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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애동지’에 ‘희망’을 생각한다

by 낮달2018 2020.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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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이른 동지에 생각하는 희망

▲ 요즘 동지에 팥죽을 끓여 먹는 집이 얼마나 될까. 시간의 중력은 세시 의례도 삼켜버렸다.

다시 11월 초순의 동지, ‘애동지’에 5년 전 애동지 생각

 

내일이 동지다. 음력으로 11월 초닷새니, 이번 동지는 애(애기)동지다. (동지가 음력 11월 초순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하순에 들면 ‘노동지’라 한다.) 5년 전인 2012년 동지는 12월 21일, 역시 애동지였다. 그날 지역에는 드물게 10cm가 넘는 눈이 내렸다.

 

해마다 빼먹지 않고 팥죽을 끓였던 아내는 아침에야 그날이 동지란 걸 깨달았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 전전날(12.19.) 치른 대선의 결과에 까무룩 잦아들어 버린 결과였다. 18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는 3.6% 차이로 박근혜 후보에게 패배했다.

 

그날, 블로그에 올린 글 ‘동지, 폭설과 팥죽’에서 나는 다음과 같이 썼다.

 

“폭설이 내린 동지는 축복일까 아닐까. 대선이 끝나자마자 각종 공산품과 공공요금 인상 소식이 꼬리를 문다. 오늘 뉴스는 우리나라 빈곤율이 16.5%로 여섯 명 가운데 1명꼴로 연간 소득이 998만 원 미만이라고 한다. 특히 1인 가구와 65세 이상 노인 연령층의 빈곤율은 50%, 절반이 빈곤층인 셈이라고 한다.

대선 기간 내내 난무했던 행복, 민생, 복지 따위의 달콤한 낱말들과 사람들의 고단하고 팍팍한 삶 사이에 벌어진 틈새가 유난히 깊고 멀어 보이는 세밑이다.”

 

그것은 선거의 결과로 받은 좌절과 열패감을 나름의 방법으로 다스린 것이었다. 분노하는 대신, 분노를 마음속에 똬리 틀게 하는 대신 나는 의연함을 가장했고, 이어질 새 정부의 치세가 그런 현실을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는 걸 예단하고 있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그 예측은 빗나가지 않았다.

▲ 대선 결과는 정치가 우리 삶을 규정할 수 있음을 실감한 세월이었다.
▲ 내 탁상달력의 올 12월 20일은 임시 공휴일. 글자 아래에 ‘19대 대통령선거(?)’라고 적혀 있다.

내 책상 위, 뉴스타파 달력의 12월 20일 글자 밑에는 ‘제19대 대통령선거(?)’라고 적혀 있다. 그나마 지난해 촛불 정국이 이어질 때 19대 대선이 앞당겨질 수 있다는 걸 물음표로 표시해 놓은 것이고, 일찌감치 제작한 대부분의 올 달력은 모두 20일이 임시 공휴일로 표시되어 있다.

 

정치가 삶을 규정한다는 걸 일러준 시간

 

알다시피 지난 5월 장미 대선으로 치러진 선거에서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었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 7개월째, 국민은 촛불이 외쳐댄 ‘이게 나라냐?’에 대한 답을 현실로 보고 들으며 확인하고 있다. 지금까지 대통령이 누리고 있는 높은 지지는 바로 문재인 정부의 시정에 대한 주권자들의 만족도다.

 

문재인 정부 반년은 지난 9년간의 보수 정부에서 무시되고 폄훼된 주권자의 자존심이 회복되는 시기였다고 해도 좋다. 한번은 온 국민을 부자로 만들어 준다는 데 혹해서, 또 한번은 옛 독재자의 영광을 반추하며 뽑았던 권력은 주권자의 기대와는 무관하게 나라를 망가뜨려 버렸다.

 

말끝마다 ‘원칙’과 ‘정상화’를 이야기했지만, 그 말의 성찬 뒤는 허무하다 못해 황당하기만 했다. 70년대 건설사 사장 출신의 기업인은 21세기와는 무관한 70년대식 토건 패러다임을 넘지 못한 채 삽질만 하다 나라 살림과 국토를 거덜냈다.

 

70년대 독재자의 딸로 권력을 이어받은 ‘선거의 여왕’은 구중궁궐 청와대에서 은둔하며 유유자적의 삶을 살면서 오랜 비선에 권력을 위임하고 있었다. 아비의 영광을 재현해 주기만을 바랐던 충용한 신민들의 기대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역사와 국정을 농단하다 끝내 스스로가 판 덫에 걸려 호랑이 위에서 굴러떨어졌다.

▲  일반의 상상을 뛰어넘는 국정 농단은 결국 촛불혁명을 불렀다 . 2016년 11월 25일 대구시 중심가 .

일반의 상상을 뛰어넘는 국정농단이 촛불혁명을 불렀다. 9년째 이어지던 선정을 가장한 실정과 폭정은 무너졌다. 농단의 두 주역을 일러 ‘열사’라 기꺼이 청하는 반어가 나온 배경이다. 전임 정부가 헝클어 놓은 판을 바로잡느라 새 정부는 시방 진땀을 흘리고 있다.

 

아내는 이번 동지는 팥죽을 생략하자고 했다. 나이 들면서 시절 맞추어 음식을 만드는 것도 성가신 모양이다. 정 무엇하면 한 그릇 사 줄게요. 그려, 그래도 좋고. 하고 심상하게 받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5년 전에는 선거 결과에 낙담하여 절기조차 잊었었다. 그러나 올 동지를 좀 여유롭게 맞을 수 있는 것은 어쨌든 정권 교체 덕분이라는 걸 부인할 수 없다. 해마다 나빠지기만 하던 시간을 멈추고, 새해에는 희망을, 그 안부를 생각하기로 한다.

 

 

2017. 12. 21.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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