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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효근 시인 <따뜻한 외면>으로 ‘신석정문학상’ 수상

by 낮달2018 2020.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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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신석정문학상은 복효근 시인의 시집 <따뜻한 외면>

▲ 따뜻한 외면(실천문학사, 2013)

복효근 시인이 ‘신석정문학상’을 수상했다. [관련 기사] 지난해의 도종환 시인에 이어 두 번째 수상자다. [관련글 : 신석정과 신석정문학상, 그리고 도종환] 수상작은 시집 <따뜻한 외면>. 신인들을 대상으로 공모하는 ‘신석정 촛불문학상’의 수상자는 정지윤 시인.

 

신석정은 일반에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와 같은 감성적인 시를 쓴 이로 기억되는 시인이다. 시의 소재를 자연에서 구하고 자연에 귀의하려는 시작 태도와 동양적 자연관에 서구의 목가적 분위기를 결합한 독특한 시 세계를 보여주었다는 정도로 평가되는 시인에 대해서는 몇 해 전부터 재평가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최근 미발표 유작이 공개되고 그가 남긴 참여시가 적지 않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엄혹한 일제 말기에도 친일 시를 쓰지도, 창씨개명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러한 논의는 힘을 받고 있다. 전북 부안에 석정문학관이 건립되고, 신석정기념사업회에서 주관하고 <한겨레신문>에서 후원하는 신석정문학상이 제정된 것도 그러한 변화 가운데에서였던 듯하다.

 

선정 이유는 ‘격조 높은 서정시 창출’

 

심사위원장 신경림 시인은 복효근 시인을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로 “복효근의 시집은 제목처럼 따뜻한 시선으로 삶의 세목들에 눈길을 주면서도 결코 언어적 긴장을 잃지 않으면서 신석정 선생이 그래 왔던 것처럼 한 시대의 격조 높은 서정시를 창출하는 데 성공했다”라고 밝혔다고 한다.

 

글쎄, 나는 복효근 시인에 관해서는 교과서에 참고 시로 나온 그의 시 ‘토란잎에 궁그는 물방울같이는’ 외에는 알지 못한다. 본문에 나온 시가 아니어서 가볍게 넘어가고 말았지만, 그 시에 나온 반짝이는 감각과 따뜻한 정서가 마음에 살갑게 닿아온 기억은 선명하다.

 

복효근, ‘토란잎에 궁구는 물방울같이는’의 시인

 

나는 정작 그 시를 ‘토란, 토란국, 토란대’라는, 토란을 이야기하는 글을 쓰면서 인용했다. 넓적한 잎사귀에 물방울이 떼구르르 굴러가는 그 토란잎은 시골 출신이라면 누구나 안다. 시인이 노래한 것도 그 물방울이다. [관련글 : 토란, 토란국, 토란대]

 

시인은 토란잎에 남아 있는 그 물방울을 일러 ‘궁글궁글 투명한 리듬을 빚어내는 / 둥근 표정’이라 노래했고, ‘토란잎이 잠자면 그 배꼽 위에 / 하늘 빛깔로 함께 자’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토란잎 위에서 오롯이 맺혀 있는 그 물방울을 일러 ‘내 마음’으로, ‘토란잎이 물방울 털어내기도 전에 / 먼저 알고 흔적 없어지는 그 자취’를 ‘사랑’이라 부르면 안 되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아무렴, 그걸 사랑이라고 부르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어떤 일간지에서 이 시를 해설하면서 문태준은 시인이 그랬다. “부럽다. 이런 맑은 사랑이 있을까. 토란잎에 궁그는 물방울 같은 사람이 있을까. 그처럼 뒤가 말끔한 사랑이 있을까. 그런 사랑이 당신의 마음에 다녀간 적 있는가.” 사물을 바라보는 시인들의 마음은 모두 거기가 거기,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시인은 1962년생, 우리 나이로 쉰넷이다. 전북 남원 출신으로 전북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지금까지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쳐 왔다고 한다. 1991년에 <시와 시학>에 ‘새를 기다리며’가 당선하여 등단하였다. 95년에는 ‘편운문학상’을, 1997년에는 <시와 시학>의 ‘젊은 시인상’을 받았다.

 

시집도 여러 권 냈다.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1993), <버마재비 사랑>(1996), <새에 대한 반성문>(2000), <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법>(2002), <목련꽃 브라자>(2005), <어느 대나무의 고백>(2006) 등인데 이번 수상 시집은 2013년에 냈다.

 

표제작 ‘따뜻한 외면’에는 새와 나비, 포식자와 먹이라는 생태계의 먹이사슬이 작동하지 않는 순간을 그린다. ‘비를 긋’기 위해 나뭇가지에 날아든 새는 나뭇잎 뒤에 숨어 비를 긋는 나비를 작은 나뭇잎이라며 짐짓 외면해 버리는데 시인의 눈은 그 어느 일순에 머문다. ‘따뜻한 외면’이라는 모순 형용이 성립하는 순간이다.

 

가슴에 박힌 못, 혹은 타이어의 못

 

같은 시집에 실린 시 ‘타이어의 못을 뽑고’는 사랑하는 일의, 또는 살아가는 일의 고단함과 아픔, 그리고 거기서 얻어지는 깨달음을 노래하고 있다. 타이어에 박힌 못과 서로의 가슴에 박힌 못은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다른가.

 

사랑과 진실, 그 고백은 때론 타이어에 박힌 못을 뽑아버리면 차가 주저앉아 버린다는 현실적 인식으로 이어져 ‘사는 일이 더러 그렇다’며 머리를 주억거리게 된다. 그러나 ‘가슴팍에 대못 몇 개 박아둔 채’ 갈 데까지 가는 것이 삶이라고 하면 너무 씁쓸하지 않은가.

 

그래서 시인은 치유를 꿈꾸지 않고 ‘대못이 살이 되도록 대못을 끌어안는 것’, 그래서 삶이 새어나가지 않게 ‘그러쥐고 있으려 한다. 얼마나 많은 인생이 대못이 살이 되도록 끌어안고 사는가. 얼마나 많은 곡절이 대못 몇 개 박아둔 채 폐차장으로 정비소로 갈 데까지 가는가.

 

시인의 시는 ‘따뜻한 시선으로 삶의 세목들에 눈길을 주면서도 결코 언어적 긴장을 잃지 않는다’ 신경림 선생의 평가에 머리를 주억거리면서 나는 뒤늦었지만, 그의 시집 <따뜻한 외면>을 장바구니에 담아 두기로 한다.

 

 

2015. 10. 26.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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