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대한 갈증을 확인하게 한 특집 방송 ‘세시봉’
프랑스어로 ‘멋지다’는 뜻의 ‘세시봉(C’est Si Bon)이 시방 상종가다. 정확히 말하면 40여 년 전 ‘세시봉’이란 음악감상실에서 인연을 맺은 왕년의 가수들이 이야기하는 삶과 노래에 대한 대중의 갈채가 뜨겁다는 얘기다. 지난해 추석 연휴의 첫 방송에 이어서 어제 방영된 2회도 대단한 호응을 불러일으킨 듯하다.
텔레비전은 켜져 있으면 보고 꺼져 있으면 굳이 틀지 않는 편이다. 그러니 어떤 프로그램을 보려고 기다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어제는 일부러 기다렸다가 ‘세시봉’ 멤버들이 나오는 ‘놀러와’를 시청했다. 딸애는 물론, 명절을 쇠려고 내려온 아들도 함께였다. 추석 연휴 때도 우리는 ‘재방송’을 함께 시청했었다. [관련 글 : 통기타, ‘중년의 추억’도 흔들었다]
세시봉 신드롬, 혹은 음악에 대한 갈증
우리 가족이라고 특별히 세대 차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음악적 취향을 공유할 수 있는 감각 따위가 있을 리 없다. 20대 중후반인 아이들의 음악적 취향은 여전히 7·80년대의 정서에 머물러 있는 우리 내외의 그것과 다르고 그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지난번에 이어 아이들은 한 시간 반이 넘는 프로그램을 흥미롭게 시청했다.
아이들은 가끔 우리에게 세시봉과 관련된 몇 가지 질문을 했고 아내와 나는 번갈아 거기 친절하게 답해 주었다. 우리에게도 너희들과 마찬가지로 음악에 취한 젊은 시절이 있었다고, 저이들에 대한 이해가 바로 우리의 젊음과 노래의 증거라고, 우리는 말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진지하고 흥미롭게 70년대의 노래와 삶을 들여다보았다. 아이들은 특히 송창식의 노래가 인상적이었다고 했고, 노년기에 접어든 1세대 통기타 가수들이 보여주는 연륜과 음악적 깊이를 순순히 인정했다. 아마 그게 한 시대의 노래일 뿐인 대중가요가 시대를 넘어 국민가요로 살아남는 방식일 터이다.
글쎄, 과문해 조심스럽긴 하나 심야 방송 프로그램 하나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까닭은 분명해 보인다. ‘70·80 콘서트’ 등의 중장년층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긴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대중음악은 10·20대 중심으로 편중되어 있다. 세시봉에 대한 대중의 뜨거운 반응은 결국 그런 상황이 우리 대중음악의 외연을 협소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의 씁쓸한 방증인 것이다.
어제는 특별 손님으로 70년대를 대표하던 또 한 사람의 가객 이장희(1947~ )가 출연했다. 다른 벗들과 달리 그는 일찍이 노래를 그만두었고 미국을 오가며 살았다고 했다. 그러나 70년대를 기억하는 이들은 그가 만들고 부르고 숱한 노래를 잊지 못한다.
이장희의 노래와 함께한 세월, 동질감
<그건 너>, <한잔의 추억> 따위의 노래가 그 시절 젊음을 찬미하면서 젊음을 고뇌하는 노래였다면 <비의 나그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불 꺼진 창> 따위는 젊은 날의 사랑과 슬픔에 대한 노래였다.
중절모를 쓰고 나타난 그는 미리 나와 있던 자신의 벗들보다 훨씬 늙어 보였다. 1947년생이니 우리 나이로 예순다섯. 그보다 훨씬 연하지만, 그의 모습에서 나는 깊은 동질감을 느꼈다. 그가 살아야 했던 세월과 삶은 동시대의 모든 사람이 공유하고 있었을 터이므로.
비의 나그네
님이 오시나보다 밤비 내리는 소리
님 발자욱 소리 밤비 내리는 소리
님이 가시나 보다 밤비 그치는 소리
님 발자욱 소리 밤비 그치는 소리
밤비 따라 왔다가 밤비 따라 돌아가는
내 님은 비의 나그네
내려라 밤비야 내 님 오시게 내려라
주룩 주룩 끝없이 내려라
님이 오시나 보다 밤비 내리는 소리
님 발자욱 소리 밤비 내리는 소리
밤비 따라 왔다가 밤비 따라 돌아가는
내 님은 비의 나그네
내려라 밤비야 내 님 오시게 내려라
주룩 주룩 끝없이 내려라
님이 오시나 보다 밤비 내리는 소리
님 발자욱 소리 밤비 내리는 소리
콧수염을 기른 20대의 그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그의 연륜이 엿보이는 얼굴은 좀 낯설지 모르겠다. 그러나 40년 세월을 건너온 그는 겸손했다. 스스로 지탱해 온 삶의 무게만큼 인간은 무거워지는 법이다. 그는 겸허했지만 당당했다. 그는 지그시 눈을 감고 30년 전에 자신이 만들고 부른 노래를 불렀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는 최인호의 장편소설로 만든 영화 <별들의 고향>의 주제가다. 최인호의 소설도 달콤했고 영화 속의 주제가도 달콤하고 쓸쓸했다. 그 노래가 주는 울림만큼 나를 공명케 한 노래가 또 무엇이 있을까. 복학한 80년대의 대학가 술집에서 술에 취할 때마다 나는 이 노래를 부르곤 했다
예전의 그 목소리로 그는 그 노래를 불렀다. 지그시 눈을 감고, 스스로가 보낸 세월 저편을 헤아리는 듯한 몸짓으로. 그리고 그는 말했다.
오늘같이 추운 어느 겨울, 37년 전 오늘이었습니다.
이렇게 추운 날 저는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이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헌데 오늘 이 노래 못난 저를 사랑했던 모든 여인들,
아니, 대한민국의 모든 여성분들에게 이 노래를 바칩니다.
그것은 마치 신파 같은 대사였다. 그런데도 그 신파는 알지 못할 진정성으로 다가왔다. 여인에게 구애할 때마다 장미꽃을 한 아름씩 준비하는 그는 로맨티시스트였다고 한다. 맞다. 그런 가사를 쓸 수 있는, 그런 사랑과 그런 젊음을 노래한 이장희는 천생 로맨티시스트일 수밖에 없다.
그는 세시봉의 벗들에게 ‘러브 레터’를 썼고 그것을 읽었다. 그것은 ‘서로 돕고 아껴주던 아름다웠던 젊은 날’에 대한 회고와 찬미며, 40여 년 우정을 나눈 인간에 대한 굳건한 신뢰였다. ‘아이 러브 유’라고 맺는 마지막 인사도 신파이되 신파가 아니었다. 그것은 시간을 뛰어넘는 우정이 무엇인가를 아는 사람의 진실이었을 것이다.
그를 위하여 벗들은 그가 작곡해 준 노래를 한 곡씩 불렀다. 그들을 따뜻한 눈길로 지켜보면서 머리를 끄덕이고 눈을 지그시 감고 자신의 노래를 듣는 그는 행복해 보였다. 김세환이 ‘비’를, 윤형주가 ‘비의 나그네’를, 송창식은 ‘애인’을, 그리고 조영남이 ‘불 꺼진 창’을 각각 불렀다.
‘비의 나그네’는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 즐겨 부른 노래다. 비 내리는 휴일의 쓸쓸한 자취방에서 나는 그 노래를 불렀다. 유감스럽지만 기타 반주는 없었다. ‘밤비 따라 왔다가 밤비 따라 돌아가는 님’이 어떤 존재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발상의 쓸쓸함과 애잔함이 마음에 닿아왔기 때문이다.
‘불 꺼진 창’도 즐겨 부른 노래 중 하나였다. 내 오래된 친구 하나는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노래방에서 그 노래를 부른다. 나는 친구의 선택이, 까마득한 젊은 날의 사랑과 추억에 대한 호출이라는 걸 안다. 젊음이란 건 누구나 피 흘리고 가슴 아파하는 격동과 연민의 시간인 것이다.
노래가 환기하는 삶과 사랑
이장희는 프로그램 끝에 무대에서 떠났다. 나머지 시간은 턱시도를 받쳐 입은 네 가수가 부르는 팝송 메들리로 이어졌다. 그가 마지막 남긴 말들은 오롯이 친구들에 대한 헌사였고, 동시에 자신의 삶과 노래에 대한 따뜻한 회고요 확인이었다.
“30년 만의 무대,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지금도 가슴이 뜁니다.”
“친구들이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아이들은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아이들에게 세시봉의 가수들이 부른 옛 노래는 낯설긴 해도 외계의 언어처럼 느껴지진 않았을 것이다. 그 시대의 노래란 가사에다 삶과 사랑을 진솔하게 담은 것이었으니 말이다. 아이들은 다른 코드였지만 그게 한 시대의 음악적 표현이란 걸 이해한 듯이 보였다.
방청객은 물론, 전국에서 심야의 방송 프로그램을 시청했던 사람들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세월은 가도 노래는 남고, 그 노래가 환기하는 삶과 사랑이란 바뀐 시대나 세대와 무관하게 공유될 수 있는 보편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세시봉 특집은 사람들에게 노래와 함께 흘러온 삶과 세월을 환기해 주었다. 동시에 그것은 그 성패와 관계없이 한 우물을 파온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증명해 주지 않았는가 싶다. 사람들은 그들이 노래한 삶과 사랑이 자신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였을 터였다.
노래를 통해서 나누고 확인한 이 동질감은 곧 우리가 동시대인이라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을 깨우쳐 준다. 이장희의 <비의 나그네>를 거듭 들으면서 나는 그들이 살아온 시간 속에 나의 젊음이 겹쳐 있듯 그들이 맞이할 그들의 황혼과 나의 그것이 겹치리라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고 있다.
2011. 2. 2.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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