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자의 한글 표기에 대하여
오늘 <오마이뉴스>에 ‘윈도우8 후속작이 윈도우9가 아닌 이유’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윈도우’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컴퓨터 운영체제를 이른다. 그러나 영자 ‘window’는 ‘윈도우’ 아닌 ‘윈도’로 써야 한다. 영어의 한글 표기에서 중모음 [ou]는 ‘오우’로 적지 않고 ‘오’로 적어야 하기 때문이다.
‘note’를 ‘노우트’ 아닌 ‘노트’로 쓰는 것처럼 ‘window, shadow’도 ‘윈도, 섀도’로 적어야 한다. ‘boat, coat, draw, hello, low format’도 각각 ‘보트, 코트, 드로, 헬로, 로 포맷’ 등으로 적어야 한다. 이처럼 외래어를 적는 방법을 규정한 게 ‘외래어 표기법’이다.
신문 방송 등에서 외래어를 우리말로 적을 때는 이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다. 외래어의 중요한 특성 중의 하나는 어형이 불안정하다는 것인데 이는 외래어 표기에 혼란을 겪는 이유다. ‘슈퍼마켓’의 경우 ‘슈퍼마켓, 수퍼마켓, 슈퍼마킷, 수퍼마킷, 슈퍼마켙, 수퍼마켙’ 등 다양한 표기가 사용되고 ‘초콜릿’도 ‘초콜렛, 쵸코렛, 쪼코렡’ 등의 여러 가지 어형이 쓰이는 것이다.
사람들이 저마다 달리 발음하고 적다 보니 외래어 표기법을 익히기는 만만치 않다. 그래서 아무렇게나 쓰면 되지 왜 까다로운 표기법을 만들었냐는 볼멘소리도 심심찮다. 그러나 외래어 표기의 목적은 외래어의 표기를 통일하고 어형을 고정하여 국민 언어생활의 표준을 제공하려 한다. 즉 ‘외래어 표기법’은 다양한 어형이 존재할 소지가 있는 외래어에 대해 표준어를 정해 주기 위한 규정이다.
외래어 표기법의 기본 원칙
1986년에 제정된 외래어 표기법은 그 기본 원칙이 5항으로 되어 있다. 이를 간단히 살펴본다.
제1항 외래어는 국어의 현용 24 자모만으로 적는다.
이는 외래어를 표기하기 위해 맞춤법에 정한 24자모 이외의 특수한 기호나 문자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시한 규정이다. 외국어에는 우리말에 없는 소리도 있다. 그러나 외래어만을 적기 위해 새 문자나 기호를 정하여 익히게 하는 것은 국민에게 지나친 부담을 지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쓰고 있는 ‘24자모’라는 것은 한글의 기본 자모 24개 즉 자음 14개와 모음 10개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 국어 생활에 쓰이는 모든 한글 글자를 모두 쓸 수 있다는 것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우리가 쓸 수 있는 자모는 자음 19개, 모음 21개로 모두 40개다.
제2항 외래어의 1음운은 원칙적으로 1기호로 적는다.
외국어에서 하나의 소리는 우리말에서도 하나의 소리에 대응시켜 언중(言衆)이 기억하고 사용하는 데에 편리하게 하려는 뜻이 담긴 규정이다. 이는 외래어 표기법이 외국어의 원음에 충실하고자 하는 원음주의 표기법임을 드러내고 있는 규정이기도 하다. ‘원칙적으로’라는 단서는 실제 어떤 소리가 우리의 귀에 다른 음으로 들린다고 할 때에는 그것을 반영할 수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제3항 받침에는 ‘ㄱ, ㄴ, ㄹ, ㅁ, ㅂ, ㅅ, ㅇ’만을 쓴다.
이는 외래어를 적을 때 여기에서 예시한 것 이외의 자음(ㄷ, ㅈ, ㅊ, ㅋ, ㅌ, ㅍ, ㅎ)을 받침으로 써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다. 예컨대 ‘book’를 ‘붘’ 아닌 ‘북’으로, ‘good’를 ‘굳’ 아닌 ‘굿’으로 표기하는것이다.
고유어에는 외래어와 달리 받침에 특별한 제약이 없다. 즉 ‘잎, 낯’과 같이 고유어에는 쌍자음을 포함한 모든 자음이 받침으로 쓰일 수 있다. 이는 어말(語末)이나 자음 앞에서는 대표음으로 소리 나더라도 모음 앞에 올 때에는 그 음가대로 발음되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즉 ‘잎’을 ‘입’으로 쓰지 않는 이유는 ‘잎이[이피]’, ‘잎을[이플]’과 같이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 앞에서는 ‘ㅍ’ 음이 발음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래어는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와 결합하더라도 [커피쇼피], [커피쇼페서]와 같이 발음하지 않고 항상 [커피쇼비], [커피쇼베서]로 발음하므로 ‘커피숍’이라고 써야 하는 것이다.
이 규정 중 외래어의 받침에서 ‘ㄷ, ㅅ, ㅈ, ㅊ, ㅌ’의 대표음을 ‘ㄷ’이 아니라 ‘ㅅ’으로 정한 것도 주의해야 한다. 예를 들어 ‘racket’의 경우, 어말이나 자음 앞에서는 [라켇], [라켇도]와 같이 발음되지만,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와 결합할 때에는 항상 [라케시], [라케슬]로 발음되므로, ‘라켇’이 아니라 ‘라켓’으로 적는 것이다.
제4항 파열음 표기에는 된소리를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 조항은 유성·무성의 대립이 있는 외래어의 파열음을 한글로 표기할 때 유성 파열음은 예사소리(평음)으로, 무성 파열음은 거센소리(격음)으로 적도록 한다는 것이다. 국어의 파열음은 같은 위치에서 평음(ㅂ, ㄷ, ㄱ), 경음(ㅃ, ㄸ, ㄲ), 격음(ㅍ,ㅌ, ㅋ)의 세 가지로 구분된다.
그러나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 대부분의 외래어는 파열음이 무성음(p, t, k), 유성음(b, d, g) 두 가지로만 구분된다. 외국어의 유성 파열음을 가장 가깝게 나타낼 수 있는 표기는 평음이다. 따라서 [g]는 ‘ㄱ’으로, [d]는 ‘ㄷ’으로, [b]는 ‘ㅂ’으로 표기한다.
따라서 무성 파열음은 된소리나 거센소리로 표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같은 무성 파열음도 언어에 따라 국어의 거센소리에 가까운 경우도 있고, 된소리에 가까운 경우도 있다. ‘파티’, ‘트럭’, ‘컵’ 등 영어에서 온 외래어는 격음으로 적으면서 프랑스어에서 온 외래어는 ‘빠리(Paris)’, ‘까페(café)’, ‘떼제베(TGV)’ 등 경음으로 적는 경향이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외래어 표기법은 언어마다 조금씩 음성적 차이가 있는 무성 파열음을 우리말로 옮길 때에는 거센소리 한 가지로만 적도록 규정한다. 그 까닭은 같은 무성 파열음을 언어에 따라 어떤 때에는 거센소리로, 어떤 때에는 된소리로 적는다면, 규정이 매우 번거로워질 뿐만 아니라 일관성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 규정에도 예외는 있다. 경음 표기가 이미 굳어져 누구나 다 그 형태로만 사용하는 몇몇 어휘는 경음 표기를 인정한다. 이를테면 ‘껌, 빵, 삐라, 빨치산, 히로뽕’ 등이 그렇다.
제5항 이미 굳어진 외래어는 관용으로 존중하되, 그 범위와 용례는 따로 정한다.
관용(慣用)을 인정하는 표기의 대표적인 예가 ‘라디오’와 ‘카메라’이다. 영어 ‘radio’의 발음은 [reidiou]이고, ‘camera’의 발음은 [kæmərə]이므로 표기법에 따르면 ‘레이디오’와 ‘캐머러’가 된다. 그러나 우리는 오랫동안 써 온 ‘라디오’와 ‘카메라’라는 표기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다. [참고-‘외래어 표기법’(정희원,국립국어원)]
외래어 표기법은 영어를 비롯하여 독일어·프랑스어·에스파냐어·이탈리아어·일본어·중국어·폴란드어·체코어·세르보크로아트어·루마니아어·헝가리어·스웨덴어·노르웨이어·덴마크어·말레이인도네시아어·타이어·베트남어·포르투갈어·네덜란드어·러시아어 등 21개국의 언어를 우리말로 표기하는 표기 세칙을 두고 있다.
영어표기 잘못 쓰기 쉬운 예
이들 세칙 가운데서 영어 표기법을 중심으로 우리가 일상에서 잘못 쓰기 쉬운 예를 몇 가지 들면 다음과 같다.
1. 어말의 ‘~sh[∫]’는 ‘시’로 적는다. ‘English’는 ‘잉글리쉬’가 아니라 ‘잉그리시’로, ‘finish, flesh’는 각각 ‘피니시, 플레시’로 표기하는 것이다.
자음 앞의 ‘sh[∫]’는 ‘슈’로, 모음 앞의 ‘sh[∫]’는 이어지는 모음에 따라 각각 ‘섀, 셔, 셰, 쇼, 슈, 시’로 적는다. ‘슈렉(Shrek)’, ‘섀도(shadow), 패션(fashion), 셰필드(Sheffield), 쇼핑(shopping), 멤버십(membership)’등이 그것이다. 특히 ‘~ship’을 ‘~쉽’으로 쓰기 쉬운데 이는 잘못이다.
2. 고유명사에서 어말의 ‘~s[z]’는 ‘스’로 표기한다. ‘New York Times, Beatles, Wales’ 등은 각각 ‘뉴욕타임즈, 비틀즈, 웨일즈’가 아니라 ‘뉴욕타임스, 비틀스, 웨일스’로 적어야 하는 것이다.
3. 기타 외래어 표기 가운데서 ‘ㅈ, ㅊ’과 같은 입천장소리(구개음) 아래에 ‘ㅑ, ㅕ, ㅛ, ㅠ’처럼 ‘ㅣ선행 복모음’을 쓰는 것은 잘못이다. 구개음 뒤에서 ‘쟈’는 ‘자’로 ‘져’는 ‘저’로 소리 나므로, ‘disk jockey, vision, juice, charming, picture, chomsky’ 등은 ‘디스크자키, 비전, 주스, 차밍, 픽처, 촘스키’로 적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막상 외래어를 표기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표기법을 따르기는 절대 쉽지 않다. 국어를 가르치고 있지만 나 역시 자주 헛갈리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마다 ‘표준국어대사전’이나 ‘우리말 배움터’의 도움을 받곤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아래아 한글’에서 외래어 표기에 어긋나게 입력하면 아래에 빨간 줄이 그어진다. 그럴 때는 ‘우리말 배움터’의 ‘한국어 맞춤법/문법 검사기’나 ‘외래어↔한글 표기 상호 변환기’를 이용할 수 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지간한 낱말의 오류는 찾아내는 아주 생광스러운 도구라는 걸 보증한다.
2015. 6. 10.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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