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미디어 리포트

그래도 ‘종이신문’을 포기할 수 없는 까닭

by 낮달2018 2021. 2. 26.
728x90

넘치는 인터넷, 온라인 신문에도 ‘종이 신문’을 포기할 수 없다

▲ 어제 명동성당 앞에서 집회를 마치고 행진하는 언론노동자들. ⓒ <미디어오늘>

매일 새벽에 현관 앞으로 조간신문이 배달된다. 일어나 문을 열고 신문을 들이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된다. 부모님 슬하를 떠나 객지살이를 시작하면서 시작된 신문 구독은 <동아일보>에서 1988년에 새 신문 <한겨레>로 바뀌었을 뿐 어언 30년이 넘었다.

 

한때 지역의 <한겨레> 지국이 문을 닫으면서 이웃 시군으로부터 우편으로 <한겨레>를 받아 읽어야 했던 때가 있었다. 운 좋으면 당일 치 신문을 받을 수 있지만, 운수 사나우면 다음 날 이미 ‘구문(舊聞)’이 된 신문을 받아야 했다. 집배원이 쉬는 일요일에는 신문을 받아 볼 수 없었다. 다음 날 읽을 수 있음을 알면서도 신문 없는 하루를 견디는 게 쉽지 않았다. 신문을 받으면 골골샅샅 광고까지 죄다 읽어내던 시절의 얘기다.

 

신문 없는 날이 견디기 힘들던 ‘시절’도 있었다

 

신문을 받아 띄엄띄엄 제목만 훑고 지나가는 게 자연스러워진 게 언제부턴지 모르겠다. 아마 신문 지면을 늘이는 일간지들의 경쟁이 시작된 이후가 아니었나 싶다. 꽉 찬 석 장, 12면이 고작이었던 신문이 2, 30면을 넘기면서 읽어야 할 기사만큼 광고도 훌쩍 늘어났던 시기였다. 자연히 이 잡듯 신문을 읽던 버릇은 옛이야기가 되고 엔간한 기사는 읽지 않고 넘기는 데 익숙해져 갔다.

 

아침에 주요 기사를 중심으로 초벌로 읽고, 퇴근해서 나머지 기사를 읽곤 하던 신문 읽기가 조금씩 바뀌어 가게 된 것은 인터넷이 일상이 되면서부터다. 아침에 읽지 못한 기사는 출근해 짬이 날 때마다 읽곤 하다 보니 퇴근해서 다시 신문을 집어 들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어느덧 신문은 무얼 읽느냐는 질문에 ‘다음’이나 ‘네이버’로 읽는다는 답변이 자연스러워졌다. 그러나 내겐 지면으로 <한겨레>를 읽는 게 주(主)고 웹으로 읽는 것은 어디까지나 종(從)일 뿐이었다. 온라인신문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뷰스앤뉴스> 따위를 읽는 것은 종이 신문을 읽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신문읽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 일반화되면서 내가 지켜 온 ‘신문읽기’도 변했다. 손아귀 안에서 종횡무진 인터넷 서핑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가히 혁명에 가까운 변화다. 사람들은 개인용 컴퓨터를 켜는 대신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불러냄으로써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지하철 풍경.사람들은 책이든, 스마트폰이든 무언가를 읽고 있다. ⓒ 한겨레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있는 젊은이 이야기는 더는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지난해던가, 결혼기념일에 온천장에 갔었다. 온천욕을 하고 숙소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은 뒤 잠깐 뉴스나 확인한다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가 고개를 드니 아내 역시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그렇게 우리 내외는 서른몇 해째 결혼기념일 밤을 맞이했다.

 

스마트폰으로 ‘신문 읽기’

 

나는 아이폰이 나오고 나서도 꽤 오래 2G폰에 머물러 있었다. 내가 처음 장만한 스마트폰은 언제 어디서나 아주 손쉽게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4G폰이었다. 이웃들은 손사래를 쳐댔지만 조그만 액정화면에 깨알처럼 떠오르는 활자를 읽는 데 나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또래들 대부분이 노안(원시)인 것과 달리 나는 젊을 때부터 근시였다. 먼 데를 볼 때는 안경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신문을 읽을 때면 썼던 안경도 벗어야 하는 근시라는 것은 말하자면 내 ‘경쟁력’이었던 셈이다.

 

나이 들면서 초저녁잠이 많아졌다. 종일 수업으로 잔뜩 피로해진 몸은 저녁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다가 그예 고꾸라지고 말 때가 많다. 서둘러 잠자리에 들어 실컷 잤다 싶어 깨어나면 애걔걔, 자정 전후이거나 새벽 한두 시다. 당연히 이내 새로 잠드는 일은 쉽지 않다.

 

이때부터 이른바 ‘전전반측(輾轉反側)’이 시작된다. 새로 잠들기가 어렵다고 판단하면 일어나 책을 읽거나 컴퓨터를 켠다. 못다 읽은 기사를 읽거나 끼적이던 글을 불러내서 이어가는 따위의 일로 한두 시간을 죽인다. 그러다 다시 자리에 들면 아침까지 다시 깨어나지 않고 잘 수 있었다.

 

정상적으로 잠자리에 들어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여러 번 자다 깨기를 반복해도 어차피 새벽 5시 어름이면 눈을 뜨는 것이다. 신문이 오기에는 이른 시간이니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을 켠다. 단말기에서 나온 빛이 아내의 단잠을 방해하지 않도록 나는 잔뜩 주의를 기울인다. 그러나 어느새 아내도 깨어나 액정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가 많다. 내외는 꼼짝없이 스마트폰의 포로가 된 것이다.

 

스마트폰은 잠 못 이루는 밤이나 새벽의 내 동선(動線)을 줄여주었다. 나는 일어나 서재로 가는 대신 누운 채로 스마트폰을 꺼내 차례대로 온라인, 오프라인 언론을 그야말로 ‘섭렵’하는 것이다. 요즘에는 내 읽기 목록에 <경향신문>, <미디어오늘>, <노컷뉴스>, <뉴스타파>가 더해졌다. 이들을 다 읽고 나면 포털 <다음>의 뉴스로 옮겨가 못다 읽은 뉴스를 마저 읽곤 한다.

 

나는 엔간하면 ‘조중동’은 읽지 않는다. 부득이 글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면 실수로라도 그쪽으로 들어가는 걸 꺼린다. ‘안티조선’ 운동이 한창일 때부터의 버릇이다. 멀쩡한 사실(fact)을 자신들 파당의 이해를 기준으로 교묘하게 비트는 이들 수구·극우 언론의 보도는 굳이 읽고 싶지 않아서다. 그게 말하자면 내 신문읽기가 진보 성향의 언론에 치우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스마트폰이 열어 주는 인터넷 세계와 가까이 지낸 시간이 한 해를 넘기면서 자연 ‘종이 신문’과 멀어지기 시작했다. 아침에 신문을 들이는 것은 옛날과 다르지 않지만, 그걸 펴고 읽을 일이 없어진 것이다. 이미 신문이 현관에 닿기 전에 나는 어젯밤과 새벽에 걸쳐 상당 부분의 기사를 이미 읽고 난 뒤기 때문이다.

 

그래도 종이신문을 버릴 순 없다

아침에 들어온 신문은 접힌 채로 집안을 굴러다니다가 폐지함으로 들어가게 된다. 어느 날, 아내가 그랬다. 나는 그렇다고 동의하면서도 뭔가 모를 아쉬움 때문에 말끝을 흐릴 수밖에 없었다.

 

“이제 굳이 종이신문을 받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니우? 이젠 아예 신문 펴 볼 일이 없어졌는데 뭘…….”
“그렇긴 한데……. 당분간 좀 두고 보자고.”

 

젊은이들이 신문을 읽지 않은 지 꽤 오래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신문 대신 <다음>이나 <네이버> 같은 포털에서 뉴스를 읽는다고 했다. 그래서 네이버의 편집방침에 따라 기존 종이신문과 온라인신문들의 희비가 엇갈리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종이신문의 미래가 비관적이라는 전망과 함께 신문사의 어려운 사정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어렵게 진보적 논조를 이어가고 있는 온라인신문들 사정도 좋지 않다고 한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이어온 수구 신문들에도 어려움이 없지 않지만, 소수의 진보언론의 그것에 비기기는 어렵다.

 

그래서다. 피시든 스마트폰이든 인터넷으로 일찌감치 새로운 소식을 섭렵할 수 있다고 해서 종이신문을 끊거나 홀대할 이유가 충분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손아귀 안에서 뉴스를 읽을 수 있는 건 결국 그 종이신문이 우리 사회에서 나름의 존재감을 확보하고 여론과 의제를 형성하는 데 한몫을 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마저 종이 신문을 끊을 수는 없지. 결국 우리가 이렇게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신문을 읽을 수 있는 것은 그나마 어려운 가운데서도 종이신문이 살아 있기 때문이지. 종이신문마저 사라져 버리면 다른 여타의 인터넷 언론도 위태해질지도 모르지…….”
“하긴 그렇기도 하네요.”

▲ 내 스마트폰 홈 화면의 일부

 

어저께 <한겨레>에서 정기주주총회 소식을 전해왔다. 나는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소액주주로서 회사에서 위촉한 수임인에게 의결권을 전자 위임하는 걸로 주주의 의무를 다했다. 몇 해 전 주주가 된 아이들에게도 틈나는 대로 전자 위임을 하라고 일러두었다.

 

현재 우리 언론 상황은 썩 좋지 않다. 해묵은 과제인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이나, ‘해직언론인 복직’은 여전히 미해결 상태고, 정권의 언론 장악 의도는 노골화되고 있다. 종편은 끼리끼리 ‘막장 쇼’를 다투고 있고, 공영방송은 바야흐로 망가질 대로 망가져 가고 있다.

 

지난 25일 명동성당 앞에서 집회를 연 언론노동자들은 1987년의 언론 상황을 되짚었다. 공영방송의 취재기자들이 시민들로부터 돌을 맞았고 취재 차량이 파손된 것은 보도할 것은 보도되지 않고 대통령의 동정만 전하는 이른바 ‘땡전 뉴스’ 때문이었다.

 

27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의 언론 상황은 그 시절에 비겨서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하다. 정권에 불편한 기사는 이른바 ‘게이트키핑’으로 삭제되고 권력에 도움이 되는 소식으로 도배되는 게 오늘날 공영방송의 ‘생존 방식’이다. 이들 언론은 그예 권력 앞에 납작 엎드린 경비견이 된 것이다. 어제 <KBS>와 <MBC> 뉴스에는 대통령 담화만 있었지,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거리로 쏟아져 나온 노동자들의 총파업 소식은 없었다.

 

절대 바람직하지 않은, 갑갑한 상황은 이어진다. 역설적으로 그럴수록 권력의 감시견으로서 <한겨레>를 비롯한 비판적 진보언론의 존재 의미는 새롭게 반추된다. 하여, 특별히 열어 볼 일이 없는 신문을 뒤적이면서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원한다’라고 한 토머스 제퍼슨의 말을 곰곰 되씹어 보는 것이다.

 

 

2014. 2. 26. 낮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