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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퇴직일기

가시지 않는 통증, ‘수지침’ 세트를 꺼내다

by 낮달2018 2021.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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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 통증 때문에 잊었던 ‘수지침’을 떠올리다

▲ 해직 시절에 배워서 지니고 있는 나의 수지침 세트.

1989년 여름에 해직되었다가 1994년 봄에 복직했던 동료들 사이엔 해직 기간의 ‘3가지 성취’가 이야기되곤 했다. 첫째가 운전면허 취득이었고, 둘째가 컴퓨터 공부, 셋째가 수지침(手指針) 공부였다. 4년 반에 이르는 해직 기간은 비록 교단에서 배제되긴 했지만, 마음만 먹으면 그걸 익힐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기 때문이었다.

 

글쎄,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걸 이루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굳이 분류하자면 나도 거기에 낄 수 있었다. 1991년 1월에 운전면허를 땄고, 해직 기간에 286에이티(AT) 컴퓨터를 장만하여 부지런히 컴퓨터를 공부했고, 연수를 통해 흉내를 낼 정도의 수지침을 배웠기 때문이었다.

 

1989년 겨울에 우리는 이삼일쯤 말미를 내어 서울에서 초빙해 온 강사로부터 수지침을 배웠다. 그도 우리와 같은 해직 교사였는데 언제부턴가 그는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전교조 교사들에게 수지침을 가르치고 있었다.

 

해직 시절 배운 수지침을 되살려내다

 

수지침(고려 수지침)은 ‘1971년경 유태우에 의하여 연구, 발표된’, ‘누구나 쉽게 배워 스스로를 진단하여 자신의 손에 시술할 수 있’는 ‘민간요법’(<위키백과>, 아래도 같음)이다. 동양의학으로 전해 내려오는 체침과는 달리 수지침은 현재까지 “부작용이나 위험 발생 가능성은 명백하게 입증되지 않고 있는 반면, 민간요법의 효력은 보편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수지침에서는 사람의 몸은 소우주이고 손은 그 안의 소우주, 즉 ‘인체의 축소판’으로 본다. 보통 내장에 질병이 생기면 ‘내장-체표(피부)’ 반사에 따라 피부에 통증이 나타난다. 수지침에서는 이 통증이 다른 부위보다 손에서 가장 민감하게 나타난다고 본다.

 

이때 몸 각 부위의 통증은 항상 손의 특정 부위에 상응한다. 이 부위에 일정한 자극을 주면 이곳의 통증뿐 아니라 몸속 질병도 고칠 수 있다. 이는 수많은 임상 결과를 통해 밝혀진 사실이다. (이상 <동아사이언스>)

 

원리를 이해하는 건 간단하지만 제대로 상응 부위를 판별하는 내공을 쌓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두통이나 간단한 통증 같은 건 대충 때려잡아 시술해도 효과가 있으므로(이게 실제 효과인지 심리적인 위안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 자기 손에 수지침을 놓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침도 침이지만, 그 부위에다 수지용 뜸을 뜨거나 알루미늄으로 된 자극 기구인 압봉(壓鋒)을 붙이는 것도 효과가 쏠쏠하므로 한때 손등에 뜸 자국이 있거나 압봉을 붙이고 다니는 교사들을 흔히 볼 수 있었었다.

 

복직하고 한 3~4년쯤은 나도 더러 가족들에게 침을 놓거나 뜸을 뜨고 압봉을 붙이는 식으로 이 수지침을 몸에 붙이고 있었다. 원리야 어떻든 간에 일정한 효과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수지침을 시술할 만큼의 고수들과 달리 나는 일이 바빠지면서 수지침에서 멀어져 갔다.

 

주변에 나름대로 이 수지침 공부가 일정한 경지에 올랐던 이들이 적지 않다. 일찍 세상을 떠난 우리 친구 장성녕이 그랬다. 그런 친구들은 나중에 모여서 동의학 연구 모임 같은 것도 꾸리면서 공부에 깊이를 더했다.

▲ 수지침과 함께 하는 이른바 압봉과 뜸.

그러나 그저 흉내만 내는 수준이었던 나는 어느 날부턴가 수지침을 깡그리 잊어버렸다. 교직 사회에 불었던 수지침 붐도 그 무렵 슬슬 내리막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지금은 학교에서 수지침을 시술하는 교사를 만나는 건 쉽지 않을 정도다.

 

뜬금없이 수지침 이야기를 하는 건 한 달 넘게 이어지는 어깨의 통증 때문이다. 우연히 ‘어깨 통증’으로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수지침 부위를 마사지하라는 내용을 만난 것이다. 그건 분명 수지침에서 말하는 상응 부위였다. 내 왼손의 둘째 마디 손가락 등을 누르자 엄청난 통증이 있었다.

 

20년 전의 수지침 세트를 꺼내다

 

나는 틈이 날 때마다 둘째 마디를 눌렀고, 그게 효험이 있었는지 어깨가 얼마간 편안해졌다. 그제야 거의 20여 년 전에 버린 수지침을 떠올리고 나는 인터넷에 주문하여 수지용 뜸과 압봉을 받았다. 그리고 책상 서랍을 뒤진 끝에 처박혀 있던 수지침 세트를 꺼냈다.

 

침통에 든 수지침 관과 압진봉(壓診鋒), 비닐봉지에 든 압봉, 그리고 오래된 뜸 한 통 등이었다. 나는 침은 천천히 만져볼 요량으로 젖혀두고 뜸을 뜨고 압봉을 붙이는 걸로 한동안 잊었던 시술을 되살렸다. 그리고 이 치료에 꽤 정성을 들이고 있다.

 

일단 잠을 잘 때는 더는 통증이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목을 운동하듯이 좌우로 돌리면 어깨 부위에 둔한 통증이 느껴지곤 한다. 오른쪽 집게손가락의 통증은 이틀째 뜸을 뜨고 난 다음에는 몰라보게 좋아졌다. 때가 되어서인지 뜸의 효과인지는 몰라도 통증이 잡히고 있다는 건 확실하고 꽤 위로가 된다.

 

뜸과 압봉을 사들이자 아내도 반색했다. 교회에서 압봉으로 치료하는 교우에게 몇 차례 도움을 받으면서 압봉의 효력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어디 붙여줄 데 있느냐고 물었더니 지금은 아픈 데가 없다고 했다.

 

당분간은 뜸과 압봉 붙이기를 계속할까 한다. 필요하면 서가에서 수지침 관련 책도 찾아내어 다시 읽어 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예전처럼 몸에 붙일 일은 없겠지만, 이걸로 최소한의 통증이라도 다스릴 수 있다면 좀 생광(生光)스러운 일이 되겠는가 말이다.

 

 

2017. 10. 31.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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