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新綠), 고추 심기
4월도 막바지다. 중간고사가 가까워지면서 아이들은 일제히 ‘열공’ 모드로 들어갔고, 며칠 동안 출제 때문에 끙끙대다 다시 맞는 날들이 어쩐지 수상하고 어수선하다. 한 학기가 ‘꺾여서’인지 다소 숨 가쁘게 달려온 두 달간의 팍팍한 시간이 불현듯 막연해진다.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생각에 등허리가 서늘해지는 기분도 없지 않다.
그래서인가, 블로그를 살피고 돌보는 일도 시들하고 심드렁해졌다. 모두들 바쁜 모양인지 오블도 대체로 그런 분위기로 느껴진다. 이웃들 집을 한 바퀴 도는 일도 뜨악해지고, 퇴근해서는 아예 컴퓨터 근방에도 가지 않기도 했다.
학교 주변에서 만나는 신록이 그나마 변치 않는 감격을 선사해 준다. 학교로 오르는 길고 가파른 언덕길 오른편은 조그만 숲인데 이 숲은 시방 나날이 조금씩 짙어지는 연록 빛이다. 그리고 그 연록 빛 흐름은 교정의 오래된 나무들을 거쳐 학교 뒷산 숲으로 이어진다. 그것은 마치 이제야 이 작은 도시에 당도한 봄의 속살 같기도 하다.
어제, ‘해를 그리며’님의 블로그에서 그이가 일구는 주말농장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낮은 산을 끼고 강이 흐르고 있었고 하얗게 핀 화사한 꽃나무 그늘 이편으로 잘 걸우어진 밭이 시원했다. 하얀 팻말이 꽂힌 이랑 경계에서 아이들도 저마다 한몫의 일꾼이 되어 있었다. 거기 그렇게 댓글을 달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푸근합니다. 생명의 산업, 농업의 본질 때문이겠지요.
그러고 나서야 그간 미루고 있었던 <고추 농사>를 기억해 냈다. 시장에 가서 고추 모종 열두 포기를 사 온 게 오늘 점심께다. 지난해, 장모님께서 길러 주신 웃자란 키의 모종과는 비교가 안 되는 손바닥 길이만 한 놈이다. 유기질 비료는 못 사고, 작은 콩처럼 동글동글한 복합비료 한 봉지도 같이 샀다.
학교 온실에서 놀고 있던 길쭉한 플라스틱 화분 두 개에 뒷산에서 퍼온 흙을 담고 복합비료를 적당하게 섞은 뒤에, 좀 사이가 좁지 않나 싶으면서도 모종 네 포기씩을 심었다. 쉬는 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우리 반 창턱에 올리고 사진 몇 장을 찍었다. 아이들에게 창가에 서라고 주문하니 저마다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꽁무니를 뺀다.
그래, 바쁘지 않다. 저 녀석이 서둘러 꽃을 피우고 갓난아이 손가락 같은 열매를 달고 난 뒤에도 늦지 않다. 창밖의 통로에다 화분을 가지런히 세우고 아이들과 물을 주었다. 흙에서 가는 실지렁이를 발견한 아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괜찮아, 아주 좋아. 그건 그 흙이 살아 있다는 뜻이겠지? 아이들은 그런가 한다.
아이들에게 그렇게 말했다. 이게 제대로 자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고추가 달려도 따먹지 말고, 썩 실하지 않더라도 빨갛게 익을 때까지 기다리도록 하자. 한 생명이 어떻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어떻게 익어가는가를 모두가 함께 지켜보자. 아이들은 긴가민가하면서도 무언가 담임이 심각해지는 게 흥미로운가 보다.
우리 모두, 창밖의 생명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는 거야. 그렇게도 말했다. 통로로 오가는 이웃 반 아이들의 손을 타면 저 녀석들은 끝장일 터이니. 오후 6시, 수업이 끝나고 나서 화분을 살펴보았더니 물을 머금은 모종에 생기가 돌았다. 제대로 뿌리를 내리기만 한다면……. 나는 마음속에서도 말을 맺지 않았다. 어쩐지 두려운 까닭이다.
복합비료는 여전히 마음에 걸린다. 저게 뿌리를 썩히진 않을까 저어하는 마음 탓이다. 처가에 다녀오는 길에 제대로 된 유기질 비료를 얻어 오리라고 작정하면서 나는 다시 생각해 보았다. 베란다에서의 고추 농사를 통해 일찍이 깨달은, 이웃들의 온전한 도움 없이는 꽃 한 송이, 열매 하나도 쉽사리 피우고 맺지 못한다는 ‘흙과 바람과 햇빛의 진실’ 말이다.
2007. 4. 25.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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