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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요즘 ‘축구공은 흔하다’

by 낮달2018 2023.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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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학교 운동장에 굴러다니는 축구공, 혹은 ‘풍요’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 우리 동네에 있는 중학교 운동장 가장자리에 놔둔 축구공. 비록 낡은 공이지만, 공을 잃어버릴 염려는 없다.

요즘 아침저녁에 인근 초등학교나 우리 동네의 중학교 운동장을 찾아 맨발로 걷기를 이어가고 있다. 아이들이 등교하지 않는 주말에는 볕이 따스한 한낮에 가지만, 평일에는 일과 시간을 피해 그 전후에 찾는다. 아이들이 등교하지 않거나, 아이들이 하교한 빈 학교의 운동장 가장자리를 따라 나는 10~20바퀴쯤 돈다.

 

초·중학교 운동장 여기저기의 축구공

 

한 바퀴 도는 데 평균 3분이 걸리니 마치면 30~60분이 지난다. 학교 운동장이어서 곳곳에 아이들의 흔적이 엿보이는데, 급이 달라도 두 학교에 모두 공통되는 게 축구 골대나 운동장 가장자리 화단 같은 데에 놔둔 축구공이 두어 개씩 보인다는 점이다.

 

처음엔 무심히 보아 넘겼으나, 그게 학교에서 관리하는 공이 아니라 아이들 소유의 공이라는 걸 깨우치면서 나는 머리를 주억거렸다. 아침 운동을 마치고 학교를 빠져나오다가 그물망에 든 공을 흔들면서 등교하는 아이들을 만나기도 했다. 아, 그렇다. 저건 학교 공이 아니라, 아이들이 놀다가 놔두고 간 것이로구나…….

 

조그만 시골 초등학교에서 공부한 내게 공놀이의 기억은 몇 되지 않는다. 학교에서 축구를 해본 적은 없고, 유일하게 구기로 즐긴 게 ‘송구(送球)’다. 요즘 아이들은 핸드볼(handball)이라고 해야 알아듣겠지만, 우리는 그때 모두 송구라고 했다. 테니스(tennis)도 ‘정구(庭球)’라고 하던 시절이었다.

 

축구 대신 송구를 한 것은 축구공이 없어서였을까. 어쩌면 송구공이 축구공보다 싸서였을지도 모른다. 겨울철 난방을 위한 솔방울을 주우러 전교생이 뒷산을 오르던 1960년대였으니 더 말할 게 없다. 그 당시 개인이 공을 소유한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으니, 우리가 송구 경기를 하면서 쓴 공은 당연히 학교 소유였다.

 

전설처럼 전해져 오는 ‘돼지 오줌보’로 축구공을 대신했다는 얘기도 말로만 들었을 뿐이다. 나는 축구를 해보기는커녕 구경조차도 하지 못하고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했다. 도회의 중학교로 진학해서야 나는 야구와 농구, 정구, 배드민턴 따위의 구기를 알게 되었다.

▲ 같은 학교의 운동장에 있는 또 다른 축구공. 하나는 가장자리에 또 하나는 축구 골대 네트에 걸려 있다.

초등학교 때 겪었던 구기로는 배구가 있었다. 그러나 그건 우리가 하는 게 아니라, 선생님들이 학부모들과 어울려 벌인 경기를 구경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경기 규칙도 모르면서 어른들이 벌이는 경기를 신기하게 지켜보기만 했다. 나는 선생님들보다는 4학년 때 우리를 가르친 선생님의 사모님이 선수로 뛰는 광경을 경이로 지켜보았었다.

 

체육 시간에 견학만 한 고교 시절

 

그분은 피부가 유난히 흰 미인이었는데, 가끔 자기 쪽으로 오는 공을 ‘마이 볼’이라고 외치며 받는 모습을 나는 매우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이는 도시와 농촌에서의 우리 삶과는 멀리 떨어진 중산층 삶의 모습을 내게 처음으로 보여준 이가 아니었나 싶다.

 

나는 송구를 얼마간 즐긴 초등학교 때 이후 중고교를 다니면서도 특별히 구기 운동을 해보지 않았다. 중학교 땐 따로 체육 시간에 구기를 한 적이 없었던 듯하고, 고교 때는 내가 가슴막염(요즘 ‘늑막염’을 이렇게 쓴다)에 걸려 늘 열외로 견학만 해서였고, 무엇보다 내가 운동을 즐기지 않았던 탓이었다.

 

그러나 주변의 동급생이나 선후배들은 짬만 나면 구기를 하면서 방과 후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들은 자기 공을 따로 갖고 있었고, 운동이 끝나면 공을 챙겨서 집으로 가져가거나, 교실의 교탁 아래나 청소 용구함에 넣어두는 등 그 보관에 상당히 공을 들였다. 운동장에서 늦도록 놀다가 교실에 들어갈 수 없으면, 학교 울타리 나무 밑에다 이를 잘 숨겨두는 아이들도 있었다.

▲ 맨발 걷기 길이 있는 초등학교 펜스 담장 앞에 있는 축구공과 배구공.

그런데 요즘 내가 찾는 중학교에는 3개의 공이 축구 골대 네트와 운동장 가장자리에, 초등학교에는 배구공까지 포함하여 5개의 공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처음엔 무심히 보아 넘겼으나, 문득 떠오른 게 공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골몰하던 아이들에 관한 기억이다.

 

운동장 아무데나 놔두어도 잃을 염려가 없다

 

그런데 아이들의 공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숨겨둔 게 아니라, 차고 놀다가 그냥 편한 장소에 놔둔 것이었다. 학교를 드나들면서 보니 공은 여기 있다가 저기로 옮겨갔을 뿐, 없어지지 않았다. 아무도 그 공에 손을 대지 않으니 굳이 기를 쓰고 숨겨두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나는 이를 단순히 요즘 아이들이 소유물 관리에 무심하다는 문제가 아니라, 이제 축구공쯤을 분실하는 게 큰 문제가 아닐뿐더러 그걸 욕심내어 훔쳐 갈 아이들도 없다는 현실로 받아들였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이 국내에 소매치기가 없다거나, 카페 등에서 지갑이나 가방, 휴대전화 따위를 놔두고 다녀도 괜찮다는 사실에 경탄한다는 얘기가 이른바 ‘국뽕’의 소재로 쓰일 만큼 많은 것도 맥락은 같다고 봐야 한다.

 

소매치기나 도둑의 문제를 단순히 시시티브이의 감시망 때문으로 해석할 수 없다. 서울은 2020년 인구당 카메라 수에서 44위, 단위 면적당 카메라 수에서 11위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시시티브이의 감시망은 범죄지수와 상관성은 없는 것으로도 밝혀졌다.

 

여러 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사소한 물질적 유혹에 쉽게 넘어갈 만큼 우리네 살림살이가 궁핍하지 않다는 점에 주목한다. 물론 궁핍과 풍요를 가르는 스펙트럼이야 무척 다양하겠지만 말이다. 경제적으로 최상의 풍요는 아니지만, 그만그만한 정도의 윤리나 도덕이 위태로울 만큼은 아니라는 것이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는 선진국 반열에 들었다. 어떤 친구가 말했듯, 동네 뒷산에만 올라도 여러 가지 편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는 것도 선진국이어서라고 말할 수 있는 일이다. 나라나 지자체의 살림살이가 넉넉해지면서 그런 눈에 띄지 않는 부분까지도 거둘 수 있을 정도가 된 것이다.

▲ 같은 초등학교 운동장의 또 다른 축구공. 화당과 축구 골대, 그리고 담장 근처에 각각 놓여 있다.

최상은 아니어도 넉넉한 살림살이의 여유

 

아침에는 아이들을 볼 수 없지만, 방과 후에 가끔 학교를 찾으면 축구하는 아이들은 만날 수 있다. 아이들은 낯선 방문객인데도 안녕하세요, 아주 명랑하게 인사를 한다. 날씨가 꽤 추워졌는데도 불구하고 개중에는 반소매 셔츠 차림이 늠름한 녀석들도 있다.

 

그들이 왁자지껄하게 공을 가지고 노는 걸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나는 우리 세대가 지나온 궁핍과 빈곤의 시대를 생각한다. 이미 지나간 옛이야기가 되었지만, 우리는 가끔 그 시절의 감각으로 세상을 둘러보곤 하는 것이다. 만화 잡지 한 권을 가지고 있으면 아이들 빌려주는 순서를 정할 수 있는 권력(?)을 누릴 수 있었던 시대 말이다.

 

 

2023. 10. 27. 낮달

 


▲ 오늘 찾은 중학교 운동장, 축구 골대 뒤에 공 3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 본관 앞 국기게양대 아래, 그리고 스탠드와 계단 쪽에 아이들이 벗어놓은 축구화. 이 신발도 굳이 잃어버릴 염려가 없을 것이다.

 

이 글은 순전히 추측으로만 썼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추측이 그리 객관적이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나는 내 과거의 기억들과 현재 상황을 골고루 참고하여 학교 운동장의 축구공들이 아이들 것이지만, 그걸 굳이 갈무리하지 않아도 될 만큼, 우리네 살림살이가 여유로워진 거라고 판단했다.

 

며칠 전 초등학교에서 맨발 걷기를 하다가 공 차고 놀다가 골대를 향해 공을 차 던지고 가는 아이 하나를 붙들고 물었었다.

 

“저 공 네 거니?”

“아니요.”

“그러면?”
“학교 건데요.”

 

나는 아차 싶었다. 내 생각이 빠져 그걸 확인해 보는 과정을 빼먹은 것이다. 나는 아이들에만 집중하느라, 다른 맥락을 놓쳤다. 예전 같으면 담당 교사는 공을 잃어버릴까 염려하여 수업이 끝나면 바로 공을 회수해 체육실에 보관해야만 했다.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공을 받아 한 녀석이 책임지고, 회수하겠다고 약속하는 등 통사정하여야만 간신히 공 하나를 받을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공은 고가의 교육보조재였고, 그 관리 책임은 해당 교사에게 있었으니, 교사들로서도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들 말대로 지금 학교에 굴러다니는 공은 모두 학교 수업에 쓰는 공이다. 그런데, 그걸 운동장에 굴러다니게 두어도 아무 일이 없다? 일단 그걸 사실로 봐야 할 듯하다. 만약 그게 분실되거나 한다면, 어느 교사가 그걸 방치하겠는가 말이다.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공을 빼앗아 보관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차고 놀다 운동장 어디엔가 두고 가도 그게 없어지지는 않으니, 그런 식의 관리가 가능해진 것 아니겠는가. 따로 교사에게 확인해 보지는 못했으나, 그럴 거라고 여겨도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아이들 것이든, 학교 재산이든 운동장에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공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그걸 아무도 손대지 않는 상태라면 그것으로 충분할 터이다. 운동장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축구공은 우리가 마침내 당도한 풍요와 넉넉함을 드러내는 표지임에는 분명하다는 얘기다.

 

오늘은 중학교 별관 앞 스탠드 아래 축구 골대 뒤쪽에 공 세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지나다 보니, 본관 앞 국기 게양대 앞과 스탠드, 그리고 조례대에서 운동장으로 내려오는 계단 기둥 옆에 각각 다른 세 켤레의 축구화가 놓여 있었다. 이건 볼 것 없이 공놀이를 한 아이들이 벗어두고 간 것이다.

 

제 물건을 제대로 간수하지 않는다고 나무라기 전에 그것 역시, 아이들이 누리거나 즐기는 넉넉함의 일부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운동장을 돌았다.

 

 

2023.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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