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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퇴직일기

병, 혹은 ‘몸의 배신’?

by 낮달2018 2020.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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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와 함께 찾아오는 병, 몸의 배신일까

▲ 10월 말에 독감 예방접종과 건강검진을 했는데도 오른손과 오른쪽 다리를 다쳐 버렸다.

11월의 첫 주말인데 근 열흘째 나는 두문불출 중이다. 지난달 27일 산을 오르다 오른쪽 종아리를 다쳤기 때문이다. 10일에는 경주 남산 답사를, 12일에는 서울을 다녀올까 하는데 그때까지 다리가 말끔히 낫지 않으면 어떡하나 싶어서 좀 답답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혼란스러웠던 시간을 넘기고 간신히 생활이 가지런해졌다 싶어진 게 10월이었다. 일주일에 서너 차례 넘게 산을 다녀오고, 음식 조절을 하면서 체중도 얼마간 빠졌고 아내도 예전의 평상심을 되찾았다.

 

독감 예방접종과 건강검진

 

지난겨울의 막바지에 둘 다 호되게 독감을 앓았던지라 아내는 올겨울엔 꼭 독감 예방접종을 하자고 했다. 보건소에서 실시하는 예방접종 소식을 확인한 뒤 19일에 우리는 보건소를 찾았다. 민간 의원에서는 3, 4만 원 한다는 독감 예방주사를 우리는 8천 원에 맞았다. 어쨌거나 독감에 앓지 않고 겨울을 무사히 나길 바라면서.

 

건강보험공단에서 건강검진 안내서가 왔기에 단골 병원에 예약을 했다. 이따금 속이 불편한 경우가 많았고 검사 때를 넘긴지라 위와 대장 내시경을 하기로 했다. 위내시경이야 12시간쯤 속을 비우면 되니 문제가 아니지만 대장 내시경은 사전 준비가 상당한 고역이다.

 

약을 한 보따리 받아오면서도 하룻밤 넘길 일이 아득한데다 공연히 기분이 가라앉았다. 불길한 검사 결과를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켕겼던 까닭이다. 쓴 약도 나는 잘 먹는 편이지만, 술 아닌 물을 몇 리터씩이나 줄곧 마셔야 하는 건 적지 않은 고역이었다. 어쨌든 하룻밤을 넘기고 병원에 갔다.

 

지금까지 위내시경은 서너 차례, 대장 내시경은 두 차롄가 했는데 모두 마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했다. 좀 거북하고 불편하긴 해도 그게 그럭저럭 견딜 만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그러려니 했는데 이 병원에선 대장 내시경은 수면이 기본이라 했다.

 

위를 먼저 하고 나중에 대장을 하기로 하고 시술실로 들어갔고 침대에 누워서 주사를 한 대 맞았다. 누운 채 의사 앞으로 이동하자, 안면 있는 의사가 인사를 하는 것까지가 기억의 끝이었다. 깨어나서 물어보니 양 검사가 모두 끝났다는 것이었다.

 

어질어질한 상태로 나와서 옷을 갈아입고 의사한테 가니 대장은 깨끗하다 했고, 위는 일부가 헐었으니 약을 좀 쓰자고 했다. 마취 상태로 저도 몰래 검사가 끝난 데다가 별 이상이 없다고 하니 기분이 개운해졌다. 나는 원기 왕성하게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오른쪽 손목이 시큰하다고 느낀 것은 그날 오후였다. 무슨 일이 있었던가. 내가 마취 상태에 있던 어떤 순간에 내 손목이 무리한 것일까. 손목 부위에 움직이면 꽤 둔중한 통증이 있었다. 나는 파스를 붙이는 걸로 통증을 달래고 다음 날 동네 정형외과 병원에 갔다.

 

의사는 내 이야기를 듣고 손을 만져보더니 별 말 없이 소염제 주사 맞고 물리치료를 하라고 했다. 나는 주사만 맞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손목은 조금씩 나아졌다. 지금도 통증이 일부 남아 있긴 하지만 견딜 만한 정도다.

 

종아리 근육이 찢어졌다고?

 

검진 다음 날인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사흘을 거푸 산에 올랐다. 수요일 산에 다녀와서 사진기 렌즈 캡을 잃어버린 걸 알았다. 어떡하나, 찾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 바로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다음날 산에 오르면서도 그걸 찾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정상이 한 십여 미터쯤 남은 지점에서였다. 산등성이의 오르막에서 숨을 고르다가 발밑에서 나는 어제 잃어버린 렌즈 뚜껑을 발견했다. 아, 그 순간의 감격이란! 나는 기분이 너무 좋아서 당장 인터넷에 접속하여 어제의 주문을 취소했다.

 

그리고 느슨한 오르막을 막 오르려 할 때였다. 갑자기 오른쪽 종아리가 뜨끔하더니 안에서 무슨 밧줄 같은 게 뭉쳤다가 툭 끊어지는 느낌에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몇 해 전 발목 인대가 늘어나는 부상한 때와 느낌이 비슷했다. 순간 기분이 아득해졌다. 어떻게 내려가나, 싶었기 때문이다.

 

몇 분간 숨을 고르고 다리를 움직이니까 통증이 있긴 했지만,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은 아니었다. 절뚝거리며 간신히 오른 길을 되짚어 내려왔다. 집에 와서 파스를 붙이고 하룻밤 자고 나도 통증은 여전했다.

 

다시 어저께 갔던 병원에 들렀다. 상황을 이야기하니 의사는 근육이 찢어졌다고 했다. 나는 왜 갑자기 그렇게 되냐니까, 의사는 시큰둥하게 받았다. 나이 들면 그래요. 어저께와 마찬가지로 소염제 주사 한 대를 맞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종아리 근육 파열은 갑작스럽고 과도한 저항이 종아리에 걸리는 것이 큰 원인이라고 했다. 갑작스럽고 과도한 저항? 거의 매일 다닌 산행이었는데? 나는 내 뜻과 무관한 몸의 배신에 입맛이 썼다.

 

그리고 일주일, 이제 힘을 주지는 못하지만 발을 디디는 데는 지장이 없다. 다음 주 목요일, 남산에 오를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건 죄다 내 몸에 달린 일일 뿐이다. 거의 집에서만 머무는 게 힘들지는 않았지만, 몸 어느 구석이 시원찮다는 것은 어쨌든 불편한 일이다.

 

독감 예방접종을 하고 올겨울을 건강하게 나겠다고 작심을 했는데 엉뚱하게 다리 고장이 나면서 겨울의 어귀를 좀 거시기하게 보내게 되었다. 이래저래 기분이 마뜩잖지만 어쩌겠는가. 이 역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과정인 것을.

 

나는 뜻과 무관한 몸의 이상을 ‘배신’이라고 했지만, 황인숙 시인은 그것을 ‘몸이 혼자서 풀어야 하는 어려운 방정식’이라고 했다. 배신이든 방정식이든 그것을 삭여내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어야 함은 다르지 않은 일이다.

 

 

2016. 11. 5.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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