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선애 새 음반 <민주주의의 노래>에 부쳐
<한겨레> 인터뷰를 읽고 주문한 윤선애의 새 음반 <민주주의의 노래> 디브이디(DVD)를 택배로 받은 게 지난 화요일이다. 종이상자를 뜯고 뽁뽁이 봉투를 열자, 목 티셔츠를 입은 윤선애의 상반신이 찍힌 포장의 음반이 얌전히 담겨 있었다. 흑백 사진 속 단발머리의 윤선애는 미소를 띠고 정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윤선애는 1964년생, 우리 나이로 쉰일곱이다. 1984년 9월, 서울대 중앙도서관 앞 광장의 임시 연단에서 ‘민주’를 부르며 민중가요 가수로 떠오른 스무 살 대학 새내기가 건너온 세월이 서른일곱 해다. 그때 “청아하면서도 처연한 목소리로, 민주주의에 목마른 청년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한겨레 인터뷰 기사, 아래 같음)던 그는 ‘민중가요계의 디바’로 불리면서 8, 90년대 민주화 투쟁 현장에서 활약했다.
윤선애의 노래를 부르며 싸우던 시절
그가 대학에 입학하던 해, 나는 뒤늦게 대학을 졸업하고 경주 지방의 한 시골 여학교에 임용되었다. 내가 그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교육 운동에 입문한 88년 이후다. 가장 먼저 익힌 김호철의 ‘파업가’를 부르면서 우리는 어정쩡하게 이른바 ‘운동권’에 편입되었다. (관련 기사 : “흩어지면 죽는다, 흔들려도 우린 죽는다” 이 노래가 서른 살이 됐다)
운동과는 무관하게 살아온 순진하고 어수룩한 교사들은 집회와 시위 현장에 나와서도 자신의 교육적 분노를 운동으로 집약할 수 있다는 걸 반신반의했다. 낯설고 전투적인 구호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현장에서 느끼는 위화감과 이질감을 극복하고 동료들과의 동질성을 체감할 수 있도록 해준 게 여러 번 함께 부르면서 익히게 된 노래였다.
그때 부른 노래는 ‘타는 목마름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 ‘동지’ 따위가 중심이었는데, 우리는 ‘늙은 군인의 노래’를 개사한 ‘늙은 교사의 노래’도 함께 불렀다. 다분히 비장한 기분으로 부르던 노래를 통하여 우리는 자신의 설익은 신념과 운동에 대한 이해의 폭을 조금씩 넓혀 갔던 듯하다.
이후 90년대를 지나면서 민중가요는 훨씬 풍성해졌는데, 나는 처연한 분노와 격정을 절제된 언어로 표현한 노래를 좋아했다. 안치환이 불러 훨씬 대중화된 ‘솔아 솔아 푸르런 솔아’ 같은 노래보다는 ‘벗이여 해방이 온다’와 ‘그날이 오면’, ‘이 산하에’ 같은, 독창에 어울리는 노래에 매혹되었다.
나는 이들 노래의 가사를 새겨 노래하면서 시인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늘 하곤 했다. 서정적인 가락에 비장한 분위기를 담은 노래와 격렬한 리듬의 노래는 망설이고 주저하는 대중에게 담대한 용기를 선사해 주었으니 그게 ‘노래의 힘’이던가.
윤선애의 노래를 따라 불렀지만, 나는 그의 노래를 한 번도 직접 듣지 못했다. 안치환처럼 대중가수로 진출한 이들과 달리,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쯤의 노래꾼들은 ‘개인’보다 집단으로 노래하곤 했으니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떤 집회에서 그가 노래했는지도 모른다.
1991년쯤이었던 듯하다. 탑골공원에서 교사들이 모였는데, 그 집회는 어떤 여성의 노래로 시작되었다. 전교조 조합원 교사라는 소개를 들은 것 같은데, 정확하지는 않다. 그가 쨍쨍한 고음으로 부른 노래가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 하지 않았네’였다. 그가 마이크 없이 육성으로 부른 노래를 들으며 나는 전율했다.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 하지 않았네
내게 투쟁의 이 길로 가라 하지 않았네
그러나 한 걸음 또 한 걸음
어느새 적들의 목전에
눈물 고개 넘어 노동자의 길 걸어
한 걸음씩 딛고 왔을 뿐
누가 나에게 이 길을 일러주지 않았네
사슬 끊고 흘러 넘칠 노동 해방 이 길을
뒤에 비합법 음반으로 윤선애의 ‘벗이여 해방이 온다’를 듣고 나는 그때 탑골공원에서 노래한 그 여성이 윤선애일지 모른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곤 했다. 1986년 분신한 김세진·이재호 열사 추모곡인 ‘벗이여 해방이 온다’(이성지 작사·작곡)는 장엄하고 비장하다. 지금도 나는 윤선애가 부르는 이 노래를 승용차 안에서 유에스비(USB)로 재생해서 듣곤 한다.
그날은 오리라, 자유의 넋으로 살아
벗이여 고이 가소서, 그대 뒤를 따르리니
그날은 오리라, 해방으로 물결 춤추는
벗이여 고이 가소서, 투쟁으로 함께 하리니
그대 타는 불길로, 그대 노여움으로
반역의 어두움 뒤집어, 새날 새날을 여는구나
그날은 오리라, 가자, 이제 생명을 걸고
벗이여 새날이 온다, 벗이여 해방이 온다
그 시절, 노래는 시위와 집회 현장을 달구면서 변혁의 열망으로 모인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었다. 그것은 참가자들의 뜨거운 연대를 확인해주면서 때론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는 확신으로, 두려움을 넘는 벅찬 용기로 다가왔다. 함께 노래하며 나누는 공감과 연대는 투쟁을 내면화하는 강력한 기제이기도 했다.
그의 노래 몇 곡을 목청껏 따라 부르면서 그 어두운 시대를 건너왔지만, 우리가 윤선애와 나눈 게 몇 곡의 노래뿐이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우리는 그가 부르는 노랫말과 거기 담긴 분노와 슬픔,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공유한 동시대인이었으니. 아, 그도 3년 반 동안 중학교 과학 교사였으니 우리의 동료이기도 했다.
나는 음반을 엠피(MP)3으로 변환하여 데스크톱 컴퓨터에 저장해 두고 그날 내내 그의 노래를 들었다. 내가 좋아한 것은 고음 부분에서 가파르게 상승하는 윤선애의 목소리였다. 그게 가장 잘 드러나는 노래가 ‘벗이여 해방이 온다’였고.
윤선애의 마침표, ‘시대와의 작별’을 지지함
그러나, <민주주의의 노래>에 담긴 열 곡의 노래는 그의 말대로 ‘목에 힘을 빼고 부른’ 노래다. 그는 <한겨레> 인터뷰에서 “생목으로 막 지르면서 표현”해야 하는 노래는 부르다가 “소리가 뒤집히는 피치 브레이크가 올까 봐 늘 공포스러웠”다면서 “목에 힘을 빼고 부르니 편안”하다고 했다.
처음에는 노래가 밋밋해졌다고 생각했지만, 거듭 들으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어찌 가창의 방법일 뿐이겠는가. 그것은 스무 살 윤선애가 쉰일곱 중년이 되면서 그 목소리에 새긴 삶에 대한 태도인 것을. 삶을 바라보는 넉넉해지고 너그러워진 그의 눈길인 것을.
예전엔 “분노를 담아서 노래를 불렀”다는 그는 “어느 순간 제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분노가 사라졌”다고 했다. 지난 4월 16일 음반 발표회 때 “이제는 치열함뿐 아니라 따뜻함까지 아우르고 갔으면 한다”고 말한 것은 그런 넉넉해진 마음의 결을 이른 것일 터이다.
음반 발표회 때 그는 “마침표를 찍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이 노래들로 젊은 세대에게 무슨 얘기를 하고 싶냐는 질문에 대해 “너무 죄송하고 미안”했다면서 “당시 부른 노래를 내 목소리로 ‘마무리’ 짓고 싶”어서였다고 했다. 그는 아마, 더는 민중가요가 젊은이들의 감성에 소구하지 못하는 시대를 마감하고 싶었던 것일지 모른다.
그는 가장 들려주고 싶은 노래로 ‘그날이 오면’을 들면서 “사람들을 토닥토닥 위로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는 “스스로를 다독인 뒤 더 넓고 따뜻하게 다른 사람들을 보듬을 수 있는 이 노래를 부르면서 젊은 시절의 나를 만났”기 때문이라면서.
그러면서 윤선애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는 인터뷰 기사를 읽으면서 내 마음도 비슷한 물기로 젖은 것은 그의 눈에 고인 눈물을 이해하고 공감해서였다. 37년 만에 ‘노래하는 사람’ 윤선애가 자기 삶의 한 시기를 그렇게 아퀴지은 것을 나는 가감 없이 받아들였다. 그의 쨍쨍한 목소리와는 내가 30여 년 전에 그와 함께했던 한 시대와 그 열망의 징표로 이제 작별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음반 <민주주의의 노래>에는 ‘그날이 오면’을 비롯하여 청소년과 교사들을 위한 앨범 수록곡인 ‘언제나 시작은 눈물로’와 4·19혁명을 노래한 이영도의 시조 ‘진달래’, 윤선애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라는 ‘오월의 노래’ 등 10곡이 실려 있다. 이 노래들은 고단한 투쟁의 시대, 그 음악적 응전의 기록이다.
윤선애가 저 한 시대를 정리하고 새로운 노래로 자신의 길을 편안하게 걸어갔으면 좋겠다. 그가 다시 부른 노래로 김세진·이재호 열사는 물론, 어둠의 시대를 치열하게 살다 스러져간 젊음을 따뜻하게 배웅하면서.
2021. 5. 8.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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