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학년말, 곧 이별이다
지난 12일에 학교는 종업식을 하고 공식적으로 2009학년도를 마쳤다. 그 이틀 전에는 3학년 아이들이 졸업식을 치르고 학교를 떠났다. 세상은 많이 변했지만, 졸업식을 전후한 학교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해 보인다.
뭐라고 해야 하나. 한 해를 마치는 것이니 좀 들뜬 분위기가 될 수도 있을 텐데 뜻밖에 학교는 고즈넉이 가라앉아 있다. 조금은 쑥스러운 표정으로 식장에 앉은 졸업생들은 어느새 훌쩍 자란 듯한데 연하게 화장한 아이들의 얼굴 너머에 숨어 있는 것은 미래에 대한 호기심과 불안이다.
진급을 앞둔 재학생들도 공연히 점잔을 빼고 있다. 3월이 되어 다시 수험생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 앞에서 아이들은 지레 지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3월이 되면 아이들은 이내 활기를 되찾고 드높은 웃음소리와 재잘거림으로 교정을 가득 채울 것이다.
아이들에게도 그렇지만 교사들에게도 2월은 작별의 계절이다. 정년으로 학교를 떠나게 된 학교장을 포함, 내신을 내고 전보인사 발표를 기다리고 있는 이들이 모두 열 명쯤 된다. 그러나 교사들은 이런 형식의 봉별(逢別)에 익숙하다. 인연이 있으면 다른 학교에서 다시 만나기도 하지만 이 이별이 끝인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게 우리네 삶인 것을 어쩌겠는가.
우리는 서둘러 학년말 업무를 마감하고 신학년도 업무 희망서를 냈다. 나는 제1희망에 ‘비담임, 1학년 교과 담임’라고 썼다. 나이나 경력으로 보아 내가 담임을 그만두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2학년을 같이한 동료 중에서 여교사 한 분이 나와 함께 비담임을 희망, 아래층의 본부 교무실로 내려가게 되었다.
담임을 벗는다는 것은 꽤나 장점이 많다. 조종례나 학급 업무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게 그 처음이고, 야간자습이나 수학여행, 야영 따위의 활동에서도 놓여난다는 게 그 마지막이다. 가장 큰 부담은 주당 1, 2회씩 돌아오는 야간자습 당번이다. 학교에서 근무하는 절대시간이 4시간이나 느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강도가 센 것이니 말이다.
종업식을 마치고 돌아온 아이들 앞에서 나는 마지막 인사를 했다. 지난해 첫날에 이어 두 번째로 맨 넥타이의 뜻을 아이들은 이미 안다. 나는 ‘꽃들아, 너희 마음대로 피어라’는 어느 초등학교의 급훈을 이야기하며 통제자가 아니라 조력자로서의 교사(담임)의 역할을 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 결과가 어땠는지는 아이들의 평가에 맡긴다고 했다.
‘편애’하지 않기 위해서 나름 노력했다는 것도 이야기했다. 글쎄, 그것도 마찬가지다. 내가 노력한 것과 너희들이 받아들인 것은 반드시 일치하진 않을 것이다. 여러분이 어떤 평가를 하더라도 그걸 담담하게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적어도 ‘학력’으로 아이들을 차별하지 않은 것은 어떤 경우에도 나는 자신 있게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아이들과 헤어지면서 늘 들려주는 이야기, 신영복 선생의 글 속의 한 구절을 나는 되풀이했다.
이랑 많이 일굴수록 쟁기날은 빛나고,
유수봉하해(流水逢河海), 흐르는 물은 바다를 만난다.
땀 흘려 일구어 빛나는 쟁기날이 되고
쉼 없이 흘러 큰 바다를 만나라.
아이들이 이 얘기의 속뜻을 새길 때쯤이면 아이들은 훌쩍 자라 있을 터이다. 아이들에게 상장을 나누어주고, 열심히 공부해서 원하는 학교에 진학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덕담을 덧붙였다. 첫 만남 때에 이어 두 번째로 아이들은 반장의 구령에 맞추어 내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나는 반장에게 수고했다고 치하하고 교무실로 돌아왔다. 학년의 마지막 날은 공연히 늘 쓸쓸하고 허망해지는 심사를 가누기 어렵다. 그러나 내 마음은 평온했고 심상했다. 그건 전적으로 스물몇 해의 밥그릇이 선사하는 '내공' 탓이다. 나는 컴퓨터의 중요 파일들을 시디에 옮겨 굽고 컴퓨터를 껐다. 시내에서 학년 동료들과 점심을 같이 하고 나는 귀가했다.
올해 만기로 학교를 떠나는 동료 여교사는 지난해 여러 번에 걸쳐 내게 꽃을 분양해 주었다. 두어 번은 실패했는데 지금 집에 있는 고무나무와 호야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도 잘 자라고 있다. 호야는 안방에 두었다. 나는 대체로 잎이 크고 두꺼운 꽃에 끌린다. 고무나무나 호야는 바로 그런 식물이다.
호야는 일종의 덩굴식물인데, 그 잎이 묘하다. 두꺼운 잎의 몸피도 그렇고, 잎 가장자리가 테를 두르듯 하얗게 변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즐겁다. 2010학년도에는 아이들 담임을 벗은 대신, 이 녀석을 제대로 길러보아야 하겠다고 생각한다.
화초 기르기에 이력이 난 여교사는 올여름이면 호야가 제법 자라서 길게 덩굴을 늘어뜨리리라고 한다. 두어 달째 길렀건만 별로 자란 것으로 보이지 않으니, 동료의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나는 긴가민가하다. 그러나 호야는 살아 있는 생물이니, 시나브로 성장하는 것은 틀림없는 일일 터이다. 이 녀석이 덩굴을 늘어뜨리게 되는 장마철이 오면 올 한해는 반쯤 꺾이게 될 것이니 그것도 역시 좋은 일이다.
2010. 2. 14.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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