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성취보상제 아이들과 함께한 낙동강 탐사

아닌 방학 중에 아이들과 야영을 다녀왔다. 학교의 공식 행사가 아닌데도 야영을 다녀온 것은 내가 우리 학교 아이들 일곱 명이 참여하고 있는 어떤 청소년 프로그램의 지도교사였던 까닭이다. 지도교사라고는 하지만 내 역할은 미미하다. 나는 아이들이 정기적으로 시행하는 활동을 확인하는 정도로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다.
아이들이 참여하고 있는 프로그램은 국제 청소년성취포상제(The Duke of Edinburgh‘s Award)다. 만 14~25세 사이의 청소년들이 신체단련, 자기계발, 봉사 및 탐험 활동을 통해 그들의 잠재력을 최대한 개발하여 지역 및 세계 사회에 이바지하는 세계시민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 목적인데, 영국 여왕의 남편인 필립 공에 의해 1956년 설립되었다. 이름에 ‘에든버러 공(Duke of Edinburgh)’이 들어가 있는 이유다.
이 제도는 세계 최초 에베레스트 등반자인 헌트 경(Lord Hunt)과 독일 교육학자 쿠르트 한(Kurt Hahn) 박사의 지도로 처음 운영된 이래 6백만 명의 청소년들이 참가했으며 현재 127개국에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아이들은 지역 운영기관인 권정생 어린이 문화재단을 통해 이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이번 야영은 아이들의 탐험 활동. 주제는 ‘낙동강 탐사’. 낙동강 줄기를 도보로 답사하면서 강 주변의 오염을 확인하는 활동이다. 탐험 활동을 어떻게 꾸릴 것인가를 두고 여러 차례 토론을 거친 끝에 아이들은 운영기관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운영기관인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의 성취보상제 담당자는 내 동갑내기 친구인데, 그는 일찍이 낙동강 주변의 환경오염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가졌던 이다. 그는 봉화를 거쳐 안동에 이르는 낙동강 주변이 상상을 초월하는 중금속에 오염된 광미(鑛尾)로 뒤범벅이 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이를 각계에 알려왔다. 그는 이 지역의 광해를 다룬, 지난 7월 3일 SBS TV에서 방영된 <물은 생명이다>에도 출연하였다.

원래 ‘광미’는 ‘복대기’라고도 쓰는 광업 용어다. 광석을 빻아 금을 골라낸 뒤 남은 돌가루를 가리키지만, 한편으로는 광석 폐기물의 뜻으로 쓴다. 경북 봉화지역에는 20여 개의 광산이 있었다. 특히 폐광되면서 방치된 광산에서 비소와 카드뮴 등 중금속이 주변 지역을 지속해서 오염시켰다. 이들 광미는 적은 비에도 휩쓸려 안동댐으로 유입된다.
1박 2일 동안 최소 10시간 가까이 아이들은 그런 광미의 정체와 그것들이 오염시킨 낙동강 강변을 확인했다. 비에 휩쓸리면서 강변에 퇴적층을 이룬 것은 거대한 광미 덩어리다. 이들은 마치 광물질 바윗덩어리 같아 보이기도 했다.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 겉으로 보기에는 맑기만 한 강물이 기실은 오염된 퇴적층을 쓸어내린 물이라는 사실 앞에서 아이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해당 지방자치단체는 이런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 꺼릴 뿐,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려 하지 않는다. 문제 해결은 이런 광범위한 오염지역을 정화하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한가하게 보를 막고, 강바닥을 준설하는 ‘4대강 살리기’가 아니라는 데에는 동행했던 학부모들의 의견도 같았다.
상수원인 강의 원천적 오염을 방치하면서 어떤 해결책도 갖지 못하고 있는 현실, 그게 이 ‘선진화 시대’(!)에 우리가 서 있는 지점이다. 아이들과 함께한 탐험 활동은 그게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이 나라, 이 사회의 시스템의 문제라는 점을 우울하게 확인한 시간이었던 듯하다.










2009. 8. 5. 낮달
* 낙동강 상류의 주 오염원이 최근 영풍그룹에서 운영하는 봉화 영풍 석포제련소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다. 그간 환경운동 단체로부터 끊임없는 비판을 받아왔으나, 오불관언 영업을 계속하던 이 제련소는 최근 여러 가지 불법이 사실로 확인되면서 경상북도의 조업정지 처분을 받고 주요 종사자가 기소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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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달2018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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