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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교단(1984~2016)에서

다시 시작이다, 2013학년도

by 낮달2018 2021.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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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학년도를 시작하며

▲ 새로 일년을 보내게 될 방송고 교무실. 오른편 큰 모니터가 있는 쪽이 내 자리다.

어저께 입학식과 함께 2013학년도가 시작되었다. 방송고 정보를 맡게 되어서 방송고 교무실로 옮겼다. 방송고의 보직은 교무·학생·정보 등 셋인데 이번에 정보를 맡았던 동료가 만기로 이동하면서 비게 된 자리로 오게 된 것이다.

 

방송고 교무실은 교사 셋이 책상 세 개를 맞대놓고 의좋게 근무하는 미니 교무실이다. 굳이 보직을 맡을 일은 없으나 이리로 오기 위해선 보직을 희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되어도 좋고 안 되어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 자리를 원했던 동료들이 여럿 있었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본교에 비기면 업무 부담이 무겁지 않다. 별도의 공간에서 자유롭게 근무하거나 시간 여유를 갖고 싶은 이들이 이 자리를 희망했던 것이다. 교감 선생은 경쟁이 치열했지만, 경력으로 볼 때 당연히 내가 가는 게 맞지 않느냐면서 축하해 주었다. 고맙다고, 나는 공치사만은 아닌 인사를 했다.

 

2월 마지막 날에 전년도 업무를 마감하기 위해 학교에 나온 김에, 아예 짐을 싸서 이사를 했다. 짐이라야 책꽂이 하나, 책 몇 권, 그리고 서랍 속의 내용물이다. 아, 내가 늘 갖고 다니는 19인치 모니터도 있다. 노트북은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되니 데스크톱에 비기면 이사는 간단한 셈이다.

 

국어과에서는 1명이 가고 한 명이 새로 왔다. 수업을 배정하는 과정에서 나는 2학년 문학과 3학년 화법을 맡았다. 두 개 학년을 걸치는 건 부담이다. 출제 부담도 두 배다. 그러나 후배 교사들은 모두 담임을 맡거나 시수가 조금 더 많거나 해서 내가 그 부담을 지기로 했다. ‘똥차’가 자리를 잡아야 나머지 새 차가 움직이기가 좋은 것이다.

 

날이 풀렸다고는 하지만 아침은 여전히 쌀쌀했다. 새 학년도 첫날이어서 하던 대로 타이까지 맨 정장으로 출근했다. 입학식을 마치고 첫 수업은 4교시였다. 아이들은 아무래도 다소 긴장하고 있다. 새로 만나는 교사에 대한 경계와 기대, 궁금증이 뒤섞인 복잡한 표정으로.

 

가능하면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나는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자기소개를 하고 수업 운영의 대강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특히 졸음을 이기는 ‘시간의 관리자’가 될 것을 충고했다. 우리 아이들은 1학년 때는 그렇지 않은데 2학년이 되면서부터 그야말로 ‘본격적으로’ 수업 시간에도 졸기 시작한다.

 

일과 내내 학습 부담이 만만치 않다 보니 아이들이 지치는 건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들은 너무 쉽게 잠에 몸을 맡겨버린다. 그런 조짐이 학년 초부터 나타나는 불길한 상황을 미리 막아보고 싶었다. 아이들은 이성적으로는 이해한다. 그러나 몸이 늘 마음을 따라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작년과는 달리 올해 맡은 반은 모두 문과다. 비교적 국어 수업을 좋아하는 여학생들도 문과와 이과의 분위기는 차이가 난다. 문과 아이들이 눈을 빛내며 수업에 집중하는 반면 이과 아이들은 좀 심드렁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여학생만큼 국어 수업을 선호하지 않는 남학생의 경우는 좀 애매하다.

 

물론, 이과 쪽의 반응이 훨씬 미지근하다. 그렇다고 해서 문과 아이들의 반응이 더 적극적인 것 같지도 않다. 그러나 아이들의 반응과 무관하게 일단 수업하는 건 훨씬 편하다. 눈에 띄는 반응은 없지만 아주 미세하게나마 아이들의 감수성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문학은 논리가 아니다. 그걸 받아들이는 것은 일종의 인문학적 감수성 같은 것이 아닐까.

 

아이들에게 그런 이야기도 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인문학에 관한 관심과 취향의 동질성을 확인하면서 보다 정서적인 교감을 원했던 것 같다. 아이들도 희미하지만 내 의도를 알아챈 듯 보였다. 됐다. 지나친 기대는 실망을 부른다. 그쯤에서 아이들과 호흡을 맞추기로 했다.

▲ 교정의 봄은 아직도 멀어 보인다. 뒤뜰의 매화가 겨우 꽃망울을 맺고 있는 참이다.

연중 가장 긴 주(週)가 중반을 돌았다. 다행히 일교차가 크긴 하지만 대낮엔 봄기운이 완연하다. 성급한 사내아이들은 벌써 반소매 셔츠 바람으로 교내를 휘젓고 다닌다. 체육 다음 시간에는 반바지를 입고 연신 부채질을 해대는 녀석들도 적지 않다. 어쨌건 봄이 온 것이다.

 

주간 수업 시수는 그대로지만 방과 후 수업이 조금 줄었다. 한두 시간이 줄어도 단박에 표시 나는 게 수업 시수다. 월, 화, 수요일은 비교적 여유가 있는데 목요일과 금요일이 좀 빡빡하다. 대신 방과 후를 조정하는 것으로 얼추 균형을 맞추었는데 일단 3월 한 달은 지내봐야 할 것 같다.

 

3학년 수업 8시간은 수능을 치르고 나면 해방이다. 사실상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대입 원서를 쓰는 시기가 오면 그 일정에 맞추어 학사가 운영되기 때문이다. 그때쯤이면 한 주를 반 토막으로 지내는 여유를 누릴 수 있을 터이다.

 

방송고는 이번 주 일요일에 입학식과 시업식을, 17일에 첫 수업을 시작한다. 새로 담임으로 만날 학생들을 대충 떠올려보며 주말을 기다린다. 모든 일상의 갈등과 상처를 넘어서 아이들과는, 늦깎이 학생들과는 숫되게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2013. 3. 6.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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