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다, 고추야!
교무실 베란다에 내다 놓은 내 고추 화분에 퇴비를 넉넉하게 묻어 주었더니 시퍼렇게 잎이 짙어지고 줄기가 실해지면서 다투어 꽃이 피기 시작했다는 얘긴 일찌감치 한 바 있다. 두어 포기에서 잎마름병인지, 이파리가 말라 들어간다고 근심했더니, 줄줄이 댓글을 달아주신 고참 농사꾼으로부터 마른 잎은 아까워 말고 잘라내어라, 더 자라기 전에 지지대를 세워 주어라, 벌레 잡는 데엔 설탕물도 쓸 만하다는 등의 노하우를 배웠다.
이틀 후에 학교 뒷산에서 다듬어 온 나무로 지지대를 세우고, 물이 잘 빠지도록 벽돌 두 개로 화분을 괴고 유실된 흙도 조금 보충했다. 어차피 화분이 놓인 곳은 한데니 예고 없이 내리는 비에도 끄떡없도록 채비를 한 셈이다. 그게 필요할까 어떨까 고민하다가 에라, 해서 나쁘지는 않겠지, 모종삽으로 포기 주변의 흙을 일구어 주었다. 말하자면 김을 매 준 셈이었다.
내 가운뎃손가락보다 조금 가늘지만 길이는 조금 더 나가는 첫 고추 두 개를 수확한 건 나흘 전이다. 첫물은 따 주어야 다른 열매에도 고루 영양이 간다는 주변의 충고를 따른 것이다. 어제 공휴를 마치고 오늘 출근했더니, 단 하루가 지났는데도 세상에, 좀 과장해서 주렁주렁 고추가 매달려 있는 것이다. 새끼손가락 두 마디쯤 되는 아기 샅에 달린 녀석 같은 예쁜 고추가 여럿이고, 꽃봉오리가 오종종하게 이마를 맞대고 있었다.
여섯 포기 모두가 제대로 자랐다. 날마다 시간마다 창밖을 내다보고 물을 좀 줄까, 아니 그러다 나빠질라, 노심초사하는 담임과는 달리 아이들은 그저 강 건너 불구경이다. 으레 그러려니 하면서도 조금은 섭섭한데, 기실 아이들에게는 잘못이 없다. 이 녀석들에게 고추 기르기를 요구하지 않은 까닭이다. 종일 책만 파는 아이들에게 마음에 없는 고추 가꾸기는 또 다른 부담이 될까 염려해서다.
내일쯤 한 번 더 첫물의 굵은 놈 몇을 솎아내야겠다. 모레는 놀토, 연휴를 마치고 돌아오면 이 건강한 육 형제 녀석이 잔뜩 달린 열매들로 좀 힘겨워 보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다, 이미 이 녀석들은 저마다 제 소임을 다한 거로 봐주어야 한다. 설사 더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이 녀석들의 책임은 아니다. 나는 우정 그렇게 자신을 나무랐다.
그러고 보면, 내가 이 녀석들에게 건넬 인사는 단 외마디에 그칠 수밖에 없다. 북풍한설 정도는 아니지만, 그간 대중없는 농사꾼의 변덕스러운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도우며 찬찬히 밟고 있는 생장 과정만으로도 이 여섯 포기 고추는 자랑스럽기만 하다. 나는 일부러 소리 내어 중얼거린다. 장하다, 고추야!
2007. 6. 7.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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