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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교단(1984~2016)에서

다시 맞는 봄, 3월

by 낮달2018 2021.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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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학년도가 시작됐다

▲ 올해는 2학년 대신 1학년을 맡았다. 공간은 2층에서 3층으로 바뀌었다.

2010학년도가 시작되었다. 의례적인 문투라면 ‘대망의 2010 어쩌고’라고도 할 수 있을 테지만, 2010학년도는 내게 ‘슬그머니’ 그 민얼굴을 내밀었다. ‘슬그머니’라고 표현한 까닭은 올해도 꼼짝없이 담임을 덮어쓰고 말았기 때문이다.

 

2009학년도를 마치면서 나는 지난 3년 동안의 담임에서 놓여난다는 사실에 은근히 설레고 있던 참이었다. 학급과 아이들에게서 벗어난 여유와 한가로움을 어떻게 즐길까 하는 고민은 그것만으로도 신나는 일이 아니었던가 말이다. 그러나 '미리 마신 김칫국'은 썼다. 내가 ‘비담임’에서 ‘담임’으로 급전직하(!)한 경위는 다음과 같다.

 

우선 학교별 교원의 ‘정원 조정’이 있었다. 현행 교원 수는 법정 정원에 훨씬 못 미치는데도 올해도 어김없이 감원이 이루어졌다. 이른바 ‘TO감(減)’으로 교사 1명이 준 것이다. 교사 하나가 전출한 자리에는 전입 명령이 나지 않았다. 이는 그 자리에 ‘기간제’를 쓰라는 뜻이다. 게다가 업무를 맡기기 무엇한, 정년이 코앞인 원로교사가 두 분이다.

 

이런 상황이란, 줄이면 ‘일할 사람은 적고 할 일은 많다.’이다. 몇 되지 않은 비담임 교사들은 지난해보다 갑절이나 되는 업무를 뒤집어쓸 수밖에 없다. 제주도 여행의 끝날, 늦은 점심을 먹다가 내가 받은 교무부장의 전화는 그런 상황을 고려한 권유였다. 맡아야 할 업무가 과중하니 차라리 담임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얘기였다.

 

어떤 경우에도 보직교사(부장)를 맡거나, 교육과 무관한 공문 수발로 1년을 그르칠 생각은 없었으므로 나는 어정쩡하게 그의 권유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학년은 1학년. 2002년에 이어 8년 만에 다시 고1을 맡는 셈이다. 전화를 끊고 나니 식욕이 간데없었다. 글쎄, 한 해 더 아이들을 맡는다? 그게 부담스러워 밥맛이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담임을 1년쯤 더 한다는 데 별 유감은 없었다. 그런데도 기분은 좀 씁쓸했다.

 

개학을 기다리면서 나는 잠깐씩 내가 맞을 새내기들을 생각하면서 우정 처지는 기분을 달랬다. 주변의 동료들도 ‘당신은 담임하는 게 맞다, 잘 됐다’라고 위로(?)해 주었다. 나는 이발과 목욕을 하고 입학식을 기다렸다. 26년쯤의 내공이라면 담담해져야 맞는데, 주책없이 나는 은근히 마음이 설레었던 것 같다.

 

1학년 4반. 지난해와 같이 교무실 바로 옆의 반이다. 물론 이는 전 학년 담임 가운데 나이가 제일 많은 교사에 대한 예우다. 같은 학년을 맡은 동료들은 50대, 30대가 각각 한 분, 나머지는 모두 40대 중후반의 교사들이다. 초빙되어 온 30대 남교사는 나보다 정확히 스물한 살 아래다. 그는 내가 입대하던 해 세상에 태어난 친구다.

▲ 어린 티가 가시지 않는 열일곱 새내기 우리 반 딸들이다. 모습조차 해맑지 않은가.

3월 2일, 모처럼의 정장 차림으로 나는 서른 명의 새내기들과 만났다. 해마다 아이들을 만나서 하는 얘기는 다르지 않다. 나이 들수록 ‘할 말은 줄이고 아이들을 좀 더 그윽하게 바라보게 된 것’은 전적으로 ‘밥그릇’에 힘입은 것이다. 아이들은 긴장하고 있고, 담임을 맡은 사나운 인상의 늙수그레한 교사를 불안하게 바라보았다.

 

세 해나 내리 2학년을 맡다가 1학년 새내기를 맡으니 매사에 담임이 손을 대야 한다. 아이들은 아직 고등학교 생활에 어둡고, 교사들은 물론이거니와 급우들과도 서먹하다. 그러나 이 열일곱 살 새내기들이 누구인가! 아이들은 금방 상황을 파악하고 거기 살갑게 적응해 가는 것이다. 나는 뜸을 들이듯 아이들이 날마다 새롭게 학교생활에 적응하는 걸 유심히 바라보았다.

 

입학 다음 날부터 저 ‘거룩한 야간 자율학습’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군말하지 않고, 차례를 기다려 저녁밥을 먹고 와서 바로 책에다 코를 박는다. 첫날이니 부득불 근 9시까지 남아서 아이들을 살펴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 나는 아이들에 대한 연민의 정을 숨긴 채, 사무적으로 그렇게 충고해 주었다.

 

“현행의 입시경쟁 시스템을 부정하고 다른 경로를 찾지 않는 한 별 방법은 없어 보인다. 올 야자는 아마 12월 하순까지 ‘쭈욱’ 계속될 것이다. 매일 세 시간을 어떤 방식으로 보낼 건가는 전적으로 너희들의 선택이다. 이 제도를 몸에 붙이고 그 안에서 어떻게든 자기 발전을 위한 시간으로 가꾸어가라. (이런 된장!)”

 

이튿날은 당번이어서 10시까지 남았다. 사흘째 날인 어제는 바로 퇴근해 저녁을 먹자마자 고꾸라졌다. 아직 보충수업이 시작되지 않아 수업량은 그리 많지 않은데도 그렇다. 학년 초란 이래저래 바쁘고 경황이 없는 시기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목이 뜨끔거리기 시작한다. 제발, 하고 나는 빌었다. 학년 초부터 호되게 앓는 일이 없기를!

 

아이들이 쓴 ‘자기소개서’를 시간 날 때마다 들여다본다. 그것만으로 아이들을 파악하는 건 무리다. 그러나 당장 내가 아이들을 이해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게 고작인 것이다. 대체로 아이들 가정 형편은 무난해 보인다. 나는 학비 감면이나 보충수업비 면제가 필요한 아이가 있는지를 꼼꼼히 들여다보면서 올해는 가능하면 몇몇 집에는 가정 방문을 해 볼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오늘 자치활동 시간에 아이들은 학급 반장과 부반장을 뽑았다. 반장은 후보가 둘, 부반장은 무려 여섯이 후보로 나왔다. 소견 발표를 하고 당선 인사를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참 자기표현을 잘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아이들의 속내를 하나씩 알아가는 게 담임이 누리는 기쁨인가 하는 생각도 했다.

 

개학 첫 주가 끝났다. 이 시기는 한 해 가운데 가장 긴 주고, 3월은 가장 긴 달이다. 첫 주가 지나면, 3월이 가면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 한 달 동안 아이들과 함께 부대끼면서 학급이나 아이들과의 관계가 자리를 잡아갈 것이다.

 

입학식 날부터 비가 내리더니 며칠간 비가 오락가락한다. 그러나 아직 봄은 먼 느낌이다. 오후부터 다시 바람이 불면서 추워지고 있다. 3월이 가면서 시나브로 교정과 뒷산에 봄이 아련하게 피어날 것이다. 교사 3층에 자리한 1학년 교무실에서 내려다보는 교정 풍경은 새롭다. 이 새로움이 어쨌든 한 해를 견디는 힘이 될 것이다.

 

공무원연금법이 바뀌어 그동안 ‘까먹은 세월’을 재직기간으로 다시 합산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복복리(複複利)로는 퇴직급여를 반납하여야 한다는 조건이 있고 반납금의 규모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빚을 내더라도 퇴직급여를 반납하고 재직기간 합산을 하는 게 맞다는 주변의 권고에 따라 합산 신청을 해 놓았다.

 

4년 후면 복직하고 20년이 된다.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된다는 뜻인데, 여기다 재직기간 합산을 하면 얼추 30년 가까이 된다. 정년은 그보다 더 남았지만 4년 후에는 교직을 떠나겠다는 생각을 굳힌다. 그리고 그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인 듯하다.

 

올까지 포함 2년 후에 학교를 옮겨서 다시 2년, 내가 견뎌야 할 세월은 그것뿐이다. 4년 후면 이제 이런 일상의 구속으로부터 놓여난다! ‘어제 같은 오늘’과 ‘오늘 같은 내일’의 연속이 삶이라지만, 때로 달라질 세월을 기다리는 것도 희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2010. 3. 6.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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