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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교단(1984~2016)에서

다시 삼월

by 낮달2018 2021.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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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학년도 시작

▲ 지난 3월 4일 아침, 겨울 들어 가장 많은 눈이 내렸다. 학교 운동장 아래 숲도 하얗다.

연중 가장 길고 지겨운 한 주다. 월요일(3일) 개학을 했으니 한 보름쯤 너끈히 지난 듯한 느낌인데도 아직 목요일이다. 잠시 짬도 없이 이것저것 업무 보랴, 수업하랴 단내를 풍기면서 동료들은 ‘아직도야?’를 외친다. 3월 말까지 시간은 느림보처럼 움직일 것이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학교 풍경이다.

 

2학년을 다시 맡았다. 애당초엔 비담임으로 갈까 했으나 남은 세월이 만만찮은데 벌써 첨지 흉내를 내어선 안 되겠다 싶어서 담임을 희망한 것이다. 학급은 같은 5반이지만 지난해와 달리 문과반이다. 복도 많지, 아이들 숫자도 작년의 24명에 이어 26명이다. 이과 세 반이 두 반으로 줄면서 5반이 문과반이 된 것이다.

 

고정관념 탓도 있겠지만 문과반과 이과반은 교과에 따라 수업 분위기가 달라진다. 이과반은 수학·과학 교과에 눈을 빛내지만, 문과반은 문학 등의 인문 과목 시간에 생기를 낸다. 작년에는 내 반 아이들이 내 수업에 좀 심드렁해서 다소 씁쓸했는데 올해는 그런 걱정을 덜었다.

 

아이들의 눈빛이나 반응을 보면 이 아이들이 교과를 받아들이는 감성이 눈에 잡힌다. 몇 시간밖에 하지 않았는데도 아이들이 문학을 아주 감각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느낌이 분명하게 전해져 온다. 문학을 가르치는 교사에게 이건 만만찮은 원군이다. 그것은 ‘아’하면 ‘어’하고 아귀가 맞아떨어지는 기초인 까닭이다.

스물여섯 명 중 중학교 3학년 때 내게서 배운 아이들이 여섯, 그중의 둘은 내 반이었다. 불운하구나, 하고 반은 농으로 위로했더니, 오히려 다행이라면서 고개를 저으니 고마운 일이다. 늘 하듯 첫 만남에서 나는 자율과 자치를 중시하며 나를 희생하는 게 어렵다면 최소한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잊지 말자고 했다.

 

얼마나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이들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우리 아이들은 대부분 총명하고 반듯한 편이다. 주어진 규칙을 잘 지키고 염치를 안다. 아이들은 1년간 가르치다 보면 눈치채지 못했던 아이들의 마음의 속살을 발견하고 놀랄 때가 많다. 그래서 그렇게도 말했다.

 

“담임을 하면서 뜻밖에 학생들이 가진 아름다움과 순수, 쉽사리 흉내 내기 어려운 장점을 발견하면서 행복해할 때가 많았던 것 같다. 앞으로 너희들과 같이 공부하면서 너희들 각자가 가진 덕성들을 하나씩 발견하면서 너희를 새롭게 알아가고 싶다. 너희들 역시 주변의 친구들에게서 그런 아름다움과 귀함을 찾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유난스레 올 3월은 울적하게 맞았다. 그런 적이 없었는데, 어쩐지 올 한 해, 갈 일이 아득하고 막연하게만 느껴지는 거였다. 아이들을 만나고 수업을 하면서 회복되긴 했지만, 여전히 마음이 썩 개운하지는 않다. 며칠 전에는 때아닌 눈이 내렸다. 밤새 내린 눈이 도시를 하얗게 덮고 있었다. 이 ‘3월의 눈’을 서설(瑞雪)로 여겨야 하나, 생각하다가 그렇게 믿기로 한다.

 

 

2008. 3. 6.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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