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어귀, ‘입동(立冬)’을 맞으며
한반도 남부인 경북에서도 사계절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곳은 대구 인근의 내륙에 지나지 않는 듯하다. 경주를 포함한 동해안 지역이나 안동 주변의 북부지역에서 봄이나 가을을 넉넉하게 느끼기는 쉽지 않다. 그 경주에서 4년을 살았고, 여기 안동에서 산 지 어느새 10년째다. 익숙해질 때도 되었건만, 환절기만 되면 아쉬움이 많다.
봄소식이 더디어서 봄이 오는가 싶으면 금세 여름이기 십상인 것처럼 가을도 짧기는 마찬가지다. 올해는 가을 더위가 기승을 부려 좀 선선해지는가 싶었는데 가을비가 오락가락하더니 기온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글쎄, 그게 얼마나 영향이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산기슭에 들어앉은 데다 좀은 높은 지대여서 학교 쪽의 기온도 차이가 있는 듯하고.
아직도 이 지역의 단풍은 별로다. 제대로 단풍 구경은 하지 못했는데 입동을 맞는 마음은 좀 스산하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겨울 앞에 홑저고리 바람으로 서 있는 기분인 까닭이다. 가을이 깊어 단풍이 짙어지면, 하고 별러 온 시간이 제법이다.
나는 단풍 흐드러진 봉정사에 가고 싶었다. 영산암 송암당 마루 기둥 사이로 불타는 단풍을 만나고 싶었다. 병산서원 만대루 난간에 기대서서 내리는 어둠살을 맞이하고 싶었고, 겸암정사 옆 능허대 비탈길에서 화천, 하회를 휘감고 흐르는 강물을 굽어보고 싶었었다.
그러나 봉정사엔 아직 가지 못했다. 기사를 쓴다고 만대루를 다녀오긴 했지만 시간이 일러 어둠살을 맞이하기는커녕 서둘러 병산을 떠나야 했다. 그나마 하회를 휘도는 강물을 굽어본 것은 다행이다. 안다. 결국 차일피일 겨누기만 하다가 겨울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걸.
광흥사에 산문 곁에 선 400살 먹은 은행나무 소식을 전화로 물었더니, 이제 겨우 물이 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침마다 아파트 앞길에 늘어선 은행나무 가로수 아래 낙엽이 수북이 쌓이는 걸 무심하게 지켜보면서 며칠 전에는 사진기를 들고 걸어 출근하면서 사진 몇 장을 찍었다.
이번 일요일엔 ‘2007 범국민 행동의 날’ 집회가 있다. 이 집회의 구호는 '한미 FTA 반대, 비정규직 철폐, 반전 평화'다. 이날은 민족·민중의 생존권과는 무관하게 진행되고 있는 현재의 대선 국면과 우리 사회의 모순적 현실에 대한 전체 민족·민주 세력의 존재 선언의 장이면서 이 ‘판의 절망’을 우리의 ‘희망’으로 바꾸는 시간이다.
자식들의 조기 유학으로, 골프와 쇼핑, 관광을 위해 해외를 내 집 드나들듯 하는 잘난 중산층보다 절망 속에서 분노의 담금질을 계속하고 있는 이들의 수는 여전히 많다. 극심해지는 사회적 양극화의 결과는 850만 비정규직을 낳았고, 그 수만큼의 절망과 분노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그래서 이 집회의 구호, “설움과 분노를 하나로 모아 세상을 바꾸는 희망을 만들자!”라는 단지 섣부른 구호가 아니라 이 ‘판’을 저들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으로 만들려는 뜨거운 함성이다.
몇 방울의 물이 모여 시내와 강을 이루고 그것은 마침내 바다가 된다. 홀로 가누는 ‘절망의 한숨’을 넘어 ‘저항’의 성난 물줄기를 거쳐 위대한 ‘승리’와 ‘역사’를 이루자고 조직위원회는 외친다. 가진 것 없는 민중들의 힘은 함께 겯고 가는 어깨와 불끈 쥔 주먹에 있다는 것은 고금의 역사가 온몸으로 알려주는 진실이다.
우리 지역에서는 예순 대가 넘는 버스가 서울로 향하리라고 한다. 그 예순 몇 대에 나누어 탈 성난 농심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우리가 누리는 일상의 안일과 평화는 죄스럽다. 장롱 속의 맞춤한 외투를 꺼내놓고 나는 다가올 일요일 오후를 기다리고 있다.
2007. 11. 8.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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