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켜는’ 것과 ‘펴는’ 것은 따로 있다
기지개는 ‘켜고’ 어깨는 ‘편다’
어저께 어느 유수 일간지 기사에서 ‘기지개를 펴다’라고 쓴 표현을 보았다. ‘펴다’라고 쓰기도 하는가 싶어 검색했더니 그걸 제목으로 쓴 기사가 여럿 뜬다. 궁금했던 사람이 또 있었던 듯, 국어원과 몇몇 매체의 관련 기사는 똑 부러지게 ‘틀리다’고 하진 않고 “‘켜다’로 쓰는 게 적절하다”고 답하고 있다.
국어사전의 예문에 ‘기지개를 펴다’는 없다. <표준국어대사전>은 “(‘기지개’와 함께 쓰여) 팔다리나 네 다리를 쭉 뻗으며 몸을 펴다.”로 풀이하고 있다. 의미로만 보면 기지개를 펴지 못할 이유는 없지만 그게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미 관용구로서 ‘기지개를 켜다’가 언중들의 언어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착용하다’의 뜻으로 쓰는 말은 대상(옷·모자·장갑·신·시계)에 따라 각각 다르게 ‘입다’, ‘쓰다’, ‘끼다’, ‘신다’, ‘차다’ 따위로 쓴다. 오랜 언어생활을 통해 마련된 용례인 셈인데 이걸 어기는 것은 의사소통에 무리를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말인 ‘벗다’는 대상에 따라 다르게 쓰지 않는다. 옷도, 모자도, 장갑도, 구두도 시계도 모두 ‘벗는다’.
‘(기지개를) 켜다’도 마찬가지로 이해하는 게 옳다. 실제 ‘켜다’는 동음이의어가 북한어까지 포함하면 7개에 이른다.
(1) 촛불을 켜다 / 전등을 켜다
(2) 통나무를 켜다 / 박을 켜다 / 바이올린을 켜다 / 고치를 켜다 / 엿을 켜다
(3) 막걸리 한 사발을 쭉 켜다. / 소금 먹은 놈이 물 켠다.
(4) 기지개를 켜다
(5) 밭골을 켜다
(6) 꿩 사냥을 할 때는 으레 우레를 켠다.
‘물 마시다’는 뜻의 낱말은 ‘들이켜다’
‘켜다’ 가운데 쓰임에 유의하여야 하는 게 ‘켜다 03’이다. ‘물이나 술 따위를 단숨에 들이마시다.’, ‘갈증이 나서 물을 자꾸 마시다.’의 뜻으로 쓰이는 이 말에 ‘들이다’를 붙여 합성어를 이루면 ‘들이켜다’가 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체로 이를 ‘들이키다’로 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들이키다’는 ‘들이켜다’와 뜻이 다른 말이다. ‘들이키다’는 ‘안쪽으로 가까이 옮기다’의 뜻이고, ‘들이켜다’는 ‘물이나 술 따위의 액체를 단숨에 마구 마시다’, ‘공기나 숨 따위를 몹시 세차게 들이마시다’의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활용도 유의해야 한다. ‘들이키고’, ‘들이키니’가 아니라 기본형이 ‘들이켜다’니 ‘들이켜고’, ‘들이켜니’, ‘들이켜서’ 등으로 써야 맞다.
(1)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발을 들이키어라.
(2) 그는 목이 마르다며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 …맑고 시원한 공기를 들이켜기도 한다.
그러나 ‘펴다’는 다의어로 사전에 표제어로 단 하나만 올라 있다.
(1) 날개를 펴다 / 주름살을 펴다 / 다리를 쭉 펴다 / 어깨를 활짝 펴다 / 뜻을 펴다
(2) 돗자리를 펴다 / 계엄령을 펴다 / 수사망을 펴다
다리나 어깨는 쭉 ‘펴’지만 역시 기지개는 ‘켜’는 게 훨씬 자연스러운 것이다.
2018. 7. 23.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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