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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미디어 리포트

<한국방송(KBS)> 뉴스로는 ‘모래’를 찾을 수 없다

by 낮달2018 2021.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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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방송의 직무유기’는 박근혜 정부에서도 이어진다

▲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 기사는 요령부득하다. ⓒ <KBS> 9시뉴스 갈무리

요즘은 텔레비전 뉴스를 거의 보지 않는다. 한때는 고집스레 <MBC> 뉴스만을 선호한 적이 있긴 하지만 다 옛날이야기다. 두 공영방송이 대통령 특보 출신의 사장에게 인질이 되어 있는 동안 <SBS>가 틈새를 밀고 들어와 두 공영의 직무유기를 일정하게 벌충해주기도 했다.

 

사장이 우여곡절 끝에 해임되어 나가면서 MB정부 5년 동안 꽉 막혀 있었던 <문화방송>의 상황이 좀 풀리는가 싶었지만 아직 가시적 변화는 눈에 띄지 않는다. <MBC>가 죽을 쑤는 동안 <SBS>가 틈새를 공략하면서 낙담해 있던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었지만, 상업방송이라는 <SBS>의 정체성은 여전히 미덥지 못한 부분인 것 같다.

 

김재철의 <MBC>가 아예 홀딱 벗고 막가고 있을 때 ‘공신력 1위’라는 <KBS>는 꾀바르게 줄타기를 했던 것 같다. <MBC>처럼 노골적인 변신은 피하는 듯하면서도 이른바 ‘챙길 것은 죄다 챙기는’ 아주 교묘하고 지능적인 스탠스를 취했던 것이다. <MBC>에 못지않은 친정부적인 입장을 관철하면서도 욕은 <MBC>가 대신 먹어 주니 <KBS>로서는 거의 꽃놀이패가 따로 없었지 않았나 싶다.

 

굳이 방송 뉴스를 봐야 할 것 같으면 나는 대체로 <SBS> 8시 뉴스를 본다.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공정’에 비교적 가까이 가려는 시각과 권력에 대한 감시라는 소임을 그래도 소박하게나마 지키려는 듯한 여지가 <SBS>에는 있었던 까닭이다.

 

KBS의 인사청문회 보도

 

그제 저녁에 어쩌다 <KBS> 9시 뉴스를 잠깐 시청했다. 주요 뉴스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는데 ‘인사청문회’ 관련 기사가 방송되고 있었다. 그러잖아도 요즘 들어 국회의 고위 공직자 후보 청문회 제도의 효용성이 점점 의심스러워지는 판이다. 낮에 인터넷으로 일별한 기사여서 어떻게 보도하나 싶어서 잠깐 들여다보았다.

 

채동욱 검찰청장 후보자와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소식이었는데 억지로 끼워 넣은 기사처럼 앞뒤 맥락을 잘라버린 듯한 내용이었다. 긍정 일색인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보도는 그렇다 치더라도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보도는 시청자가 사실 판단조차 할 수 없게 만드는 ‘요령부득’의 리포트였다.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에겐 자질에 관한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녹취> 황주홍(민주통합당 의원) : “윤진숙 후보님 같은 이런 분이 오실 경우 과연 관료제를 힘 있게 장악하고 이끌어 갈 수 있겠나…….”

 

<녹취> 신성범(새누리당 의원) : “해양수산부 산하의 연구기관에서 근무해 오셔서 갑을이 바뀌었단 말이에요. 지금은?”

 

<녹취> 윤진숙(해양수산부장관 장관 후보자) :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란 국책연구원이 해양수산부 전체의 정책을 지원하는 곳이었습니다.”

 

주변국의 해양 영토 팽창 시도와 관련해선 독도 영유권과 이어도 관할권을 강화하겠다고 답변했습니다.

 

    - <KBS> 9시뉴스 ‘다시 보기’의 ‘기사 본문 보기’ 중에서

 

‘자질’에 대한 질문이 요지라고 하면서도 부연 설명이 전혀 없었다. 녹취된 의원들과 후보자의 문답도 앞뒤 맥락을 잘라 버린 상태여서 무어라고 마땅히 판단할 수 있는 자료가 아니었다. 야당 의원의 우려가 무엇 때문에 나왔는지, 여당 의원의 질문과 후보자의 답변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쉽게 판단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마지막 멘트는 비교적 긍정적인 내용이다. ‘독도 영유권’과 ‘이어도 관할권’ 강화는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몰라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문제이니만큼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시의적절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 것이다.

 

다음날인 3일 <SBS>의 ‘취재 파일’에 올라온 영상은 이 청문회와 관련된 ‘저간의 맥락’을 완벽하게 보여 주는 것이었다. 물론 이 영상은 방송된 것이 아니라 기자의 기명 기사에 포함된 동영상이다. 그러나 이 1분 12초짜리 영상은 청문회의 목적에 걸맞게, 시청자가 후보자의 자질이 어떠한지를 명확히 파악할 수 있게 해 준다.

▲ <SBS> 생생 포착은 청문회의 전후 사정을 분명하게 드러내 준다. ⓒ <SBS> 영상 갈무리

김춘진 의원(민): 수산은 전혀 모르나요?

윤진숙 내정자: 전혀 모르는 건 아니고요

김춘진 의원(민): 큰일 났네.

김춘진 의원(민): 우리 어업 GDP 비율은 아세요?

윤진숙 내정자: GDP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하하.

 

홍문표 의원(새): 지금 항만 권역이 몇 개죠?

윤진숙 내정자: 항만 권역이요? 권역까지는 잘…….

홍문표 의원(새): 전부 모르면 어떻게 하려고 여기 오셨어요?

 

하태경 의원(새): 해양 수도가 되기 위한 비전이 뭡니까?

윤진숙 내정자: 해양~ 크 크

하태경 의원(새): 구체성이 없지 않습니까?

윤진숙 내정자: 글쎄요.

 

   - <SBS> 뉴스 ‘취재 파일’ 중에서

 

“철학도 비전도 능력도 어느 것 하나 보여 주지 못했던 장관 내정자”라는 기자의 육성을 굳이 넣지 않더라도 이 영상은 보는 것만으로도 소기의 판단을 가능하게 해 준다. 모름지기 영상이란 이래야 한다는 본보기다.

 

가장 공신력 있는 방송 1위 회사인 <KBS>가 그런 보도의 기초도 모르지는 않을 거다. 그런데도 구태여 그런 요령부득한 보도를 내보내는 속내야 미루어 짐작할 일이다. 짐작이 잘 안 되는 이들은 4일, 민주통합당 고위 정책회의에서 박기춘 원내대표가 했다는 촌철살인의 일갈을 참고하실 것.

 

“박근혜 대통령이 ‘모래밭에서 찾은 진주’라고 칭송했던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는 ‘그냥 모래’였다.”

 

 

2013. 4. 4.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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