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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표기-‘무릎팍 도사’에서 ‘장미빛 연인들’까지

by 낮달2018 2020.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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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표기의 ‘비표준어’들

▲ MBC 주말 드라마 ‘장미빛 연인들’에서 ‘장미’는 꽃이 아니라 여주인공의 이름이라고 한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제목에 쓰이는 한글이 좀 ‘거시기’한 경우가 있다. 한글로 된 제목인데, 뭔가 찜찜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그런 이름 말이다. 최근 <문화방송(MBC)>으로 방영되고 있는 주말 드라마 ‘장미빛 연인들’이 그런 경우다.

 

‘장밋빛 인생’과 ‘장미빛 연인들’

 

▲ KBS 드라마 ‘장밋빛 인생’(2005)

나는 물론 이 드라마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이 드라마를 알게 된 것은 예고방송과 포털에 도배된 연예 기사의 표제를 통해서다. ‘장미빛 연인’은 또 뭔고, 하고 넘어가다가 문득 그게 맞춤법에 어긋난 표기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장밋빛’으로 써야 하는데 왜 ‘장미빛’이지? 나는 머리를 갸웃했다. 방송사에 교열부서가 없을 턱이 없는데 온 나라에 전파를 내보내면서 프로그램 제목을 잘못 쓸 리가 없지 않은가. 나는 얼핏 고인이 된 탤런트 최진실이 열연했던 <한국방송(KBS)>의 드라마 ‘장밋빛 인생’을 떠올렸다. 프랑스의 샹송 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같은 제목의 노래(LA VIE EN ROSE)를 떠올린 건 덤이었다.

 

내 짐작이 맞았다. 나는 인터넷 검색으로 이 드라마의 제목이 우리가 흔히 쓰는 ‘장밋빛’이 아니라는 걸 확인했다. ‘장밋빛’은 이미 “① 장미 꽃잎의 빛깔과 같은 짙은 빨간빛. ② 낙관적이거나 희망적인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표준국어대사전)로 사전에 올라 있는 합성어다.

 

우리말과 한자어가 만나 합성어를 이룰 때 뒷말의 첫소리가 된소리로 날 때는 ‘사이시옷’을 붙이게 되어 있다. 이른바 ‘사잇소리 현상’이다. [관련 글 : ‘뒷풀이’가 아니라 ‘뒤풀이’다] ‘장미’와 ‘빛’을 합치면 [장미삗/장믿삗]으로 발음되기 때문에 사이시옷을 붙여 ‘장밋빛’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1975년, 윤항기가 발표한 대중가요의 제목 표기도 지금껏 ‘장미빛 스카프’다. 제대로 쓴 건 드라마 ‘장밋빛 인생’뿐이다

▲ 이브 몽탕과 에디트 피아프(1946). 피아프는 6살 연하의 후배 몽땅을 사랑했다 .

드라마 ‘장미빛 연인들’에서 ‘장미’는 꽃이 아니라 여주인공의 이름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의도적인 표기라는 얘기다. 그런 뜻으로 쓴 거라면 합성어가 아니므로 표기는 ‘장미 빛’으로 쓰는 게 맞다. 그런데 이 드라마의 공식 사이트에는 ‘장미빛 연인들’이라고 적혀 있다. 하긴 띄어쓰기까지 기대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겠다. 굳이 ‘착한 남자’를 ‘차칸 남자’로 쓰고 싶어 했던 드라마도 있었으니 이 정도면 양반이다.[관련 글 : ‘차칸남자’와 ‘고아떤 뺑덕어멈’ 사이]

 

‘무르팍’과 ‘무릎팍’

 

내가 알기로 비슷한 형식으로 맞춤법을 피해 간 프로그램이 하나 더 있다. 그건 꽤 오랫동안 <문화방송(MBC)>의 간판 예능 프로그램 노릇을 했던 강호동의 ‘무릎팍 도사’다. 이 프로그램의 제목에 쓰인 ‘무릎팍’은 정확히 쓰면 ‘무르팍’이다. ‘무릎’의 속되게 이르는 말인데, 줄이면 ‘물팍’이라고 한다.

▲ 예능 프로그램 ‘무릎팍 도사’에선 반드시 ‘팍’과 ‘무릎’을 구분해 쓰고 있다 .  ⓒ  MBC

‘장미 빛’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제목도 교열을 거쳤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오기(誤記)도 일종의 의도적 표기일 것이라는 말이다. 이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을 때다. 수업 중에 그게 화제가 되어 아이들에게 물었다.

 

“이거, 잘못 쓴 거거든. 알고 있니?”
“몰랐는데요.”
“‘무르팍’이라 써야 맞다. 몰라서 그런 건 아닐 텐데 왜 이렇게 썼을까?”
“무릎을 ‘팍’ 친다고 그렇게 쓴 거 아닐까요?”
“글쎄……, 그것도 그럴듯하구나.”

 

‘무릎팍 도사’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해 본 결과 아이의 짐작이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이 든다. 프로그램 제목 표기는 하나같이 ‘무릎’과 ‘팍’을 달리 표기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팍’을 더 강조하는 형식으로 써 놓았는데, 아이의 짐작처럼 그건 ‘무릎을 치는 소리’ 정도로 해석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드라마, 또는 예능 프로그램의 제목을 가지고 공연히 시비를 걸 일은 물론 없다. 그게 그런 뜻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남는 문제는 저간의 사정을 모르는 일반 시청자들이 그 같은 표기를 의심 없이 바른 걸로 받아들이는 데에 있다. 그렇게 될 때 이 오도된 우리말 표기의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2014. 12. 16.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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