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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사 마케팅 시대-김황식 생가 복원 해프닝

by 낮달2018 2020.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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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황식 전 총리 생가는 복원할 만한가

▲  전남 신안군 하의도 후광리에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 생가 .  김 씨 종친회에서 복원하였다 .

무엇보다도 감동, 감읍(感泣)하기 잘 하는 사람들이다. 성취는 누구의 것이든 가리지 않고 함께 집단적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즐긴다. 그것은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시샘의 정서와는 같으면서도 다른 무엇이다. 일단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의 문제라고 여기면 놀라운 동질성을 발휘하려는.

 

유난히 혈연이나 지연, 학연 같은 공동사회에 대한 집착이나 선호도 비슷한 정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요즘 시골에서도 흔히 목격하는 현수막에서도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때는 명문대 입학이나 사시나 고시 등의 합격자에만 국한되던 ‘축하’가 요즘은 학위, 훈장, 승진 따위로 범위를 넓혔다.

 

생가 복원도 추세?

 

아들이 박사 학위를 받은 부녀회장, 이사관으로 승진한 아들을 둔 시골 촌로, 경찰간부후보로 아들을 합격시킨 동네 이장까지 함께 축하하고 그 우정을 돈독히 나눌 소재는 쌔고 쌨다. 예술원 회원이 된 화가 친구를 기리는 시골 사람의 현수막은 눈물겹기도 했다.

 

이 현수막들은 특히 영광의 주인공을 낳은 부친을 명기한다. 그리하여 “몸을 세워 도(道)를 행하여 이름을 후세에 베풀어 그로써 부모를 현저(顯著)케 함이 효도의 마침”이라는 <소학(小學)>의 가르침을 실행하는 것이다.

 

“이 사람들, 좀 모자라는 사람 아니우?”
“설마. ……그런데 참 어질고도 착한 백성들이야.”

 

김황식 전 국무총리의 생가를 복원을 둘러싼 촌극을 보면서 가족과 나눈 대화다. 김 씨의 생가가 있는 전남 장성군에서 2억 원의 예산을 들여 그 생가를 복원해 ‘청렴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인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김 씨와 ‘청렴’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알 수가 없다.

 

대통령의 생가를 복원하고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건 거의 관례가 된 지 오래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황해도 출신이라 생가를 복원하는 게 불가능했던 이승만을 제외하면 박정희부터 이명박까지 거의 대부분 전직 대통령은 모두 생가를 복원해 놓았다. 왕조시대로 말하자면 ‘나라님’, 임금에 비길 최고 권력자를 낳은 땅이 어떤지 이들 생가에는 숭배자들은 물론 호사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모양이다.

 

과문해서인지는 몰라도 김황식 전 총리는 이른바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른 것 빼고는 우리 기억에 남은 인물이 아니다. 그는 국민으로부터 존경을 한 몸에 받은 적도, ‘청렴’과 이어지는 관리로서의 모범을 보여주었다는 얘길 듣지 못했다.

 

오히려 그는 내년 지방선거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면서 정치인의 포스를 취하려고 그랬는지 몰라도 ‘국회 해산’ 운운하는 발언을 함으로써 의회 민주주의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능멸한다는 평가를 받은 사람일 뿐이다. 여론이 들끓자, 본인도 반대 의사를 밝힘으로써 생가 복원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사회의 여러 부문에서 공적을 남기거나 조명을 받은 이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응이 한결 적극적으로 바뀐 것은 지방자치 시대가 한몫했다. 지자체와 콩꼬투리만 한 인연만 있어도 지역의 문화 관광과 엮어서 이를 자원으로 만들려는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다.

 

고전소설 주인공의 출신 지역을 두고 다투거나 만화의 주인공을 두고 비슷한 지자체 간 갈등이 일어나는 것은 전적으로 같은 이유에서다. 어지간한 시인이나 작가, 예술가는 이제 자신의 출신지에서 각종 기념관의 주인공으로 부활하고 있다. 정작 그의 예술을 지자체가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가 궁금하지만 그런 형식으로나마 예술의 지위가 환기되는 것은 나쁘지 않은 듯하다.

 

유명인사 마케팅의 시대?

 

유명인사들을 마케팅 대상으로 삼는 관습은 2000년대 들면서 물을 만났다. 2002년의 한일 월드컵이 그 정점에 있다. 사상 처음으로 8강까지 오른 이 기적의 월드컵에서 단연 최고의 스타는 네덜란드 출신의 대표팀 감독 거스 히딩크였고, 포르투갈을 상대로 데뷔골을 넣은 박지성이었다.

▲ 수원에 조성된 왕복 6차선 도로인 ‘박지성길’. 옆엔 지성공원도 있다.

한국 축구사에 신기원을 이룩한 이 월드컵의 쾌거는 히딩크와 선수들에 대한 무한 찬가로 이어졌다. 곳곳에서 히딩크의 이름을 딴 각종 기념사업에 대한 계획과 복안이 줄을 이었다. 대구에서 히딩크 공원을 만들겠다고 했고 광주에서는 거리에다 히딩크의 이름을 붙였다.

 

“히딩크의 공로야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너무 요란을 떠는 건 아닌가.”

 

흔히들 ‘냄비’라 이름 붙인 여론의 쏠림이 어쩐지 지나친 듯해서 공연히 어깃장을 놓았던 기억도 아련하다. 그러나 10년이 흐르고 난 지금 확인해 보니 대구의 공원 계획은 백지화되었고, 2009년에 공사를 시작한 2014 아시아경기 주 경기장 신축 현장의 ‘인천 히딩크 축구센터(IHSC)’는 완공 소식이 보이지 않는다.

 

22살에 월드컵 데뷔골을 넣으며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던 박지성도 무한 기림을 받았다. 2005년도에 그의 출신지인 수원에 왕복 6차선의 도로 ‘박지성 길’이 뚫렸다. 도로 옆엔 지성공원이 조성되고 수원월드컵경기장엔 박지성 기념관도 열었다. 약관 20대의 운동선수로는 그야말로 분에 넘치는 대우다.

 

스포츠 선수가 전 국민으로부터 기림을 받아 그 이름을 붙인 시설이 생긴 건 양궁의 김진호 선수가 처음인 듯하다. 경북 예천 출신의 김진호는 1979년과 1983년 각각 세계양궁선수권대회에서 5관왕에 올라 이른바 ‘신궁(神弓)’의 원조로 불린 이다. 1995년 예천군은 그녀의 이름을 딴 ‘예천진호국제양궁장’을 조성한 것이다.

▲ 세계양궁선수권대회에서 두 번이나 5관왕을 한 김진호를 기려 조성한 예천진호국제양궁장.
▲  유엔 사무총장이 된 반기문을 기려 음성군에 조성된 UN 반기문 기념광장.

노무현 정부 때 외교통상부 장관이었던 반기문은 2007년부터 유엔 사무총장으로 일하게 되면서 일약 전 국민의 기림을 받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가 나고 자란 충북 음성군은 진작은 ‘반기문 군’(?)이 되어 버렸다. 음성에는 그의 이름을 딴 공원, 광장, 기념관, 길, 행사 등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음성에는 이미 ‘반기문 비채길’, ‘반기문로’ 등이 만들어졌으며, 반기문 마라톤, 반기문 백일장 대회가 해마다 열리고 있다. 음성군은 2016년까지 군비와 민자 등 650여억 원을 들여 유엔 교육문화관, 유엔 평화 동산, 평화의 숲, 명상마을, 외국인 마을, 학교 등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하니 ‘반기문군’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겠다.

 

민족의 지도자, 겨레의 스승은 어디에

 

공적이 뛰어나거나 타고난 능력으로 국위를 선양한 유명인사들을 기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긴 하다. 그러나 ‘과유불급’, 그것이 지나쳐 오히려 해당 인사에게 부담이 되거나 지나치게 방만하게 사업을 벌여놓아서 지자체 재정에 부담을 주거나 국민의 귀중한 세금을 낭비하게 되어서는 곤란하다.

 

‘인물’을 규정하는 잣대도 시대에 따라 서로 다를 수 있다. 단지 특정한 지위에 올랐다고 해서 그가 전 국민의 사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공화제의 역사가 짧은 우리와 달리 이미 44대째를 잇고 있는 미국의 경우에 수십 명의 대통령을 냈지만, 시간을 뛰어넘어 사람들의 기림을 받는 이가 한정된 게 그 좋은 보기다.

 

권력과 영광 너머,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남는 민족의 지도자, 겨레의 스승을 우리는 얼마나 두고 있는가. 전직 총리 생가 복원 해프닝을 씁쓸하게 지켜보면서 우리 역사의 길목에서 민족의 혼을 일깨우고 가장 낮은 자리에서 그 문지기를 자처했던 지사들을 생각해 본다.

 

 

2013. 12. 20.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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