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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미디어 리포트

삼성, ‘선별 광고’도 ‘반칙’이다

by 낮달2018 2021.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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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 언론 <한겨레>, <경향>에 대한 삼성의 ‘선별 광고’

▲ 2010년 <한겨레>와 <경향> 신년호에 실린 삼성의 광고 ⓒ <한겨레><경향> PDF

2010년 1월 1일, <한겨레> 신년호를 나는 무심히 읽고 지나쳤나 보다. 1면 하단에 ‘삼성’의 광고가 실려 있었다고 했다. 삼성이 <한겨레>에 광고를 ‘뺀’ 게 2007년이니 거의 2년여 만이다. (지난해 단발성 광고가 한번 나간 적이 있긴 하다) 새해 아침이라 정신이 맑지 않을 이유가 없었지만 나는 ‘삼성이 <한겨레>에 광고를 중단한 사실’을 전혀 기억해내지 못했다.

 

<한겨레> 신년호에 ‘삼성 광고’가 나갔다는 사실을 나는 1월 4일 자 <미디어 오늘>에서 확인했다. <미디어 오늘>의 기사 제목은 삼성, 2년여 만에 경향·한겨레에 광고/신년호에 게재광고 정상화 기대에 삼성은 아직이다. 나는 <한겨레> 신년호를 뒤져 1면 하단에 실린 ‘삼성 광고’를 확인했다. 피디에프(PDF)를 통해 <경향> 5면에 실린 비슷한 광고도 확인할 수 있었다.

 

 

광고 내용은 평이하다. 둘 다 ‘두근두근 투모로(Tomorrow)’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한겨레> 광고는 호랑이의 등을 타거나 매달린 사람들을 아주 부드러운 터치로 그린 것이다. 호랑이 위에는 ‘두근두근 2010, 출발’이라고 적어 새해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 <경향>의 광고는 ‘두근두근 새 결심’, ‘두근두근 새집’, ‘두근두근 새해’ 등 같은 터치로 그린 세 컷의 그림이다. 두 광고 모두 마지막에 삼성의 로고가 조그맣게 붙어 있다.

 

삼성, <한겨레>·<경향>에 2년여 만에 광고

 

<미디어 오늘>의 기사는 결국 이 광고가 삼성의 광고 정상화의 신호탄이냐는 해석에 대한 해당 신문사와 삼성의 반응이 ‘조심스럽다’라고 전할 뿐이다. 신문사 쪽도 ‘정치적 해석 없이 게재’했다는 입장이고 삼성 쪽도 ‘신년호 광고는 일회적인 것’이라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고 한다.

 

2007년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의 비자금 조성 의혹을 폭로한 이후, 삼성은 이를 적극적으로 보도한 <한겨레>·<경향>에 광고를 중단했다. 졸렬한 처사였지만, 이는 광고 수입의 비중이 높은 우리 언론 상황을 고려하면 두 신문을 일정하게 흔들기에 족했다. 그러나 <한겨레>·<경향>은 이에 굴복하지 않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삼성에 대한 비판과 감시를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삼성은 자칭 타칭 이 나라 최고의 기업이다. 그 영향력도 막강하여서 ‘삼성 공화국’이라는 말이 별 저항 없이 사람들에게 오르내린다. 삼성과 그 총수 이건희의 지배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는 지난해 8월, 조세 포탈 및 배임 등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 원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그로부터 단 4개월여 만에 이건희는 대통령에 의해 특별사면 되었다. 그것도 유례없는 1인 사면이다.

 

보수 언론과 재계가 북 치고 장구 치면서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를 위해 그가 필요하다는 여론을 지피더니 그예 그는 1인 특사를 따냈다. 가만히 있어도 그가 가진 영향력을 인정해 주는 사회, 이건희는 마치 투명 인간처럼 법과 권력 위에 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말한바, ‘시장으로 간 권력’은 그의 것이 된 것일까.

 

누군가 그랬다. "‘세기의 반칙왕’ 이건희가 ‘올림픽’을 유치한다?" 그것도 체육계와 강원 도민의 간절한 요구를 받아들여……. 눈물겨운 미담이다. ‘조세 포탈’과 ‘배임’이라면 일종의 파렴치 범죄다. 그걸로 실형을 선고받은 기업인이 다시 올림픽 유치위원으로 뛰도록 부추기는 나라에 ‘상식’과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언급하는 게 언감생심이다.

 

그에 대한 특별사면이 공식 발표된 날, 삼성 그룹과 맞서 오랫동안 싸워 온 민주노총 법률원 소속의 노무사가 갑작스럽게 경찰에 연행되었다고 한다. 우연이겠지만, 이 사건은 삼성이 절대적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우리 사회 시스템의 한 단면을 은근히 시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기업 2류, 행정 3류, 정치 4류…’, 삼성은 ‘몇 류’일까

 

▲ <경향> 5면의 삼성 광고. ⓒ <경향> PDF

삼성은 뉴스의 중심이기도 하다. 오늘 <연합뉴스>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세종시에 5년간 5천억 원을 투자하는 신규 사업을 제안했으나 정부는 고용 및 파급 효과 등을 감안, 최소 2조 원대의 투자가 요구되는 초대형 프로젝트를 희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라고 한다. 정권은 ‘세종시 패착’을 살릴 구원투수로 삼성에게 ‘역할을 해 달라’고 조르고 있는 모양이다.

 

총수가 법정에서 중형을 선고받는 것과 무관하게 삼성의 영향력은 기업은 물론, 언론에서도 ‘빵빵하’기만 하다. 지난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이 SK그룹 회장에게 SK텔레콤의 아이폰 도입을 유보해달라고 요청한 사실이 있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그 기사는 해당 신문은 물론 주요 포털에서 잇따라 삭제되었다고 한다. 이 기막힌 ‘협조’와 ‘공생’……. 사람들은 더는 그런 기사에 놀라지도 않는다.

 

지금 <프레시안>에는 “이건희 전 회장, 美 출국…경영 복귀설도 ‘솔솔’”이라는 기사가 떠 있다. 슬슬 움직여도 될 만큼 세월이 흘렀다. 그에게 남은 것은 형식적으로 비워둔 오너를 자리를 되찾고 자신의 영향력과 능력을 다시 확인해 보는 일뿐일까.

 

베이징에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는 취지의 발언을 해 파문이 인 때가 1995년이다. 그리고 꼭 15년이 흘렀다. 그때 그의 발언은 우리 정치의 후진성과 관련하여 얼마간 국민의 공감을 얻기도 했다.

 

‘자본의 언론 길들이기’도 ‘반칙’이다

 

2010년, 수년에 걸친 송사를 거쳐 특별사면된 삼성 총수 이건희는 이제 자신의 기업을 ‘일류’라고 말하고 싶지 않을까. 세계 반도체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세계 유수의 기업이니 ‘급수 판정’이 무색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 막강한 지배력을 행사하면서도 삼성그룹이 저지른 반칙은 그가 경멸해 마지않은 ‘4류 정치’보다 별로 나아 보이지 않는다.

 

이건희와 삼성은 자신과 자신의 기업이 모두 초일류라고 자부할지 모른다. 그러나 반칙을 일삼으며 기업을 경영하고 우리 사회를 자본의 힘으로 매수하고자 하는 한 그는 물론 그의 기업은 삼류를 넘지 못한다. 연간 수십억 원의 광고비 집행, 그 자본의 위력으로 비판을 무력화하려는 하는 삼성의 행태 역시 반칙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그것도 가장 ‘저열한’ 형식의 반칙 말이다.

 

 

2010. 1. 6.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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