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사망 증가율’ 2300%의 ‘진실과 거짓’

by 낮달2018 2020. 12. 24.
728x90

<서울경제> ‘코로나 사망 증가율 2300%’ 기사에 부쳐

▲ 지난 21일 자 <서울경제> 기사. 다음에서 갈무리.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얘기다. 이른바 이 나라 보수·수구 언론이 어떤 방식으로 정부를 공격하고 폄훼하는지 말이다.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정파적 이해가 ‘팩트’를 압도하고, 흠집을 내기 위해서 사실도 비트는 방식이 교묘하면서도 야비하기 이를 데 없다.

 

포털 ‘다음’에 올라오는 기사는 제목만 보면 그게 어떤 매체에서 썼는지가 대충 짚어진다. ‘조중동’에다 그만그만한 언론들 죄다 비슷한 스탠스를 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오죽하면 기자들 사이에서도 “이 나라 망하라, 얼른 망하라”고 주문을 외는 것 같다고 하겠는가.

 

정부 공격거리가 많아질수록 바빠지는 이들 보수(사실은 ‘수구’라 써도 무방한) 언론 중에 ‘제일’은 경제지들이다. 이른바 ‘자본’의 편에 서서 그들의 나팔수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 이들 매체에 ‘민생’이란 개념이나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정부나 그 정책을 공격하려고 팩트조차 만들어내는 수준을 이번에도 유감없이 발휘했다.

 

<서울경제>가 지난 21일 내보낸 “최근 한달 코로나 확진자 증가율, 美·브라질보다 높아…‘K방역의 치욕’”이라는 기사가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이 신문은 ‘최근 한 달여간 주요 국가별 코로나19 관련 지표 증감률’ 도표를 제시하면서 11월 13일과 12월 21일을 특정해 한국에선 사망자가 2300%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반면 미국은 49%, 브라질 309%, 프랑스 -41%, 영국 -10%, 일본 350% 증가했다며 “한국은 세계 최악 수준으로 전락했다”고 보도한 것이다.

 

2300%의 근거 : 사망이 1명에서 24명으로 증가

▲ 여준성 보건복지부 장관 정책보좌관이 페이스북에 게시한 도표. 아래 <서울경제>의 도표를 바로잡은 것이다.

이 매체는 실제 신규 사망자 수를 두고 한국은 11월 13일 사망자가 1명이고 12월 21일은 24명이니 이를 사망 증가율이 2300% 폭증했다고 분석했다. 같은 날 미국은 11월 13일 사망자가 1839명, 12월 21일은 2747명이니 사망 증가율이 49% 증가한 거라고 비교 분석했다. 가히 수치의 마술이다.

 

굳이 11월 13일과 12월 21일의 통계를 인용한 데 이유 따위는 없다. 사망자가 가장 많은 날과 가장 적은 날을 비교해서 사망 증가율 2300%를 뽑아내려니 그날이 소환된 게다. 통계도 통계지만, 그 의도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보수가 좀 더 뻔뻔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2300%든, ‘K방역의 치욕’이든 이 매체가 노리는 것은 정부 정책과 현실에 대한 공격이고, 폄훼라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성공한 방역으로 ‘K방역’이라는 이름까지 얻은 자국의 방역 성과를 어떤 방식으로든 깎아내리고 헐뜯고 싶은데 두 날짜의 통계가 아주 맞춤한 먹잇감이 된 것이다.

 

언론이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히 권리고 의무다. 공정하고 불편부당한 비판이라면 아무도 거기 시비를 걸 수 없다. 최근 3차 확산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해 확진자와 사망자가 증가하는 것은 그것대로 비판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선방해 온 방역 전반을 훼손하려고 낸 꾀가 고작 그야말로 ‘택도 없는’ 엉터리 통계다. 그것으로 독자의 눈을 속이고자 했다면 거기 어떤 변명도 있을 수 없는 건 그래서다.

▲ 문제의 2300%도표는 슬그머니 위 도표로 바뀌었다.

여론의 질타에 머쓱했는지, <서울경제>는 ‘2300% 도표’를 ‘주요 국가별 10만 명당 확진자 수 증가율’ 그래프로 바꾸었다. 그러나 기사 보조자료인 도표가 왜 바뀌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고. 하기야 그 속내를 드러내기에는 아직 부끄러움이 남은 것인지도 모른다.

 

기사를 쓴 기자는 앳된 얼굴의 젊은이다. 그가 그런 기사를 쓰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설마 언론인의 사명감은 아닐 터이고, 회사의 ‘드러나지 않은’ 이해나 데스크의 정파적 이해였을까, 아니면 그 자신의 정치적 신념이었을까. 우리는 그간 이런 보수 매체들이 벌인 비슷한 사례를 통해 그 속내를 씁쓸하게 추정해 볼 수밖에 없다.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최근 페이스북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둘러싼 가짜뉴스가 많다며 뒷날 “큰 후회와 절망이 될 것”이라고 말하면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이 글은 <서울경제>의 해당 기자에게도 쓸모 있는 충고가 될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의도적인 곡해와 과장, 거짓말들이 정돈된 ‘기사’를 볼 때마다, 바이라인에 달려 있는 그 이름들에게 전화를 걸고 싶어진다. 전화를 걸어서 따져 묻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의 이름이 박제되어 달려 있는 글들과 글 사이의 행간까지도, 십 년 후, 이십 년 후, 자신에게 얼마나 큰 후회와 절망이 될지 ‘나’를 통해 보라고 가만히 일러주고 싶다.”

 

 

2020. 12. 24. 낮달

 


▲ 문제의 기사. <미디어오늘>에서 재인용

한국신문윤리위원회(신문윤리위) 지난 1월 13일, 이 기사와 제목에 대해 ‘주의’ 조처했다. 코로나 확진자·사망자 현황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은 채 증가율 통계를 비교해 부정확한 정보로 독자들에게 지나친 불안감을 제공했다는 이유다. [관련 기사 : 김태년이 비판한 ‘K방역 치욕’ 기사, 신문윤리위 ‘주의’]

 

신문윤리위는 “각국의 코로나 실태를 직접 보여주는 데이터는 오히려 미국과 브라질이 매우 심각한 상황임을 나타내고 있다”며 “12월 21일 한국의 신규 확진자는 926명으로 미국과 비교하면 0.2%, 브라질의 1.7%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또 “10만 명당 확진자도 미국의 1.8%, 브라질의 2.9% 수준”이라며 “해당 기사는 이런 현실을 감안하지 않고 11월 13일과 12월 21일 상황을 단순 비교해 한국의 코로나 방역 실태를 세계 최악의 수준이라고 단정적으로 보도했다”고 보았다.

 

이러한 황당무계한 기사에 독자들이 분개하거나 허탈해 하는 상황은 언제쯤이나 끝이 날까. 분명한 것은 '정론 직필'이 아니라, 정파성에 기운 채 저격할 거리나 찾는 게 그들 지면의 정체성인 한, 문제는 해결은 요원하다는 것이다.

 

2021. 2. 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