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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아, 대한민국…, ‘저들의 공화국?’

by 낮달2018 2020.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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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몰입 교육과 광우병 정국, 정부의 소통 불능

▲ 광우병 관련해 타오르는 촛불

시국이 ‘하 수상(殊常)’하다. 여기서 ‘수상하다’라는 것은 ‘보통과는 달리 이상하여 의심스럽다’의 뜻이다. 유례없는 경제 한파는 물론이거니와 새 정부 출범 이래, 나라 안팎은 좀 뒤숭숭하다. 정부와 국민 사이에 무언가 아귀가 맞지 않는 상태가 죽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영어 몰입에서 광우병까지

 

아마 첫 단추가 ‘영어 몰입교육’이었던 듯한데, 이는 ‘광우병 정국’에서 그 ‘소통 불능’의 상황을 확인해 주었다. 그러나 꺼져가던 촛불 정국을 계기로 코너에 몰린 것처럼 보이던 정부는 이내 공세로 전환했다. 거기에 국가 권력기관이 총동원되어 수세에 몰린 권력과 정부를 버텨주는 좀 모양새 사나운 형국이 계속되고 있다.

 

정권이 보수세력과 합창하는 ‘잃어버린 10년’ 타령이나 여러 문제를 ‘전임 정부와 대통령 탓’으로 돌리는 행태는 슬슬 식상의 기미조차 보인다. 아마 정권은 그걸로 권력의 정당성을 입증하거나 정부의 실정(失政)을 충분히 가릴 수 있다고 믿는 일종의 자기 최면에 빠져 있는 듯하다.

 

‘잃어버린 10년’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이 땅의 보수 정당이 깊숙이 빠져 있는 ‘정치적 독선과 아집’의 언어적 표현이다. 60년 헌정사에서 정권을 내어준 건 고작 10년에 불과하다. 나머지 반세기는 그들이 누린 독야청청의 세월이었다.

 

그런데도 그걸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인가, 지난 역사와 과제를 강파르게 부정하고 나선 것이다. 거기엔 정권 교체를 통해 자당의 경륜과 정책을 펴나가는 게 ‘정당 정치’라는 인식 따위가 들어설 공간은 없어 보인다.

 

얼핏 계산해 보니 1980년부터 지금까지 미국에선 공화당이 20년, 민주당이 8년을 집권했다.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이 집권에 성공했지만, 그들은 물론 ‘잃어버린 20년’ 타령 따위는 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들의 정강 정책을 통해 새롭게 국가를 경영해 나갈 뿐이다.

 

어쨌든 이명박 정부 첫해도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데 어째 아이들 말로 ‘껄쩍지근’한 기분이다. ‘잃어버린 10년’에 치여 그동안 사람들이 힘겹게 이룬 민주적 가치는 폄훼되거나 위협받고 있는 듯해서다.

 

촛불과 함께 표현의 자유는 검경의 유례없는 수사로 된서리를 맞았고, 이는 ‘백골단의 부활’로 불리는 경찰관 기동대의 창설로 이어졌다.

 

대통령 특보 출신이 대거 방송사와 언론 기관의 수장으로 진입하면서 언론 환경도 열악해졌다. 여전히 YTN의 싸움은 계속 중이고, <미디어 포커스>와 <시사 투나잇>이 폐지되면서 KBS는 거의 평정(?)되고 있는 듯하다.

 

거기다 인터넷 실명제의 확대나 사이버모욕죄의 신설 등을 통해 정권은 일체의 비판과 여론에다 대못을 박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최근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의 절필 선언은 벼랑에 몰린 표현의 자유를 웅변으로 드러내 준다.

 

일제고사의 ‘부활’과 함께 반대 여론을 모르쇠 하며 진행되고 있는 국제중 개교 문제나 근현대사 교과서의 좌편향 논란 등도 그 변화의 목록에다 퇴행의 의미를 보탠다.

 

공안시대의 도래?

 

‘중앙정보부’의 부활이라는 국정원의 기능 확대는 가히 ‘공안 시대’의 도래를 예고한다. 그러고 보니 이 밀레니엄 시대에 웬 ‘부활’은 이렇게 많은가!

 

있는 사람만을 위한 ‘강부자’ 정부라는 세간의 평은 종부세 정국을 통해 은근히 확정되어 가는 느낌이다. 2 : 98이라는 공식이 허튼 내용이 아니라는 것, 종부세 폐지나 감세안이 겨냥하는 게 상위 2%라는 사실은 미국 대선에서 승리한 오바마의 상위 5% 증세안과 절묘하게 대비된다. 그런데도 정작 청와대는 오바마와 ‘변화와 개혁을 위한 국정 철학을 공유’하고 있다고 강변하니 그저 어리둥절할 따름이다.

 

‘선진화 원년’을 소리 높여 외치는 정부와 IMF보다 더 힘들다는 세월을 사는 서민들은 마치 다른 세계에 사는 듯한 느낌이 없지 않다. 1984년에 정 아무개라는 여가수가 불러 인기를 끈 대중가요, ‘아 대한민국’과 1990년에 정태춘이 부른 같은 제목의 노래를 떠올리는 이유가 그것이다.

 

▲ 민중가수 정태춘

1984년이라면 80년 광주항쟁을 총칼로 짓밟고 체육관 선거로 연거푸 11대·12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전두환 군부독재 시절이다. 볼이 통통한 여가수가 부른 ‘아 대한민국’은 가사만으로는 노벨상감이었다. 그건 그 어둡던 시대의 ‘통렬한 반어’ 같은 것이었는지 모른다.

 

‘하늘엔 조각구름’이나 ‘강물엔 유람선’ 따위야 약과다. 이 땅은 ‘저마다 누려야 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로운 곳’, ‘우리의 마음속에 이상이 끝없이 펼쳐지는 곳’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건 될 수가 있’는 ‘은혜로운 이 땅’이었다.

 

숨 쉬는 것 외에 모두가 통제와 억압으로 얼룩져 있던 그 어두운 시대에 그것은 가공할 만한 기만이었다. 그래서 그 시절의 대학생들은 그 노래 중간에다 ‘백 코러스’를 넣어서 부를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돈 있으면, 돈 있으면)
뜻하는 것은 무엇이건 될 수가 있어 (빽 있으면, 빽 있으면)

 

그에 비기면 1990년에 정태춘이 부른 노래 “아 대한민국”은 통렬한 분노의 풍자다. 1990년은 이른바 3당합당이 이루어진 해다. 보수 세력들은 이 야합을 통하여 지배권력을 공고히 했다.

 

우리의 것이 아닌,  ‘저들의 공화국’

 

정태춘은 노래에서 농촌 총각의 자살과 매춘관광을 노래하고, 해고된 여성 노동자와 재벌의 아들을 대조하고 엉터리 치안과 백골단을 음유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린 모두 행복하게, 풍요롭게, 만족하게,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고 있지 않는가고 반문한다. 그리고 ‘아~ 우리의 땅, 아~ 우리의 나라’, ‘아~ 대한민국 아~ 우리의 공화국’을 후렴으로 덧붙인다. 그러나 마지막 절에서 그는 이렇게 노래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우리의 것’이 아니라고 부인한다.

 

우린 너무도 질기게 참고 살아왔지
우린 너무 오래 참고 살아왔어
아~ 대한민국 아~ 저들의 공화국
아~ 대한민국 아~ 대한민국

 

18년, 세상은 변할 만큼 변했다. 당시의 야당이 연거푸 10년 간 집권했다. 그리고 그 때의 민자당을 모태로 한 한나라당이 다시 여당이 된 것이다. 잊을 만하면 되풀이되는 ‘잃어버린 10년’ 타령을 들으면서 언뜻 역사는 순환 반복하는가, 하는 생각에 나는 머리를 내젓는다.

 

아~ 대한민국 아~ 저들의 공화국
아~ 대한민국 아~ 대한민국

 

‘건국과 산업화 및 민주화의 성과를 질적으로 성숙시키고 선진화의 초석을 놓는’다는 이명박 정부의 ‘창조적 실용주의’를, 그렇게 만들어질 세상을 생각해 본다. 거기에 ‘광우병 쇠고기’를 걱정하며 광장으로 촛불을 들고 나갔던 사람들, 조중동 불매운동을 지지했던 시민들의 자리는 얼마쯤일까. 정태춘의 노랫말 속에 유독 ‘저들의 공화국’이란 소절이 귓속을 파고드는 까닭은 그것 때문일 터이다.

 

 

2008. 11. 19.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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