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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의론(新正義論)’, 2010년 대한민국

by 낮달2018 2020.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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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트라마시쿠스의 재림?

2010년 세밑에 ‘정의’가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 정의가 ‘강자의 이익’이라고 주장한 것은 아테네의 소피스트 트라시마쿠스(Thrasymachus)다. 그런데 트라시마쿠스의 이 정의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바야흐로 재현된 것이다.

 

트라시마쿠스는 당연히 ‘힘은 정의롭다’고 믿었다. 그에 따르면 ‘법률은 지배자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지는 것’으로 ‘정의로운 것이 무엇인가를 규정하는 것’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그것은 모든 국가에서 관철된다. 그래서 트라시마쿠스는 ‘정의로운 것은 어디서나 비슷한 것, 즉 더 강한 편의 이익이라는 결론은 매우 건전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다.

 

지난 12월 8일, 집권 여당 한나라당은 2011년 예산안과 4대강 관련 법안, UAE 파병동의안 등을 이른바 ‘강행처리’했다. 질서유지권 발동, 회의장 변경, 무더기 직권상정을 통한 절차는 예년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너무 서둘렀던 것인가. 이 예산안은 서민복지 관련 예산과 불교 관련 예산 등을 뭉텅이로 잘라먹는 등의 치명적 실수를 저지르면서 강력한 후폭풍을 불러왔다.

 

‘국민에 대한 폭거’, ‘원천무효’라는 야당과 시민사회의 비판에 대해 한나라당 원내 지도부의 대응은 매우 ‘쿨(cool)’했다. 들끓는 여론에 대해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난 이것을 정의라고 생각한다. 국민을 위해 또 우리 사회를 위해 정의로운 일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일갈한 것이다.

 

‘날치기’, ‘국민’과 ‘정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선 정의를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로 풀이하고 있다. ‘진리’나 ‘도리’는 추상적 관념으로 눈으로 확인할 수 없으니 답답하다. 정의는 흔히 ‘진선미’ 가운데 ‘선(善)’으로 풀이되기도 한다. ‘선’도 갑갑하긴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것을 ‘공공선’이나 ‘공동선’으로 확장해 보면 그 추상성은 떨어질 수 있겠다.

 

김 원내대표가 기댄 게 바로 이 ‘공동선’이다. 그가 언급한 ‘국민’과 ‘사회’는 곧 그 ‘공공’과 ‘공동’의 실체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번지수가 좀 다르다. 그가 불러낸 ‘국민’의 ‘범주’가 좀 애매해진다는 말이다. 이른바 서민 예산이 왕창 빠지고, 불교 관련 예산도 삭감되었다. 김 원내대표가 말한 ‘국민’은 최소한 ‘서민’은 아닌 모양이다.

 

그런데 ‘국민’ 가운데 서민을 빼고 나면 남는 건 ‘부자’밖에 없다. 그의 정의는 뒤집어보면 ‘부자’를 위한 정의인가, 좀 헷갈린다. 결국 그가 말한 ‘정의’가 강자의 이익이란 건 확실해 보인다. 299석인 국회 의석 가운데 과반수를 점유하고 있는 한나라당은 절대 강자, 살아 있는 권력, 집권 정당이니 말이다.

▲ 서울시의 &lsquo;전면 무상급식 반대&rsquo; 광고. ⓒ <한겨레> PDF

오세훈, ‘신정의론’의 완성?

 

김무성 원내대표가 재정의한 ‘정의’는 같은 한나라당 소속의 오세훈 서울시장에 의해 완성된다. 지난 6·2 지방선거 결과 서울시 의회를 야당에게 내 주고 난 오 시장의 처지가 좀 난감하게 된 것은 사실이다. 서울시 교육감도 진보 쪽에서 차지한 이래 ‘무상급식’을 두고 그는 야당뿐 아니라 시민사회단체와도 힘을 겨루는 상태다.

 

오 시장의 뚝심은 놀랍다. 그는 여전히 ‘무상급식’이 포퓰리즘이며, 서울이 무상급식 공세에 무너지면 대한민국이 무너진다는 투철한 신념을 견지하고 있다. 그가 의회 출석까지 거부하며 지키고자 하는 예산 700억 원은 서울시 전체 예산의 0.3%에 불과하다.

 

나는 그가 버티기로 일관하는 게 세간에서 말하는 것처럼 정치적 이유 때문인 줄 알았다. 그러나 <오마이뉴스> 기사를 읽고 그가 지키고자 한 게 ‘정의’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현실과 자꾸 타협하게 되면 원칙이 무너진다. 저는 무상급식을 명백한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정의했다. 제 주장이 옳다고 확신한다. 그게 정의롭다고 생각한다.”

 

무상급식에 대한 그의 두드러기 반응은 전면 무상급식을 ‘부자급식’으로 개명하기에 이른다. 전면적 무상급식을 시행할 때 아이들 가운데 그가 말하는 ‘부자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 그는 부자의 비율이 반수를 넘는다고 여기는 걸까.

 

그러나 상식의 눈으로 바라보면 늘 부자는 소수고, 서민이 다수다. 그는 소수 부자들에게 돌아갈 ‘공짜밥’이 아까워서 다수에게 돌아가는 밥을 폄하하고 그것을 흘겨보는 것 같다. 그는 ‘보편’의 개념을 곡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의 소속 정당인 한나라당이 ‘감세’로 지켜온 것이 ‘부자의 이익’일진대 설마, 그가 부자들을 혐오하는 것을 아닐 터이다.

 

정의, ‘강자의 이익’ 아닌 ‘시급히 실현되어야 할 선(善)’

 

그의 이론에 따르면 무상급식이나 무상교육, 무상의료가 제도화된 선진국들은 ‘정의롭지 못하다’. 왜냐하면 소수 부자들에게도 주어지는 보편적 복지는 정의가 아니므로. 그의 눈물겨운 ‘정의론’은 그러나 김무성 원내대표의 정의론에 비기면 훨씬 비장해 보인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정의론은 시정의 웃음거리로 전락할 가능성이 커 보이기 때문이다.

 

한때 그의 참모를 역임한 한 경제전문가는 그에게 EBS <지식채널e> ‘공짜밥’ 편을 꼭 보라고 충고했다. ‘저소득층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무상급식 지원을 받기 위해 얼마나 큰 마음의 상처를 입는지 생생히’ 보여주는 짧은 영상은 ‘정의’가 한갓진 추상적 관념이 아니라 우리 삶에서 실현되어야 할 선(善)임을 웅변으로 증명해 준다.

 

“공짜로 먹는데 많이 먹을 땐 다른 아이들에게 미안해요.”

 

거기 나온 한 어린이의 고백은 우리가 얼마나 ‘잔인한 어른’일 수 있는지를 스스로 깨우치게 만든다. 한나라당의 원내대표와 서울시장이 최근 개진한 ‘정의론’은 ‘국민’ 없는 정의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그런 정의란 ‘강자의 이익’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분명하게 확인해 주고 있다.

 

 

2010. 12. 24.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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