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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퇴직일기

꽃은 ‘때가 되어야 핀다’

by 낮달2018 2020.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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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나의 산’, 북봉산

▲ 북봉산 중턱에서 내려다본 우리 동네 .  안개가 몹시 끼어서 시계가 매우 나쁘다 .

지난 8월에 산 아래로 돌아와서 북봉산을 다시 만났다. 5년 전에 만났던 산이지만 지금 내게 북봉은 옛사람의 표현을 빌리면 “산은 옛 산이로되 예전의 그 산이 아니로다.”이다. 북봉산이야 물론 5년 전이든 지금이든 똑같이 거기 있는 산일 뿐이다. 지각변동이 일어나지 않는 한 산이 변할 리는 없으니 말이다.

 

내가 그 ‘산에게로 갔다’

 

변한 것은 그것을 바라보는 자신이다. 무엇이 묵은 산을 새롭게 바라보게 했을까. 다섯 해 전에 만난 그 산은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히 스치는 산에 지나지 않았다. 가뭄에 콩 나듯 거기 오르긴 했지만, 그 산을 어떠한 방식으로도 나는 자신과 이으려 하지 않았다.

 

변화는 다시 그 산자락에 남은 삶을 부리고, 서재 이름을 ‘북봉재(北峯齋)’라고 붙이면서부터다. 책방의 창문 밖으로 북봉을 나는 물끄러미 바라보곤 한다. 한 달 전부터 매주 4차례 이상 산을 올라 조금씩 알게 된 산의 속살을 하나씩 되짚어보면서 나는 시방, 산이 스스로 숨 쉬고 있다는 표현의 의미를 조금씩 깨닫고 있다. [관련 글 : 이순(耳順) 넘어 서재를 꾸미다]

▲ 요즘은 안개가 잦다. 안개 속에 산을 오르는 느낌도 각별하다.

정상(383m)에 보일 듯 말 듯한 북봉정(亭)을 아련하게 바라보면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거길 오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마치 타인처럼 떠올린다. 나는 완만한 산등성이에 머무는 햇살과 골짜기로 불어오는 산산한 바람, 산길에 푹신하게 깔린 넉넉한 솔가리, 길을 가로막는 큰 바위, 거기 낀 이끼들, 바람에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로 심화하는 산의 적막……. 나는 이제 산을 마치 친근한 이웃처럼 느끼게 되었다.

 

눈을 내리면 아파트 바로 뒤에 유치원에서 가끔 어린이들의 높은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숲을 울리며 들려오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거기서 무슨 행사가 있었다. 나는 창가에 붙어 서서 어린이들이 숲에서 뛰노는 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새들의 지저귐 같다는 생각에 곁들여 그 맑은 웃음소리가 환기하는 것은 ‘생명’이라는 걸 새삼 깨닫기도 했다.

▲ 아파트 뒤편에 있는 유치원의 아이들. 숲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의 목소리와 웃음소리는 ‘생명’을 환기해 준다.
▲ 산 정상에 세운 북봉정. 산행객들은 여기까지 올라서 잠깐 쉬었다가 다시 하산하곤 한다.
▲ 정상에서 내려다본 시가지 풍경. 구미는 인구는 40만이 넘지만,  여전히 시골의 모습을 가진 도시다.

어느덧 일상이 되었지만, 산행에 앞서 가끔 게으름의 유혹을 받을 때가 있다. 어쩐지 일어나기 싫거나, 산행을 빼먹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그러나 일단 집을 나서 산길로 접어들면 그런 마음은 이내 사라진다. 산과 숲과 길은, 바위와 나무와 안개는 게으른 틈입자를 말없이 받아주기 때문이다. 산은 인간의 게으름과 변덕도 넉넉히 품어주는 것이다.

 

비가 오거나 식전에 해야 할 일이 없는 한 나는 여섯 시께 일어나 옷을 차려입고 산으로 향한다. 물병 대신 4등분 한 사과 한 쪽을 넣은 위생 봉지를 주머니에 찔러 넣고. 그건 밀려오는 갈증을 달래가며 산마루에 오를 때까지 내 비상 식수다.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 얼굴과 목덜미로 구슬땀이 쉬지 않고 흐른다.

 

정자에 닿으면 난간에 앉아 사과를 씹기 시작한다. 마치 과육에 숨어 있는 성분을 취하기라도 하는 양, 오랫동안 천천히. 그러던 어느 날, 솔숲 사이로 동네를 내려다보며 청량산을 ‘나의 산[오산(吾山)]이라 부른 퇴계처럼 나는 외람되지만, 이 산을 ‘나의 산’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산길과 조망

 

산은 아파트 뒤에 정상을 두고 아파트 왼편으로 뻗어나간다. 그래서 산을 오르는 길은 왼편 산자락에서 등성이를 타고 오르는 길과 아파트 뒤에서 곧장 정상으로 오르는 길, 두 가지다. 등성이를 타고 오르는 길은 완만하고 힘이 덜 들지만, 꽤 길다. 반면에 아파트 뒤에서 곧장 정자 쪽으로 오르는 길은 물매가 급한 대신 길이가 짧다.

▲  오르기가 힘들면 내려오는 길은 오히려 편하다 .  이런 호젓한 산길을 품은 산은 얼마나 넉넉한가 .
▲  아파트 뒤에서 곧장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는 바위가 많고 가파른 대신 산 아래를 조망할 수 있다 .

5년 전, 첫 산행은 뒤편의 급경사 길로 올랐는데 땀깨나 흘렸다. 두 번째 산행은 측면의 완만한 산길, 힘이 덜 들어서 이후론 그 길을 쭉 이용했다. 측면으로 올라 정상에서 뒤쪽으로 내려오는 것도 별로다. 내려오는 길이라도 관절에 무리를 줄 만큼 물매가 가파르기 때문이다.

 

돌아와서 시작한 산행은 당연히 편한 옆길로 했다. 올라갔다가 오른 길을 되짚어 내려오는 코스였다. 뒷길로 산을 다시 오른 것은 한 열흘 전쯤이다. 가파른 길을 헉헉거리며 오르는 게 힘든 대신 정자에 올라 잠시 쉬고 나면 밋밋한 경사의 산등성이를 따라 하산하는 길은 참 편안했다.

 

오르면서 진을 빼긴 하지만 이 길이 좋은 것은 쉴 참마다 돌아보면 소나무 숲 너머로 산 아래 동네가 아스라하게 보인다는 점이다. 옆길은 들면 온전히 숲에 묻혀서 정상까지 올라야 하지만 이 길은 가파른 대신 산자락 아래를 조금씩 보여주는 것이다.

 

20여 분 가까이 가파르게 치올라 정자 아래의 평평한 바윗돌 위에 오르면 산 아래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물론 안개가 끼어 있거나 흐린 날은 시계가 온전하지 않다. 얼마 전에는 운 좋게 맑고 시계가 트인 날이어서 사진을 꽤 많이 찍었다.

▲ 산에서 내려다본 조망. 대부분 아파트지만 드문드문 산자락을 품고 있는 전형적인 시골 도시의 풍경이다.
▲ 맑은 날이라도 시야가 탁 트인 날은 잘 없다. 멀리 금오산 현월봉이 보인다.

군데군데 산자락을 품고 있는 시가지 풍경은 인구 42만의 이 도시가 전형적인 시골 도시라는 걸 확인하게 해 준다. 도시 한복판에 고속도로가 지나가는 것은 그걸 건설하던 70년대에 30년 후를 내다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곳곳에 공터나 자투리땅이 듬성듬성한 도시의 풍경은 각박하지 않아서 좋다.

 

눈을 조금만 돌리면 논밭과 저수지가 있는 도시 외곽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저 멀리 금오산(金烏山 976.6m) 현월봉(懸月峰)이 아스라하다. 도심의 하늘이 무겁고 흐린 것은 공단이 뿜어내는 공해 때문일까, 아닐까.

 

꽃은 때가 되어야 핀다

 

산을 다니면서 늘 불만스러워하는 게 산길 주변에서 꽃을 잘 만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철마다 피어나는 꽃을 산행길에서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다면 산행은 더욱 풍요로워지지 않겠는가. 여기로 옮아와 산을 드나들면서도 늘 고개를 갸웃하곤 했다.

 

산길 주변에는 꽃이 드물었다. 봄이면 산등성이마다 지천으로 피는 진달래도 막상 이름난 등산로 주변에선 만나기가 쉽지 않다. 야생의 들꽃들도 인적을, 사람의 기척을 피해 숨어서 피어나는 것일까. 그게 들꽃들의 생존 전략일까.

▲ 북봉정 누마루 아래 모래땅에 피어난 쑥부쟁이들.
▲ 그저께 산비탈에서 만난 도라지모시대.
▲ 꽃은 때가 되어야 핀다. 쑥부쟁이가 화사하다.
▲ 도라지와 초롱꽃을 반반씩 닮은 도라지모시대.
▲ 오늘 산 초입에서 만난 막 피어난 구절초 군락.
▲ 정상 부근의 바위틈에 피어 있었던 며느리밥풀꽃
▲ 경상도에서는 흔히 ‘망개나무’라고도 부르는 청미래덩굴. 벌써 열매가 익어가고 있다.

가을이 깊어가지만, 그간 여기서 꽃을 만난 기억은 거의 없다. 산마루에서 만난 달맞이꽃이 고작이어서 나는 정자에서 만나는 산행객을 붙들고 물어보곤 했다. 그들은 갑작스러운 내 질문에 곤혹스러워하면서 정말 그런 것 같다고 맞장구를 쳐주었다.

 

가을인데, 쑥부쟁이도 구절초도 한창 필 땐데 도무지 꽃은 구경도 못 하니, 원…….”

 

산과 숲에 먹인 내 지청구는 좀 일렀나 보았다. 어저께 뒷길로 숨 가쁘게 산을 오르다 나는 산비탈에서 그 꽃을 본 것이었다. 초롱꽃 같기도 하고 도라지꽃 같기도 한 그 꽃은 산비탈을 돌아가는 좁은 산길 옆에 한 포기 다소곳이 피어 있었다.

 

북봉정 아래 모래땅에서 만난 것은 쑥부쟁이다. 연보랏빛 쑥부쟁이들이 이제 막 정자의 누마루 아래에 드문드문 꽃을 피우고 있었다. 겸연쩍기보다는 나는 그 꽃의 현현(顯現)이 반갑고 고마웠다. 아, 또 있다. 정자 아래 바위틈에서 만난 꽃 무더기…….

 

산비탈에서 만난 보랏빛 꽃이 ‘도라지모시대’라는 것과 정자 아래 바위틈에서 만난 꽃이 ‘며느리밥풀꽃’ 종류라는 걸 안 것은 ‘식물·꽃·나무 이름 알려주는 앱’ ‘모야모’를 통해서다. 오늘 아침에는 산 초입에서 구절초도 만났다. 아, 나는 성급했구나. 때가 되면 풀꽃은 저절로 피어나는 것을…….

 

젊은 도시여서일까, 이곳의 산행객들은 떨어진 도토리에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듯하다. 그래선지 산어귀를 들어서면 길바닥에 제법 씨알이 굵은 도토리가 떨어져 있다. 그걸 한 줌씩 주워서 사과를 넣어 온 위생 봉지에 담아온다. 그게 얼추 한 됫박 이상이 모였다.

 

조만간 ‘꿀밤묵’을 쑤어 이웃들에게 눈요기라도 시켜드려야 할 듯싶다.

 

 

2016. 9. 30. 낮달

 

* 이틀만에 다시 산에 올랐더니 곳곳에 쑥부쟁이와 구절초다. 때가 되면 그렇게 넉넉하게 피는 것을 공연히 오두방정을 떤 것이다. 산에 올라서 내 조바심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나의 산’이라며 건방을 떨었지만, 다리 관절이 시원찮아 병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나는 북봉산과 멀어졌다. 그 지맥인 야산이야 가끔 타지만, 북봉정에서 내려다보는 풍경 따위는 이제 옛말이 되었다. 불과 몇 해 만에 나는 내 신체적 능력이 퇴행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2020.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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