‘불법 후원’에 대한 응징이라고 장황하게 떠벌리고 있지만, 교과부의 183명에 대한 징계 조치는 숱한 문제를 안고 있다.

 

교원에 대한 인사권은 시도 교육감의 고유 권한이다. 이를 침해하고 징계를 지시하고 징계 수위까지 결정하는 것은 위법한 일이다. 또 사법적 판결이 나기도 전에 서둘러 징계를 지시한 것도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 특히 현행법을 따르더라도 징계 시효가 지난 교사까지 포함하거나 단돈 2만 원 후원 교사까지 해임을 지시하고 있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합법성’과 ‘조합원’,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다

 

현 정부가 전교조에 겨누는 칼은 일회성 탄압은 아니다. 전교조에 대한 정부의 칼끝은 공무원노동조합의 설립 신고를 반려하는 방식으로 공무원노조를 법외노조로 내모는 것과 같은 맥락에 있다. 수백 명 활동가들을 교단에서 배제하는 징계를 감행하고, 규약시정 명령(해고자 조합원 자격 여부)을 통해 전교조의 합법성을 박탈하고자 한다.

 

정부의 강경 탄압은 전교조를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고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형식이다. ‘조합 활동을 하다 징계되어 교단에서 배제된 조합원들의 조합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나 ‘합법성을 포기하고 법외노조로 가는 것’은 둘 다 노동조합이 선택할 수 없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그것은 노동조합이기를 포기하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양자택일의 강요를 통해서 말썽 많은 교육노동자들의 노동조합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끝장내고 싶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정권의 요구와 강제가 노리고 겨냥하는 것이 무엇이라는 건 뻔하지 않은가. 그들의 요구와 강제대로 전교조가 움직이거나 그러한 선택에 매몰되리라고 믿는 것은 전교조 20년, 그 역사성을 부정하는 일이다.

▲ 현관 앞 농성장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농성자들과 지회 조합원 교사들.

이야기를 나누며 교사들은 위기 앞에 자신들의 정체성이 시험받고 있다는 걸 새삼스레 확인한다. 동시에 조직과 그 구성원으로서의 동일성은 늘 탄압과 시련 속에서 성장하고 확인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스무 해 전교조의 역사 속에서 교사들이 공유해 온 역사 발전에 대한 낙관적 전망은 여전히 우리 속에 살아 있는 희망임을 거듭 확인한다.

 

교사들은 교실을 지켜야 한다. 교실 밖으로 쫓겨난 교사에겐 물론 교실을 되돌려주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살얼음판을 걷듯 교실을 지키고 있는 교사들에게도 그것이 그들의 자리라는 사실을 확인해 주는 게 필요하다. 우리의 싸움이 필경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게 마땅한 이유다.

 

우리는 10시가 다 되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가 내일 학교로 출근해야 하는 것처럼 김호일 사무처장도 내일 또다시 출근할 것이다. 그가 유지할 교사의 지위는 여전히 안개 속에 있지만. 그는 아이들을 위해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거나 운동장에서 힘차게 호루라기를 불 것이다.

 

출근할 학교를 빼앗긴 김임곤 지부장은 농성 천막에서 지부 누리집에 올린 ‘농성 8일 차 보고’ 끝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그것은 우리 전교조가 교사와 학생, 학부모에게 여전히 ‘중요하’고 ‘행동하는’ 집단이라는 반대증명이다.

 

“중요하지 않거나 행동하지 않는 집단은 탄압도 받지 않는다. - 노동세상 편집자”

 

 

2010. 6. 17.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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