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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텃밭일기

2020 텃밭 농사 시종기(1) 감자 농사

by 낮달2018 2020. 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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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감자 농사

 

올해 블로그는 가히 ‘개문 휴업’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나흘이면 한 편씩 꼬박꼬박 무언가를 끄적이던 때와 달리 올해는 마치 질린 것처럼 글쓰기를 내팽개쳤기 때문이다. 정말 누구에게 쫓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런저런 글을 써낸 지난 10여 년이 거짓말 같을 지경이다.

 

물론, 아주 문을 닫고 논 것은 아니다. 그간 <오마이뉴스> 블로그에 썼던 1천몇백 편의 글 가운데, 그나마 쓸 만한 글을 골라 새로 티스토리에 재수록하는 일은 꾸준히 이어 왔기 때문이다. 한 해의 절반이 지난 7월 10일 현재, 블로그에 쌓인 1,094편의 글이 그 결과다(여기엔 일부러 중간중간에 넣어 놓은 ‘예비’ 꼭지가 있으니 실제 글은 이보다 적다).

 

오늘까지 올해에 새로 쓴 글을 몇 편이나 될까 세어 봤더니, 모두 27편이다. 평균 7일에 한 편꼴인 셈이다. 그만하면 체면치레를 했다 싶기는 한데 좀 켕기는 것은 올해도 시작한 텃밭 농사도 그간 꾸준히 사진만 찍어 놓았을 뿐, 글은 전혀 쓰지 않은 점이다.

 

오늘, 그간 기록해 둔 메모를 꺼내놓고 일단 올 농사의 경과를 기록해야 할 듯해, 시작하는 글이다. 지난 6월에 감자를 수확하긴 했지만, 고추 농사는 이어지고 있으니 이게 몇 편이 글이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런 거에 구애받지 말고 되는대로 기록해 두기로 한다.

▲ 이웃 할머니가 농사 지으라고 빌려준 텃밭. 물론 임자는 따로 있다. 아파트 앞 공터의 한 쪽이다.

해마다 텃밭 농사를 지을지 말지를 고민하기는 올해도 마찬가지다. 아이들 소꿉장난 같은 규모라도 일단 벌여 놓으면 나 몰라라 하기 어려운 게 농사다. 물론 에멜무지로라도 시작하기만 하면 밭은 임자에게 그만한 보상을 돌려준다. 그런 데서 얻는 기쁨과 성취는 거기 들인 비용을 상쇄하고도 남지만, 일단 시작하면 거기 매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은근히 피하고 싶은 마음도 절반이기 때문이다.

 

우리 집 텃밭은 예전 그대로, 시골 처가의 마당에 일구어 놓은 손바닥만 한 밭 두 뙈기다. 올해는 거기에 또 한 뙈기를 얻었다. 아파트 앞 공터를 주민들 여럿이 땅임자의 허락을 얻어 농사를 지어먹는다. 그중 한 분인 우리 라인의 3층 할머니가 자신이 일구던 땅 한쪽을 아내에게 내준 것이다.

 

고맙다고 덥석 받긴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처가 텃밭도 제대로 꾸리지 못하면서 새로 집 앞에다 농사를 짓는다고? 텃밭은 역시 곁에 있어야 한다며 기꺼워한 걸 뉘우치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농협에서 퇴비 6포를 사서 처가와 집 앞 텃밭에 뿌린 게 3월 초순이었다.

▲ 3월 17일에 파종하고 이랑에는 신문지를 깔아서 풀에 나는 걸 막았다. 멀칭 대신 유기농 농사꾼에게 배운 지혜다.

엿새 뒤에 종묘사에서 감자 씨를 사서 처가의 묵은 밭에 심었다. 멀칭을 하는 대신 감자밭에 굳이 멀칭을 할 필요가 없다는 어느 유기농 농사꾼의 충고를 따랐다. 대신 그의 말대로 고랑에다 신문지를 죽 깔아놓았다. 초여름이면 수확을 하는 감자 농사, 한여름처럼 풀이 번질 일 없으니 신문지로 막아 놓아도 충분하다는 거였다.

 

4월의 첫날에 처가 새밭에 멀칭 작업을 하고 13일에는 우선 가지 세 포기를 심었다. 집 앞 텃밭에 멀칭 작업을 한 게 4월 18일이다. 멀칭 작업을 한 곳에는 고추를 심기로 한 것이다. 같은 날, 아포의 육묘장에 가서 고추 모종을 사 왔다. 늘 시장에서 샀는데, 이웃의 권유에 따라 육묘장까지 간 것이다.

 

육묘장의 모종은 좀 다를까, 시장에서 150~200원이면 살 수 있는 모종 1포기에 500원을 주고 150여 포기를 사 와서 앞 밭에 120포기 정도를 심고, 이틀 뒤에는 처가에 30포기를 심었다. 처가 밭뙈기의 자투리땅에는 고구마와 곰취와 곤달비 등 나물을 심었다.

▲ 감자는 꼭 한 달 만에 싹을 틔우고 씩씩하게 자라기 시작했다. 4월 13일.
▲ 감자는 무성하게 자랐다. 그동안 아내는 꽃을 따 주는 등  선배농사꾼에게 배운 지혜를 나름대로 시전하면서 신경을 많이 썼다.

4월 23일에는 고추에 지지대를 세워주었다. 그동안 써온 지지대 말고도 따로 40개를 인터넷에서 사서 썼다. 어쨌든 이럭저럭 농사 꼴을 갖춘 것이었다. 5월이 되면서 아내의 성화로 고추밭에 방제했다. 방제 이야기는 따로 다룬다.

 

감자는 잘 자라주었다. 지난해 감자는 씨를 선산 장에서 시골 할머니한테서 사 왔는데, 1상자쯤을 수확했다. 첫 농사라 심어놓은 게 다였으니, 씨알이 안 굵어도 우리는 만족할 수 있었다. 고추나 가지처럼 눈에 보이는 열매가 아니라, 수확해야만 그 성과를 확인할 수 있는 감자 농사는 은근한 기다림이 좋았기 때문이다.

 

올해 감자 농사는 아내가 틈만 나면 유튜브에서 감자 농사 관련 동영상을 보고 꽃을 제거해 주는 등 신경을 많이 썼다. 철이 일러서인지 풀이 거의 나지 않았는데 아마 이랑에 신문지를 깔아준 게 효과를 본 것 같았다. 석 달, 그러니까 심은 지 90일 만에 캐면 된다는 감자 농사, 마지막 열흘 동안은 알이 굵어지라고 이랑에 물도 채워주었다.

▲ 올해 수확한 감자. 씨알도 굵고 양도 지난해의 몇 곱절이었다. 우리는 행복했다.
▲ 수확이 끝난 감자밭. 얼마 뒤에 여기엔 콩을 심었다.

하지 이틀 뒤인 6월 22일에 감자를 수확했다. 아내의 정성의 통했는지 감자 농사는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수확량도 지난해 세 배쯤 되고, 씨알도 굵어서 잔잔한 씨알은 별로 나오지 않은 것이다. 감자를 크기별로 골라서 종이상자와 비닐봉지에 넣으면서 우리는 잔뜩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집에 오자마자, 씨알 작은놈으로 골라 삶았는데, 기분이 그래서인가, 지난해 것보다 달고 맛도 좋았다. 감자는 보관도 문제고 해서 아내가 친구들에게 조금씩 나누어주었다. 감자는 저열량 식품이라, 삶아놓고 간식으로 먹어도 괜찮으니 모든 게 만족스러웠다.

 

이상이 두 번째 감자 농사 시종기다. 손이 별로 가지 않는 농사인 데다가 그 수확물을 워낙 좋아하는지라, 내년에도 짓자고 아내와 약조했다. 글쎄다, 이제는 내년 초에 다시 농사를 지을까 말까로 고민스러워질 일만 남은 것인가.

 

 

2020. 7. 10.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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