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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움에서 가벼움으로 - 오늘의 ‘대학생’을 생각한다

by 낮달2018 2021.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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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대학생, 무거움은 내려놓았는가

▲ 요즘 대학생들은 한 시대 전의 선배들과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다.  ⓒ <연합뉴스>

 

장면 1

광주캠퍼스는 74개 학과 중 57개 학과에서, 여수캠퍼스는 30개 학과 중 20개 학과에서 각각 선배들이 신입생과 후배들에게 기합을 줬다. 일부 학과는 선배들이 군대 유격장의 조교처럼 군복에 빨간 모자를 착용했다. 기합은 선착순 달리기와 어깨동무하고 앉았다 일어나기, 오리걸음으로 운동장 돌기, 심지어 차가운 물 속에 들어가도록 하는 경우도 있었다. 시간은 30분~2시간 동안 이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전남대]

 

장면 1-1

최근 이 학교에선 사관학교 생도 못지않은 지나친 신입생 예절 교육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한 신입생은 “복도에서 선배를 그냥 지나쳐 먼저 갈 수 없다”며 “늘 ‘먼저 지나가겠습니다, 선배님’ 하고 물은 뒤 대답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K씨는 “내가 꿈꾸던 캠퍼스가 이렇게 무섭다는 게 슬프고 밤에 언제 또 불려 나갈지 몰라 불면증에 시달린다”고 털어놨다. [수도권 사립예술대인 D대학]

 

장면 2

국내 한 사립대학교 학생들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욱일승천기’(旭日昇天旗) 이미지 합성사진이 SNS를 통해 퍼져 논란이 되었다. 트위터와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 등에는 하단에 ‘DESIGN’(디자인학부)이라는 로고를 단 욱일승천기 배경의 합성사진이 게시됐다. 사진 속에서 남녀학생 7명은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욱일승천기 이미지를 배경으로 가운데에 선 한 남학생을 향해 손을 높이 들고 ‘하일(만세) 히틀러’를 외치는 나치식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상지대]

 

장면 3

서울의 한 사립대 정보통신공학부 남학생들이 서울 시내 한 여자대학 특수교육과 학생들과의 미팅에 나가 여학생들에게 장애인 흉내를 내며 자기소개를 하라고 시켜 반인권적 행위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페이스북에 한 여대생이 자신의 학과 신입생들이 미팅을 했는데 상대 남학생들이 ‘JM(장애인 흉내를 내며 하는 자기소개)’을 시켰고 화를 내자 ‘그게 자기들 문화’라는 태도를 보여 불쾌했다고 글을 올렸다. 이 글이 게시된 후 미팅에 참여했던 남학생이 페이스북에 “ㅇㅇ대학 특수학과 애들하고는 미팅하지 마”라며 욕을 올린 뒤 이 두 글이 누리꾼들에 의해 캡쳐돼 일파만파로 퍼졌다.

 

장면 4

지난달 27일께 역도부 동아리에 가입했던 신입생이 역도부 동아리 선배들을 찾아가 역도부에서 탈퇴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자 탈퇴하려면 “50대를 맞아야 한다”며 역도부 선배로부터 맞았다는 것이다. 이 신입생은 전날 선배 ‘술잔이 비었다’는 이유로 선배로부터 뒤통수와 따귀를 맞은 뒤 탈퇴를 결심하고 동아리 선배를 찾았다가 ‘규칙’이라는 이유로 50대를 맞았다. [인하대]

 

요즘은 ‘대학생’들이 말썽인 것 같다. 며칠 새 대학생들이 일으키는 크고 작은 논란이 연이어 언론에 오르내린다. 그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머리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거기서 연상되는 대학생들이란 ‘성숙하고 지적인 청년’이라는 일반의 기대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생 = 성숙하고 지적인 청년?

 

사실 군대도 다녀오고 이십 대의 중반을 넘겨 의젓해지고 철이 제대로 든 고학년이 아니라 갓 입학한 새내기를 기준으로 대학생을 생각해보면 ‘성숙하고 지적인 청년’이라는 이미지는 다소 과도할 수도 있다. 우리 나이로 고작 스물, 스물하나, 스물두 살짜리가 성숙하면 얼마나 성숙하며 지적이면 얼마나 지적일 거냐는 얘기다.

 

그러나 대학생을 바라보는 일반의 인식은 그런 상식을 웃돈다. 그것은 지금처럼 ‘개나 소나’ 다 가는 대학이 아니라 소수의 학생만이 대학을 진학하던 근대교육 초기의 기억이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일까. 아니면 대학생들이 우리 사회의 가장 예민한 사회적 모순을 어떤 정치적 고려도 없이 사회적 의제로 제시해 온 아주 특별한 역할 때문일까.

 

군부독재와 권위주의 통치 시기엔 대학생들의 위상은 남달랐다. 그들은 강력한 저항의 아이콘으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 분단과 통일 등의 사회적 의제를 선도했다. 당연히 정권과 기득권 사회에게 그들은 골치 아픈 ‘말썽꾼’일 수밖에 없었다.

▲ 1980년대의 대학생들은 조국과 민족의 문제 앞에 고민하고 아파하면서 청춘을 보냈다.

그러나 그들과 그들의 싸움과 희생에 힘입어 우리 사회는 이만한 수준의 민주주의를 만들어 왔다는 데 시비를 걸 사람은 없겠다. ‘철없는 이상주의자’였든, ‘이념 과잉의 민족주의자’였든 그들의 희생과 헌신 덕분에 오늘 우리가 이런 난만한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 시절의 이른바 ‘운동권 대학생’들에게 지워진 짐은 무겁고 버거웠다. 그들은 고작 스무 살 어린 나이부터 조국의 분단 모순과 노자대립의 계급모순을 고민해야 했다. 연애와 공부와 취업 따위는 뒷전이었고 필요하면 언제든 감옥에 갈 각오로 살았다.

 

도서관에서 고시 공부를 하는 대신 지하에서 이념 서적을 읽으면서 이른바 ‘의식화’된 이들 학생은 자신들의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서 기꺼이 몸을 낮추어 노동 현장에 들어갔고, 거기서 ‘노동자의 벗’이 되어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교육하기도 했다.

 

대학생들은 숱하게 붙잡혀 감옥에 갔고, 고문당했고, 의문의 죽음을 맞기도 했다. 군대에 강제 징집되었고 프락치를 강요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늘 핍박당하면서도 그들은 의연하고 정당했다. 형벌을 구하는 검사나 형을 선고하는 판사보다 도덕적으로 더 우위에 있다는 확신으로 이들은 언제나 떳떳하고 당당했다.

 

그들은 정치 사회적 이슈를 관철하기 위해 삭발을 물론 단식도 주저하지 않았으며, 때론 스스로 목숨을 바치기도 했다. 그 시대에는 ‘분노는 정의’였고 ‘애국의 전제’였다. 당연히 시대가 그들을 조숙하게 만들었다는 얘기다. 그들의 젊음은 압도적 시대적 민족적 과제에 압도되고 있었다.

 

‘시대의 아들’이었던 7·8·90년대 대학생

 

물론 이들은 다수가 아닌 소수였다. 그러나 자신의 안일한 미래를 그리며 책을 파고 있었던 소수의 도서관파들을 제외하면 대다수 학생은 이념적이든 심정적이든 이들을 지지하고 이들과 동시대의 아픔을 같이 앓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들은 그 시대의 아들들이었다.

 

1990년대 세계사를 뒤바꾼 이른바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 이후, 나라 안에서 처음으로 민간정부가 들어서면서 대학은 변화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어서 여야 간 정권교체, 정권 재창출이 이루어지면서 형식적·제도적 민주주의가 제 길을 찾게 된 것도 대학생의 역할과 위상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왔다.

 

이른바 ‘학생운동’의 퇴조는 그예 2000년대 후반에는 대학에서 학생회 선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자치 붕괴’의 상황으로까지 번졌다. 어느 날부터 대학은 조국의 현실을 염려하고 그 모순에 분노하는 애국청년들의 공간이 아니라, 더 나은 직장을 얻기 위한 공부와 이른바 ‘스펙 쌓기’의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반값 등록금 시위. 정작 대학생들은 자신의 문제에서 한발 비켜나 있다. ⓒ 민중의 소리

사회적 의제를 선도하기는커녕 자신들의 문제에 대한 도발적 문제 제기조차 어려울 만큼 대학은 지리멸렬해졌다. 몇 해 전부터 대학가에서 불붙었던 ‘반값 등록금 운동’은 실제로 전체 대학생들의 현실적 고민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정작 대학생 본인들의 참여는 매우 부실했을 정도다.

 

‘참여’ 없는 대학, 퇴행적 ‘서열문화’

 

어느 날부턴가 대학생들은 이제 전 시대의 선배들이 온몸으로 감당해야 했던 민족과 조국을 굳이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 역사와 시대의 압도적 중력으로부터 놓여나면서 그들은 마치 퇴행적 성장의 기미마저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몇 해 전의 일이다. 명퇴한 선배 선생님에게서 그런 질문을 받았다.

 

“요즘 대학생들은 왜 그래요?”

“무슨 말씀이신지…….”

“선후배들 간에 대화가 마치 군인들 선후임 간에 나누는 것 같더라고.”

“아, 예……. 뭐, 그렇지요.”

“우리 학교 다닐 땐 그러지 않았어요. 선후배 간에도 깎듯이 경어를 썼고, 엔간히 친하지 않으면 반말은 꿈도 꾸지 않았거든.”

“그랬지요. 저희도 그건 마찬가지였지요.”

“거참, 대학은 어쨌거나 지성의 전당인데, 밥그릇 자랑이나 하다니…….”

 

글쎄, 대학에서 선후배 간 대화가 서열 구조로 바뀐 게 언제부턴지는 모르겠다. 우리 아이들한테 물어보니 이들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그런 문화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딸애는 엠티(MT)에 갔다가 선배로부터 얼차려를 받은 기억을 떠올리면서 좀 어이없어했다. 그땐 어려서 그냥 지나쳤는데 지금 생각하면 정말 웃기는 일이라고.

 

더는 민족과 조국을 고민하지 않아도 될 만큼 어느 날부터 대학은 가벼워졌다. 신념을 위해 미래를 포기하고, 자기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고 기꺼이 감옥에 갔던 전 시대의 학생들과 달리 이들은 다시 앳된 20대 청년으로 되돌아간 것일까. 수강 신청부터 지도교수 면담까지 어머니가 와서 도맡아 한다는 학생이 적지 않다는 이야기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다.

 

무거워진 것은 졸업 후의 진로, 그들의 미래다. 청년 실업률과 ‘삼포세대’라는 신조어가 시사하듯 이들은 불확실한 미래 앞에 내던져져 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 앞에서 확실한 것은 현재 자신이 취득한 기득권뿐이라고 이들은 생각하는 것일까.

 

첫머리에 소개한 대학생 이야기는 이미 일부 대학의 문제가 아니라, 대부분의 학교에서 시나브로 드러나고 있는 문제들이다. 선배가 후배에게 군림하는 이 군대식 학교문화의 근원은 어디일까. 단지 상대적으로 일찍 학교에 입학했다는 이유로 후배에게 단체로 벌을 줄 수 있다고 믿는 의식의 기저에 도사린 것은 일찍이 우리가 버려야 했던 ‘군사문화’의 잔재는 아닐까.

▲ 엠티에서 선배들에게 얼차려를 받는 대학생들. 선배들은 군복을 차려입었다. ⓒ 전남일보
▲ ‘욱일승천기’ 소동을 몰고 온 한 대학 디자인학부에서 만든 사진
▲ 이른바 ‘JM 자기소개’의 전모를 밝힌 특수교육과 여학생의 페이스북 글(부분)

글쎄, 이런 형식의 문화가 언제부터 대학에 뿌리내렸는지는 알 수 없다. 언제부턴가 이런 문화는 선후배 사이에 대물림되면서 ‘관행’이 된 듯하다. 결국 졸렬한 입학 연대라는 서열에 기대어 선배는 기득권을 행사하고 후배는 거기 저항하지 못하고 그걸 추인하게 된 것은 요즘 학생들이 전 시대의 선배 대학생들이 지녔던 문제의식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보기도 한다.

 

선배는 군대 유격장 조교가 되고, 후배들은 그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훈련병이 되는 이 뒤집힌 학생 문화 앞에선 정말 입맛이 쓰다. 군대에서나 통용될 만한 ‘선배는 하느님과 동창’이라는 식의 60년대식 명제가 통용되는 듯한 이 어이없는 현실은 또 한편으론 이미 계급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복제하고자 하는 청년들 무의식의 소산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문사철’을 기피하는 대학에서 인문학은 설 자리를 잃었다. 그 대신 강의실마다 들어앉은 것은 영어 강좌고 취업을 위한 실무 기능 강좌다. 그런 공부를 통해서 학생들은 ‘스펙 쌓기’에 매진하는 대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인문학으로부터 수혈받은 ‘세상 읽기’의 눈과는 멀어지기만 한다.

 

‘욱일승천기’ 소동에서 읽히는 것은 우리 사회의 중요한 쟁점에 대한 이해와 인식의 부재다. 인문학과는 거리가 먼 디자인 학부의 학생이라는 점만으로 면책이 될 수는 없다. 전 시대의 대학생이었다면 혹독한 비판의 세례를 면치 못할 일이었는데, 이걸 무심히 SNS에 올리고 환호작약하는 철없는 대학생들의 모습을 용인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은 씁쓸하다.

 

사회적 약자인 소수에 대한 존중은 지성의 전당인 대학에서 마땅히 기본이어야 한다. 일찍이 전 시대의 선배들은 ‘장애’에 대한 연민으로 장애인들이 직면하고 있는 모순된 현실과 맞서 연대해 싸우기도 했다. 그 시절엔 사회적 약자의 편에 자신을 포함하는 것은 진보적 연대의 출발점이었다.

 

장애인 흉내를 낸 자기소개를 요구한 그 대학생들은 그들이 놀잇감으로 끌어내린 장애가 장애인들의 고통스러운 삶이고, 사회적 편견과 차별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알았을까, 몰랐을까. 여학생들의 장애인 시늉을 보면서 그들은 낄낄대고 웃으면서 자신의 비장애를 안도하고 싶었을까.

 

철없는 대학 새내기들이 벌인 단순한 촌극이라고 여기자고 하면서도 가슴속에 분노의 감정이 스멀스멀 자라는 것은 그 때문이다. 서열에 기대어 후배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나 사회적 약자에게 편견과 차별의 언행을 서슴지 않는 것은 다르지 않다. 민족사적 고통을 환기하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이해를 갖추지 못한 것도 동시대인으로서 지녀야 할 의무를 포기한 것과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아이들과 수업을 하면서 가끔 아이들이 가진 생각의 일단을 확인할 때마다 나는 가슴이 서늘해지곤 한다. 그들이 무심히 지껄이는 역사적 몰이해, 현실에 대한 거의 맹목적인 추종, 공동체의 윤리가 아니라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욕망에 대한 담대한 태도 따위 말이다. 비록 일부이지만 그런 아이들이 대학생으로 자라니 오늘의 대학생이 보여주는 저 속물적 모습은 어쩌면 일찌감치 소년기에서부터 배태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2013. 4. 10.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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