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농사, 수확과 동시에 밭을 엎었다
내 고추 농사가 끝났다. 지난 10월 30일에 마지막, 몇 남지 않은 고추를 따고 나서 나는 고춧대를 뽑아 얌전하게 고랑에다 뉘어 놓는 것으로 2008년도 내 텃밭 농사를 끝냈다. 마땅히 검은 비닐마저 걷어내야 하지만, 시간이 여의치 않았다. 밭 한쪽의 가지도 포기째로 뽑아 놓았다.
여느 해처럼 올 농사도 우연히 시작했다. 밭을 일구어 고추 모종을 심은 게 지난 5월 10일이다. 땅이 척박해 제대로 작물이 자랄 것 같지 않았던 농사였는데, 자연과 생명의 힘은 놀랍다. 내 고추는 그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리고 쏠쏠하게 내게 풋고추를 선사해 주었고, 얼마간의 고춧가루가 되어 주었다.
그간 여러 번 딴 얼마 되지 않은 익은 고추를 아내는 가위로 썰어서 베란다의 부실한 햇볕에다 말렸다. 그걸 인근 방앗간에 가서 빻아온 게 어제다. 빈 병에 담긴 고춧가루는 밝은 선홍색이다. 진딧물을 구제하느라고 초기에 한 번 다림질에 쓰는 분무기로 약을 뿌려준 것 외엔 곧이곧대로 자란 고추다.
병 속에 든 고춧가루를 바라보면서 우리 내외는 내내 흐뭇해했다. 참, 고작 이거 얻는다고……. 우리는 그걸 얻기 위해 우리가 들인 적지 않은 노력을 생각하면서 마주 보며 웃었다. 그걸 얻기 위해 들인 노력이란 ‘땀’ 이야기가 아니다. 기실 농사를 짓는다고 우리가 몸을 부린 건 얼마 되지 않는다.
오히려 왕복 20Km가 넘는 거리를 오가면서 들인 휘발유나, 정작 어떻게 하지는 못하면서 마음을 쓰는 일이 예사롭지 않았다는 뜻이다. 아내는 현실적으로 그간 든 비용으로 사 먹는 게 훨씬 나았으리라고 하면서도 이 수확을 통해 우리가 얻은 게 어찌 그것뿐이겠냐는 내 말에 동의해 주었다.
그렇다. 미욱한 계산법으로 우리의 텃밭 농사는 적자다. 그러나 그 박토(薄土)를 통해 우리가 배우고 느낀 것은 그 적자를 메우고도 남는다. ‘땅이 정직하다’라거나 작물의 한살이를 통해 증명하는 자연의 순환과 섭리란 단순한 수사가 아니었다는 걸 우리는 확인했던 게다.
여전히 고통스러운 들녘을 망연히 바라보고 있을 이 땅의 농민들과 그들의 농사를 생각하면 이 텃밭 농사에 담긴 내 한갓진 탁상공론은 부끄럽다. 우리야, 내년에는 어쩔 거야 하면서 웃음으로 눙치고 말았지만, 내년에도 다시 적자로 주름진 농사를 다시 시작해야 하는 그들의 삶 앞에 내 농사 타령은 외람되고 송구스럽기만 한 것이다.
2008. 11. 5.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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