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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엽서5

만년필로 편지를 쓰다 제자에게 온 편지, 만년필로 답장을 쓰다 한 달 전쯤에 대학을 졸업한 제자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다. 2008년에 아이는 여고 2학년, 내 반이었고 내게서 문학을 배웠다. 스승의 날에 맞추느라고 그랬는지 익일 특급으로 보낸 편지는 길쭉한 진녹색 봉투에 들어 있었다. 나는 이름만 보고 그 애가 누군지를 단박에 알았다. 5월에 닿은 제자의 ‘편지’ 한 반에 몇 명씩 있는 흔한 이름이 아니었던 탓만은 아니다. 해마다 서른 명 내외의 아이들을 맡다 보면 기억이 하얗게 비어 있는 아이들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어떤 특징적인 모습으로 떠오르게 마련이다. 시간이 지나서 앞뒤 기억이 뒤섞이면서 누가 선밴지 누가 후밴지 헷갈리곤 하지만 말이다. 아이들은 더러는 당돌하고 적극적인 모습으로, 따뜻하고 다정한 표정으로, 더.. 2020. 6. 21.
‘엽서와 편지의 시대’는 가도 어느새 손 편지의 시대는 지나갔는가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풀잎 되어 젖어 있는 비애(悲哀)를 지금은 혼미하여 내가 찾는다면 사랑은 또 처음의 의상(衣裳)으로 돌아올까 우체국에 오는 사람들은 가슴에 꽃을 달고 오는데 그 꽃들은 바람에 얼굴이 터져 웃고 있는데 어쩌면 나도 웃고 싶은 것일까 얼굴을 다치면서라도 소리 내어 나도 웃고 싶은 것일까 사람들은 그리움을 가득 담은 편지 위에 애정(愛情)의 핀을 꽂고 돌아들 간다 그때 그들 머리 위에서는 꽃불처럼 밝은 빛이 잠시 어리는데 그것은 저려 +오는 내 발등 위에 행복에 찬 글씨를 써서 보이는데 나는 자꾸만 어두워져서 읽질 못하고,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기진한.. 2019. 11. 27.
38년……, 그래도 우린 열심히 살았다 다시 만난 옛 ‘전우’ 지난 7일, 4·3 70주년 국민문화제에 참석한 날, 밤에 1978년부터 1980년까지 군대 생활을 같이한 옛 동료 ‘허(許)’를 만났다. 그는 정보과, 나는 인사과 행정병으로 일과 중에는 다른 공간에서 근무했지만, 일과가 끝나면 대대본부 내무반에서 같이 생활한, 군대식으로 말하면 ‘전우’다. 신병 교육을 같이 받은 것도, 공수교육이나 특수전 교육을 같이 받은 동기도 아니었다. 입대는 내가 한 달쯤 빨랐지만 비슷한 시기에 입대한 작전과 행정병 ‘김(金)’과 함께 우리는 동기로 지냈다. 더러 술도 같이 마셨고, 동기끼리 나눌 수 있는 이런저런 사연을 주고받으면서 삭막했던 시절을 함께 이겨냈다. 38년 만의 해후 허는 나처럼 대학에 입학하고 난 뒤 바로, 김은 3학년을 마치고 입대했다.. 2019. 4. 17.
부음에서도 밝히지 못한 이름, 말을 잃었다 중국 일본군 위안소 유적 답사기…‘위안부’ 할머니들의 잇따른 죽음에 부쳐 역사란 현재와 이어지는 ‘연속적’인 시간이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는 그것을 ‘단속적(斷續的)’인 시간, 때로는 화석화된 것으로 이해하기 쉽다. 엄정한 역사의 현장이 아닌, 교과서나 이론으로 배우는 역사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때로 우리는 특정한 시간과 공간을 통해서 역사의 실체를 손에 닿는 것처럼 느끼기도 한다. 교과서 속의 역사가 지금, 현재의 시공으로 이어지는 살아 있는 시간이라는 걸 말이다. 그것은 기왕의 앎 따위를 뛰어넘는 명징한 깨달음으로 다가오기도 하는 것이다. 난징에서 만난 일본군 위안소 어쨌든 지나간 역사의 자취를 찾아 떠난 길이기는 했다. ‘청년 백범’에서 실시한 제4기 답사,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 2019. 3. 5.
오마이뉴스 블로거 김현진 작가 전시회 오마이뉴스 블로거 ‘살랑살랑’님의 ‘아트 달력’을 소개한 게 2016년 3월이다. 아트 달력을 냈다는 소식을 뒤늦게 듣고 부군으로부터 그림 파일을 받아 이를 내 블로그에 소개한 것이다. 글 끝에 나는 ‘화순에 올 안에 한 번 들를까 한다’고 썼지만 그건 빈말이 되었다. 오마이뉴스 블로거 ‘살랑살랑’님의 ‘아트 달력’을 소개한 게 2016년 3월이다. 아트 달력을 냈다는 소식을 뒤늦게 듣고 부군으로부터 그림 파일을 받아 이를 내 블로그에 소개한 것이다. 글 끝에 나는 ‘화순에 올 안에 한 번 들를까 한다’고 썼지만 그건 빈말이 되었다. 거기 썼지만, 그는 내가 한 번도 만나지 못했는데도 가끔 들러 댓글을 주고받는 이웃[블로그 바로가기]이었다. 나는 그이를, 대학에서 그림을 공부했고 주로 어린이들을 가르치며.. 2018. 11. 15.