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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국어사전>을 쓰십니까?

by 낮달2018 2021.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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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 이야기

▲ 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과 고려대학교의 <한국어사전>

대체로 사람들은 국어사전을 잘 이용하지 않는다. 워낙 이 나라에선 대접받는 언어라 어릴 때부터 부득이 끼고 살 수밖에 없는 영어사전과는 경우가 다르다. 그게 ‘쉬운 모국어’라서가 아니라 그거 잘못 써서 타박 들을 일이 잘 없어서 그렇다. 영어 철자 하나를 빼먹은 것은 ‘쪽팔리는’ 일이지만 맞춤법이나 띄어쓰기에 어긋나는 걸 아무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집집이 보급판 ‘국어사전’이 한 권씩 있던 시절이 있었다. 일부러 국어사전을 사는 일은 드물었으니 그건 물론 초중등학교 졸업식에서 타온 상품이기 쉬웠다. 그런데 영어사전과는 달리 그건 서가에 장식용으로 꽂혀 있다가 누렇게 바래져 가곤 했다.

 

<표준국어대사전>과 <한글 교정기와 모든 사전>

 

국어사전을 그래도 가끔 뒤적였던 나는 국어를 가르치는 교사가 되었다. 한동안은 사전을 들고 수업에 들어가기도 했으니 아마 그 무렵에야 사전의 효용을 뒤늦게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블로그를 열고 글을 쓰면서 사전을 훨씬 더 자주 이용하게 되었다.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종이책 사전은 더는 쓰이지 않게 되었다. 나는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이하 <표준>)을 이용해 왔다. <표준>은 용례가 풍부해, 국어원이 운영하는 ‘온라인 가나다’는 궁금증을 풀 수 있어 즐겨 찾았다.

 

다른 국어사전은 거의 이용하지 않았으니 애당초 내게는 비교할 수 있는 여지가 없었던 것일까. 나는 <표준>에 불만이 없었다. 스마트폰에서 쓸 앱은 따로 구매하지 않았다. <표준> 어플은 19,800원에 파는데 굳이 그걸 서 쓸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무료 어플인 ‘한글 교정기와 모든 사전’을 내려받아서 쓴다. 1달러를 기부해 광고 없이 이용할 수 있다. 이 앱은 사전의 선택 폭도 넓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국어사전은 물론이고 한영·영한·불한·독한·일한 등 엔간한 사전을 다 갖추고 있다. 거기다 맞춤법 검사와 한글 교정기도 있으니 쓰임새가 꽤 많다.

 

무심코 써 왔지만, 이 사전에는 세 종류의 국어사전이 있다. 위키는 백과사전이니 빼도 ‘네이버’와 ‘다음’ 국어사전이 있다. <네이버 국어사전>은 국어원의 <표준>을 쓰고, <다음 한국어사전>(이하 <다음>)은 <고려대 한국어사전>을 쓴다. 그런데 두 사전의 차이가 적지 않다는 걸 이번에 확인했다.

 

<표준국어대사전>과 <다음한국어사전>

 

<표준>에 대한 믿음이 조금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부터다. 글쎄, 똑 부러지게 말하긴 어려운데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걸 구체적으로 확인하게 된 게 현직 국어 교사 박일환이 쓴 <미친 국어사전>을 읽으면서다.(이 책은 따로 정식 서평을 써 볼 작정이다.) [관련 글 : 수입산해독약도 없다<표준국어대사전>의 배신]

 

<표준>이 ‘미친’ 이유는 따로 다루기로 하고 이 책이 지적하고 있는 문제 가운데 몇 가지만 살펴보기로 하자. 특별히 어떤 관점을 들이댈 일도 없다. 편하게 상식을 따르다 보면 어떤 사전에 내게 쓸모 있을지 가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미친 국어사전>에서 다루고 있는 세 낱말을 기준으로 <표준>과 <다음>이 각각 어떻게 다른가 살펴보도록 하자.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비교이긴 하다.

 

‘사교육(私敎育)’은 <표준>에 따르면 ‘사립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이다. ‘국가사회의 공적 관리로 이루어지는 교육’ 즉, 제도교육은 모두 ‘공교육’으로 보는 사회 일반의 상식과 다른 부분이다. ‘사교육’은 통상 학원이나 과외 등 사적 관리에 의해 수행되는 교육이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방과후 교육’도 공교육에 포함하는 상황에서 이 뜻풀이는 난감하다. <다음>은 그나마 본뜻에 근접해 있다.

 

‘환희지’는 불교에서 쓰는 말인데, <표준>은 뜻풀이가 더 어렵다. ‘아승지겁(阿僧祗劫)’도 ‘자리이타(自利利他)’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데 한자조차 병기하지 않고 있다. 그나마 <다음>에서는 쉬운 말로 풀어놓았다.

 

‘회’도 그렇다. <표준>은 간략해서 좋긴 한데, 정작 통용되는 ‘데친회’가 빠지고 ‘날로 썰어서 먹는 것’만 이르고 있다. 거기 비하면 <다음>의 풀이는 친절하고 상세하다. 어느 쪽이 사전의 본 의미에 충실한지는 불문가지다.

 

사전에 오른 표제어를 전부 비교하지 않은 한, 이 비교가 갖는 한계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표준>은 이뿐만 아니라 한자어, 외래어, 전문어를 지나치게 선호한다든가 뜻풀이가 이상한 것, 마땅히 올라 있어야 하는데 없는 말 등 문제가 적지 않다. 모국어를 관장하는 국립기관에서 편찬한 국어사전으로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어쨌든 국립국어원에서 이런 비판과 제언을 수렴하여 겨레말의 보물창고로, 살아 있는 국어사전으로 거듭났으면 좋겠다.

 

 

2016. 5. 29.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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