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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교단(1984~2016)에서

학교는 아이들의 이름을 새겨야 하는 곳 - 기념식수론

by 낮달2018 2020.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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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기념 식수’

▲  운동장 가 기념식수 표지석. 만학도들이 졸업을 기념하며 나무를 심었다.

지난 11월에 국회의사당 본청 앞에 심겨 있던 ‘국회 기념식수 1호’가 뽑혔다. <시사저널>이 지난 6월 보도한 ‘가짜 기념식수 1호’라는 특종 기사의 결과다. 저간의 사정은 이랬다. 1982년 당시 한미수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미국의 부시 부통령이 방한했다. 부시는 국회의사당을 방문해 본회의장에서 연설하고 국회 경내에 기념식수를 했다.

 

국회의사당의 ‘가짜 기념식수’ 소동

 

의사당 현관 앞 잔디밭에 심은 나무는 3.5m의 100년생 주목이었다. 그러나 <시사저널>의 한 기자가 지난 5월 확인한 결과 심어진 나무는 주목이 아니라 일본산 ‘화백나무’였다. 사실 확인 과정에서 국회 사무처는 원래 심은 나무가 ‘화백나무’였다고 강변했는데 이는 거짓말이었다.

 

나무가 1년여 만에 죽자, 다시 주목을 심었는데 이 역시 얼마 살지 못했다. 그래서 국회 사무처는 경내에 식재되어 있던 화백나무를 대신 심었다는 것이다. 보도 후 5개월 만에 국회에서는 원래의 나무였던 주목으로 이 기념식수를 교체했다. 이게 ‘가짜 기념식수’의 경위다.

 

기념식수라는 형태의 의전이 언제부터 시행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곳곳에 이 기념식수가 있다. 특정한 날에 특정한 장소를 방문하고 그 방문을 기념하여 나무를 심고 거기에 표지석을 남기는 이 오래된 형태의 의전은 어쩌면 권위주의 시대의 관행 같은 것이기도 했다.

 

모르긴 해도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같은 권력자들이 남긴 기념식수가 적지 않을 것이고, 총리나 장관들, 지방자치단체장 등의 인사들도 이 기념식수의 대열에 동참한다. 관리들에 이어 민간에서도 질세라 동참해 재벌 총수, 각종 기업의 경영자들도 열심히 나무를 심고 거기 제 이름을 새긴 빗돌을 세운다.

 

학교 쪽도 마찬가지다. 교육부 장관은 말한 것도 없거니와 시도 교육감을 거쳐 시군 교육장, 더러는 학교장도 그 기념 의전의 주인공으로 등극한다. 국회의 부시 기념식수 같은 경우가 아니라면 나무는 자라고 빗돌은 남아서 길이 전해질 것이다. 김광규 시인이 시 ‘묘비명’에서 노래한 것처럼 빗돌은 ‘비록 이 세상이 잿더미가 된다 해도/불의 뜨거움 굳굳이 견디며’ ‘살아남아/귀중한 사료가 될’ 수도 있으리라.

 

기념식수는 유난히 이름에 집착하는 우리 문화의 특성으로 설명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명산대천을 말할 것도 없고 어디 여백이 있는 벽만 있으면 거기 이름을 새기는 유구한 전통 말이다. 세월이 가도 이 유구한 전통은 그칠 줄 모른다.

 

기념식수 의전, 전북 교육감의 경우

 

나무를 심고 그 앞에 빗돌을 세우는 의전을 만들어낸 이들은 이름 남기길 즐기는 우리 민족의 심리를 꿰뚫어 본 것일까. 한때는 하얀 페인트칠을 한 팻말에 쓰이던 이름은 이제 돌에다 깊이 아로새겨진다. 그 이름의 주인들도 빗돌에 새겨진 자기 이름이 특정 장소에 길이 남는 것을 시나브로 즐기게 된 것일까.

 

얼마 전 지역에서 전라북도 교육청 김승환 교육감의 강연회가 있었다. 글쎄, 이른바 ‘진보 교육감’이라곤 하지만 현직 교육 관료(!)에게 들을 게 얼마나 있을까 하면서 참석했는데 어럽쇼, 이 양반 입담이 상상을 간단히 넘었다.

 

입담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그가 조곤조곤 들려주는 교육개혁의 이야기들이 만만찮았다. 그는 시국선언 교사들에 대한 징계를 미뤄 직무유기로 고발되었지만, 법원에서 무죄 선고를 받음으로써 교육부에 ‘한판승’을 거둔 이다. 현재도 그는 학교 폭력 가해 사실을 기재하라는 교과부 방침을 거부해 직무유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있다.

▲ 기숙사 준공을 기념한 교육감 기념식수. 이는 아주 익숙한 관행이었다.
▲ 여수 오동도에 있는 소박한 기념식수. 모친 팔순과 외손자 출생을 기념했다.

김승환 교육감의 얘기 가운데서도 어김없이 ‘기념식수’가 등장했다. 도내 어느 사학으로부터 초청이 왔는데 기념식수 절차도 있다고 했단다. 이에 대해 김 교육감은 ‘기념식수’를 빼지 않으면 참석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고 한다. 그는 ‘기념식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학교는 아이들의 이름을 새겨야 하는 곳이지 교육감의 이름을 새기는 곳이어서는 안 된다.”

 

교육감의 기념식수는 지금도 적지 않은 모양이다. 곽노현 전 교육감에게 ‘기념식수 하지 말라’는 교사들의 주문이 <오마이뉴스>의 기사로도 올랐을 정도이니 말이다. 개교 기념으로, 시설물의 준공이나 방문 기념으로 나무를 심고 빗돌을 세우는 게 유구한 전통이고 관행이었다.

 

새삼 학교를 둘러보았다. 개교한 지 30년이 갓 지난 학교인데 교정에 두 그루의 기념식수가 심겨 있었다. 하나는 2001년 교육감의 기숙사 준공 기념식수고 다른 하나는 교사 앞에 심은 ‘방송고등학교 졸업 기념’ 식수다. 교육감 거야 익숙한 관행이지만 방송고 졸업 기념식수는 좀 뜻밖이다.

 

이육사문학관의 지자체장 표지석

 

거기는 관행적인 기념식수와는 달리 이름이 새겨져 있지 않다. 굳이 새긴다면 졸업생들의 이름을 죄다 올려야 했을 터이니 그건 쉽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뒤늦게 방송고에서 공부한 만학도들이 졸업하면서 모교의 운동장 가에 나무를 심은 것은 뜻깊은 일이 될 수도 있겠다.

 

기념식수를 알리는 빗돌은 아니지만, 더 나쁜 예도 있다. 안동의 이육사문학관 마당에는 육사의 시비가 세워져 있는데 그 주변에 경북 도지사와 안동시장의 방문 기념 표지석이 묻혀 있는 것이다. 민족시인 육사의 시비 주변에 생뚱맞게 묻힌 이들의 이름은 내겐 마치 고인에 대한 모독과 능멸처럼 느껴졌다.

 

선출직이라고 하나 그들은 지방 행정의 책임자일 뿐이다. 그들이 육사 문학관을 건립한 주체였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국민의 세금으로 이루어진 일이므로 그 자신의 공적이라고 자랑할 일은 아니다. 더군다나 거기 제 이름을 새기는 일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일이 아닌가.

▲ 금강산 암벽에 새겨진 이름. 돌에 제 이름을 새기는 것은 우리의 유구한  전통이다 .

남명 조식(曺植, 1501~1572)은 길가의 큰 바위마다 사람들이 이름을 새겨 놓은 것을 보고 개탄하면서 아래와 같이 꾸짖었다. 아무런 성찰도 없이 나라 곳곳에서 세워지는 빗돌 앞에서 평생을 처사로 살았던 이 영남 거유(巨儒)의 일갈은 오백 년 세월을 뛰어넘는 울림으로 다가온다.

 

“대장부의 이름은 하늘의 밝은 해처럼 떳떳해야 한다. 훌륭하게 일생을 살았으면 여러 사람의 입으로 전해질 것인데, 쩨쩨하게 날다람쥐나 살쾡이가 사는 수풀 속 바위에 이름을 새기는 것은 새 그림자를 보고서 후세 사람들이 무슨 새인지 알기를 바라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짓이다.”
    - 남명 조식의 “유두류록(遊頭流錄)”에서

 

 

2012. 12. 6.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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