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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미디어 리포트

‘삼성’ 앞에 선 ‘진보언론’

by 낮달2018 2021.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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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재벌 삼성과 가난한 진보 언론

▲ 손문상의 그림세상(2010. 2. 24) ⓒ <프레시안> 손문상

중앙 일간지들의 광고 게재 거부

 

▲ 삼성을 생각한다(사회평론)

김용철 변호사가 쓴 신간 <삼성을 생각한다> 광고가 중앙 일간지에 전혀 실리지 못하고 있다는 뉴스를 읽고 나는 씁쓸하게 웃고 말았다. 조중동과 매경과 같은 일간지는 물론이거니와 무료신문 <메트로>조차 광고 게재를 거부하고 있다는 뉴스 앞에서 웃는 것 말고 달리 어떡하겠는가.

 

이어서 <경향>이 삼성그룹을 비판한 ‘김상봉 칼럼’이 부담이 된다면서 이를 지면에 싣지 않았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는 나는 마음이 짠해졌다. 과문하지만, 나는 <경향>이나 <프레시안> 등의 진보언론들이 처한 어려움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자신의 칼럼을 <프레시안> 등에 보내면서 밝혔다는 김상봉 교수의 생각에 깊은 신뢰를 느꼈다. 김 교수는 “이번 일을 두고 경향신문을 비난하기보다는 도리어 진정한 독립언론의 길을 걷도록 더 열심히 돕는 것이 우리 모두의 과제”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어제 <경향>은 1면 ‘알림’을 통해 ‘대기업 보도 엄정히 하겠습니다’라는 사과문을 실었다. <경향>은 “편집 제작과정에서 대기업을 의식해 특정 기사를 넣고 빼는 것은 언론의 본령에 어긋나는 것이지만 한때나마 신문사의 경영 현실을 먼저 떠올렸음을 고백”한다고 했다. 누리꾼들과 독자들이 여기에 적극적으로 호응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경향, 김상봉 칼럼 관련 대 독자 사과

오늘 자 <프레시안>은 <오마이뉴스>도 김상봉 교수의 해당 칼럼을 싣지 않은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고 보도하면서 <오마이뉴스> 기자들의 반발을 전하고 있다. <관련 기사> ‘명예훼손 등 소송으로 문제가 될 법한 표현’ 때문이라는 경영진의 해명에 대해 기자들은 “차라리 최대 광고주인 삼성그룹과의 관계 때문이라면 이해하겠으나 표현이 부적절하다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되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인식이 설 수 있는 상황은 그 자체로 비극이다. 문제는 기자들과 경영진의 ‘인식차’다. 오연호 대표는 ‘<오마이뉴스> 매출의 80%가 광고인 상황에서 경영자로서 삼성은 파트너’라고 생각한다고 했고, 기자들은 기자에게 ‘적이 어디 있고 파트너가 어디 있느냐’고 크게 반발했다는 것이다.

 

▲2010년 2월 24일 자 <경향신문> 1면에 실린 사과문

<오마이뉴스>, 혹은 독자 대중의 선택은…

 

나는 이 황당한 역사 퇴행의 시대에 진보언론이 살아남는 법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원론을 들이대며 비난하고 공격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도 이해한다. 날마다 겪어야 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진보언론이 부단히 ‘언론의 본령’을 지켜나가는 것에 대한 경의도 잊지 않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제 씁쓸하게 웃지만은 못하겠다. 그래, 그랬구나……. 머리를 끄덕일 수도 없다. 그걸 단순히 ‘경영진의 고민’이나 상황변수로 유보해 줄 수 없는 까닭은 무엇일까. <오마이뉴스>가 보도하지 않은 것을 <프레시안>은 실었다. <프레시안>은 더 잃을 게 없어서고, <오마이뉴스>는 그나마 이룬 것을 잃지 않고 싶어서였을까.

 

분노가 아니다. 공연히 쓸쓸하다, 외롭다는 생각에 마음이 저려 왔다. 뉴스 게릴라라고 엉거주춤 발을 걸치고 있는 내가 그럴진대, 기자들 마음은 어떨까.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유령처럼 이 땅을 배회하고 있는 ‘삼성’과 ‘이건희’의 가공할 힘 앞에서 무너져야 하는 기자들의 무력감의 크기를 나는 생각했다.

 

<경향>은 사과문으로 문제를 마무리했다. <오마이뉴스>는 어떨까. ‘정답’은 늘 분명하지만, 정답이 추구되지 않는 현실이 존재하고, 그것을 추인할 수밖에 없는 시민의 좌절과 분노가 공존하는 상황이다. 김상봉 교수가 밝힌 대로 시방 ‘독립언론’을 위한 우리의 몫은 너무나 분명해 보인다.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독자의 선택일 뿐이다.

 

 

2010. 2. 25.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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