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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두껍’을 잡으면 ‘세상이 변한다’?

by 낮달2018 2021. 4. 7.

▲ 붓두껍을 잡으면 세상이 변한다는 김경수 화백의 만평 ⓒ 김경수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시가지 곳곳에 붙은 후보자의 펼침막과 선거 포스터, 수업 시간에도 들려오는 후보자들의 유세 방송 소음 따위가 총선거의 임박을 환기하지만 정작 사람들은 무덤덤하기만 하다.

 

1월에 이곳으로 이사했고, 새 임지에서 근무를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구미는 낯설다. <오마이뉴스>에서 ‘총선 특별취재’를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총선 관련해서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은 까닭이 거기에 있다. 주변에 이번 선거에 관심 있는 이들도 없는데다가 정작 새 학년이 시작되면서 수업과 업무에 바빠 한갓지게 선거판에 눈을 돌릴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바쁘기도 했지만 그런 ‘무심’의 바닥에는 안동에서 18대 총선을 치를 때와 마찬가지로 이 ‘보수 본향’에서의 선거란 뻔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똬리를 틀고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대체로 이곳 경북 지방은 ‘지역 정당’과 무소속을 빼면 야당 경쟁자가 없거나 있으나 마나 한 선거이기 일쑤다. 시민후보는커녕 진보정당조차도 후보를 내지 못하는 총선거일은 ‘노는 날’ 이상이기 어렵다.

 

그런데 그런 무덤덤한 심사에 파문을 던진 이는 후배 교사다. 1990년대 후반에 예천지역에서 조직 활동을 같이했고 2009년부터 2010년까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경북지부장을 지낸 김임곤 선생이 지역 시민단체와 진보정당의 추천을 받아 내가 사는 지역에 도의원으로 출마한 것이다. 해당 도의원이 총선에 출마하면서 생긴 결원으로 인한 보궐선거다.

 

그가 출마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그게 그리 반갑지 않았다. 선거라 하면 오래된 기억이 몇 있는 까닭이다. 첫 지방선거 때다. 현지에 가서 근 한 달 가까이 숙식을 하면서 광역의회에 도전한 해직 동료를 지원했지만, 그는 애석하게 낙선했다. 뒤이은 총선에 선배 교사 한 분이 역시 진보 진영의 요구에 밀려 출마했지만, 지역의 보수성을 아프게 확인하는 데 그쳤다. 모두 해직 시절, 현직을 떠나 있었기에 가능했던 이야기다.

 

▲ 지역의 도의원 보궐선거 입후보자들의 선거공보

간접선거였던 교육위원 선거도 두 차례나 현역의 동료들이 도전했지만, 벽을 넘지 못했다. 모르긴 해도 전국에서 유일하게 전교조 출신의 교육위원을 한 차례도 못 낸 지역이 경북인 것이다. ‘고착화’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견고한 지역의 보수적 정서 앞에서 씁쓸해하던 기억은 지금도 새롭다.

 

이내 그와 통화를 하면서 역시 그가 지역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걸 알았다. 나는 절대 쉽지 않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그의 처지와 결정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는 지부장으로 재임하던 2009년 11월, ‘시국선언’으로 해임된 해직 교사다. 역시 현직을 떠나 있었기 때문에 출마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본격 선거운동이 시작되고 거리에서 그의 선거운동원을 가끔 맞닥뜨리기도 했지만, 현실적으로 그를 도울 수는 없다. 소규모의 운동원으로 간신히 꾸려가는 그의 운동을 지켜보면서 드는 안타까운 마음도 어쩔 수 없다. 선거 결과와 무관하게 마음으로 그의 선전을 비는 게 고작인 것이다.

 

그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총선의 다른 판도도 조금 눈에 들어왔다. 집권 여당 후보뿐 아니라,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에서도 후보를 냈다. 이웃 선거구에선 20대의 여성이 통합진보당 후보로 나서 화제가 되었다.

 

하긴 세상이 예전 같지는 않다. 이른바 ‘집권당 심판’의 구호가 여전히 유의미한 상황이라니까. 변변한 야당 후보조차 구경하지 못한 지난 총선에 비기면 지역민들에게 이번 총선의 상차림은 선택의 여지가 있겠다.

 

오늘 아침엔 며칠 전에 우편으로 온 선거공보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이는 모두 여섯, 정당 소속과 무소속이 각각 셋이다. 영남지방이 대개 그렇듯 무소속은 친여 성향인 듯하다. 도의원 후보는 넷인데, 역시 정당과 무소속 후보가 각각 둘씩이다.

 

비례대표 공보도 동봉되어 있는데, 등재된 정당이 20여 개라는데 정작 공보는 11개 정당의 것밖에 없다. 기존 정당 말고 유난히 눈길을 끄는 것은 ‘녹색당’의 공보다. 재생지 같은 한 장짜리 공보는 녹색 일색이다. 유권자들은 과연 이러한 다양한 선택지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투표소는 인근 중학교 교실이다. 서울에 있는 아이는 부재자 투표를 했다더니 우송된 투표안내문의 선거인 명부 등재 내역에는 아내와 딸아이 등 셋만 실려 있다. 나란히 등재된 등재 내역을 보니 비로소 사흘 앞으로 다가온 선거를 짜장 실감한다.

 

어제부터 2012년도 프로야구 페넌트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개막전 4경기는 매진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겨우내 프로야구를 기다려온 마니아들에겐 신바람 나는 시절이 열린 것이다. 경기의 승패가 갈리듯, 11일이 지나면 이 선거의 승패도 분명하게 갈릴 것이다.

 

투표율이 승부를 가를 것이라는 예측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선거일을 휴일로서가 아니라, ‘세상의 변화’를 이끌 시간으로 기억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이 투표소로 나가는가가 관건이라는 얘기다. 투수가 던지는 공은 공을 ‘잡는’ 방법(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 싱커 등)에 따라 ‘공이 변한다’. 그러나 투표소에서 ‘잡는’ ‘붓두껍’은 ‘세상이 변한다’라는 김경수 화백의 만평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2012. 4. 8.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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