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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행복한 책 읽기

그 삶과 시- 박영근 유고시집『별자리에 누워 흘러가다』

by 낮달2018 2020. 6. 2.

▲ 유고시집(창비, 2007)

시집 몇 권을 샀다. 지난번 글(노동시인 조영관과 임성용의 만남)을 쓰면서 온라인 책방 보관함에 갈무리해 둔 조영관 유고시집 『먼지가 부르는 차돌멩이의 노래』, 임성용 시집 『하늘공장』, 박영근 유고시집 『별자리에 누워 흘러가다』 등이다. 

 

생각난 김에 민음사에서 펴낸 소월 시집 『진달래꽃』과 만해 시집 『님의 침묵』에다 릴케 시집 『형상시집 외』도 샀다.

 

『진달래꽃』은 중학교 1학년 때 읍내 문방구에서 100원을 주고 산 이래 두 번째로 사는 소월 시집이다. 그러고 보니 그 손바닥만 한 문고본의 조악한 시집이 내가 난생처음으로 돈을 주고 산 책이었다.

 

시의 ‘효용’, 국밥과 소금?

 

아이들에게 소월과 만해를 가르치면서도 정작 내 서가에는 그들의 시집 한 권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나는 좀 황당했다. 하긴 습작기에도 시는 그리 가까이하지 않았으니 그게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시를 잘 붙이지 않는 것은 그것이 소설처럼 술술 읽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시(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 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 함민복, 「긍정적인 밥」 전문

 

정작 자신도 별로 시를 읽지 않으면서 흔히 하는 말로 ‘시를 읽지 않는 삭막한 시대’를 두들기고 있었으니 부끄러운 일이다. 이 시대에 시를 읽는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뜻일까. 그건 진부한 표현으로 ‘일용할 마음의 양식’일까, 아닐까.

 

함민복 시인은 ‘긍정적인 밥’에서 시를 ‘밥’과 ‘국밥’으로, ‘소금’으로 노래했다. 그는 시 한 편의 원고료와 시집 한 권 값, 인세를 바탕으로 ‘따뜻한 밥이 되는 시’를, ‘따뜻한 국밥이 되는 시’를, ‘굵은 소금 한 됫박이 되는 시’를 노래했다.

 

따뜻한 밥이나 국밥의, 한 됫박 소금의 의미가 반드시 가벼운 것은 물론 아니다. 따라서 시 한 편이 주는 효용을 그렇게 비유하는 것을 굳이 폄하할 이유도 없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인이 스스로 낮추어 바라보는 ‘시’일 뿐이다. 독자가 시를 바라보는 것은 다른 차원이나 다른 영역이기 때문이다.

 

박영근(1958~2006) 시인은 이번에 우리가 다녀온 부안 출신이다. 우리는 그의 모교인 마포초등학교도 찾았었다. 나는 현지의 정 선생으로부터 박 시인에 관한 얘기도 들었고, 부안에서는 해마다 그를 추모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의 유고시집에서 그의 아내(성효숙, 조영관 시인을 모델로 그림 ‘작업화를 신는 사람’을 그린 화가다.)가 꼼꼼하게 기록한 그의 연보를 꼼꼼하게 읽으면서 그가 참 ‘불꽃’처럼 살았던 사람이었다는 걸 확인했다. 그의 동지였던 김정환 시인이 “(그의) 죽음은 노동의 단절이 아니라 확장이다. 그 전에, 노동은 죽음의 연장이 아니라 심화다…….”라고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노동시인 박영근, 그 삶과 죽음

 

얼치기 문학 교사인 나는 그가 ‘신동엽창작상(1994)’, ‘백석문학상(2003)’을 수상한 시인이라는 사실도, 그가 <취업 공고판 앞에서>(1984), <대열>(1987), <김미순 전(傳)>(1993), <지금도 그 별은 눈 뜨는가>(1997), <저 꽃이 불편하다>(2002) 등 네 권의 시집을 펴냈다는 사실도 이제야 알았다. 그의 유고가 된 시집 <별자리에 누워 흘러가다>는 그의 다섯 번째 시집인 셈이다.

 

▲  고 박영근 시인 (1958~2006) ⓒ 시집 내지

시집에 발문을 쓴 그의 지기 허정균의 블로그에 실린 사진 속에서 박영근은 실눈을 뜨고 무언가를 그윽하게 건너다보고 있다. 연륜이 아주 살갑게 몸에 붙은 여유로운 표정인데 보기에 따라서는 아주 강인해 보이거나 아주 너그러워 보이는 인상이다. 나는 아련하게 내 친구 가운데 누구의 얼굴을 거기다 겹쳐보다가 이 땅에 그런 정겨운 얼굴이 숱하다는 걸 깨닫기도 했다.

 

안치환이 불러 널리 알려진 민중가요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의 가사도 박영근의 시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거듭 확인한다. 후렴구를 비롯한 핵심 대목은 모두 그의 시 ‘솔아 푸른 솔아 - 백제 6’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그 밖에도 ‘시퍼렇게 쑥물 든다’, ‘불어 오는 바람’, ‘갈라진 세상’, ‘어머니의 눈물’ 등의 시상은 모두 ‘취업 공고판 앞에서’, ‘고향의 말 4’, ‘들잠 - 백제 3’, ‘서울 가는 길’ 등의 시에 쓰인 시구라는 것이다. [☞ 관련 기사 보기]

 

개학을 하루 앞둔 3·1운동 92돌 날, 그의 유고시집을 뒤적인다. 역시 그의 정서는 우리 동년배의 것인가. 시집 곳곳에서 나는 익숙한 내러티브를 발견하고 머리를 끄덕였다. 지금은 대구나 서울 어디서 시를 쓰면서 나이 들고 있는 내 친구들을 생각한다.

 

그의 시 ‘탑’을 읽으면서 다시 흑백사진 속의 시인을 들여다본다. 그에 바투 짧게 깎은 머리 위에 쌓이고 있는 눈은 두 주 전, 그의 고향 변산에 내리던 눈일까, 아닐까. 다섯 해 전에 떠난 이인데도 그의 넉넉한 표정 뒤로 안치환의 목소리가 겹쳐진다.

 

 

2011. 3. 1.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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